고전명시 감상

퇴계의 <청평산을 지나며>

운수재 2007. 5. 14. 05:36

[명시감상]

 

퇴계의 「청평산을 지나며」/  임보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은 그의 빛나는 학문적 성과에 눌려 그가 남긴 시 작품에 대한 평가는 비교적 소홀했던 것 같다. 2천 편에 가까운 시를 남기고 있으니 시인으로서의 업적도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34세로부터 50에 이르기까지 벼슬길에 오르내리긴 했지만 마음은 늘 향리를 떠나지 않았다. 전원에 돌아와 은둔하고자 하는 그의 꿈은 지천명에 접어들면서 이루어진다. 도연명(陶淵明)의 시적 정취를 유달리 사랑했던 것도 그의 이러한 은일 지향의 성품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짐작된다. 도학자였으므로 그의 시풍은 온유돈후(溫柔敦厚)를 떠남이 없었다. 부드럽지만 한편 깊고 오묘해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이 자리에서는 「청평산을 지나며(過淸平山有感)」란 작품을 감상하면서 퇴계의 정신세계의 일단을 엿보고자 한다.

청평산은 춘천시 북삼면 소양호 인근에 있는 산이다. 퇴계가 이 산을 지나면서 옛날 이 산자락에 은거해 살던 한 맑은 선비를 추모하는 내용의 시다. 주인공은 고려 예종 때의 은자 식암(息庵) 이자현(李資玄, 1061~1125)이란 분이다. 퇴계는 이 시의 앞에 장황한 제사(題詞)를 달고 있는데 이는 이자현에 대한 흠모의 정이 얼마나 돈독했는가를 짐작케 한다.

이자현은 28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대악서승(大樂署丞)이라는 낮지 않은 벼슬에 올랐으나 1년 뒤 관직을 버리고 청평산에 들어가 암자를 짓고 은거한다. 그 암자가 오늘날 청평사로 남게 된다. 당대 세도를 부리던 벌족으로 평생의 부귀공명이 보장된 처지인데도 세속의 명리를 헌신짝처럼 걷어차고 선(禪)과 차(茶)로 몸을 맑게 하는 수도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그는 불교와 노장사상에 심취했던 것 같다. 예종이 예를 갖추어 몇 번씩 불렀으나 뜻을 굽히지 않고 다음과 같은 진정표(陳情表)를 낸다.

 

신이 듣잡건대 새의 즐거움은 깊은 수풀에 있고, 고기의 즐거움은 깊은 물에 있다 하옵니다. 고기가 물을 사랑한다고 하여 새를 깊은 연못에 옮기지 못할 것이요, 새가 수풀을 사랑한다고 하여 고기를 깊은 숲에 옮기지 못할 것이옵니다. 새로서 새를 길러 수풀의 즐거움을 맘대로 하게 맡겨두고, 고기를 보고 고기를 알아 강호(江湖)의 즐거움을 느끼게 내버려두어 한 물건이라도 제 있을 곳을 잃지 않게 하고 군(君)의 정(情)으로 하여금 각기 마땅함을 얻게 함이 곧 성제(聖帝)의 깊은 인(仁)이요, 철왕(哲王)의 거룩한 혜택이옵니다.

 

라며 둔세(遁世)의 뜻을 꺾지 않았다. 쉽게 만나기 어려운 맑은 정신을 지닌 곧은 선비였다. 그럼 이제 퇴계의 시를 읽어 보도록 하자.

 

 

산협을 감돈 강물에 사다릿길 기울었는데

어디선가 구름 밖에서 맑은 냇물 흘러나오네.

지금까지 사람들은 여산사만 말해 왔지만

여기서 임께서는 곡구 밭을 갈으셨네.

밝은 달 하늘에 가득해 그 정신 남아 있고

맑은 아지랑이 자취 없어 헛된 영화 버렸어라.

우리나라 은일전을 그 누가 지을 건가.

조그만 흠집 끄집어내 맑은 구슬 가리지 마소.(허경진 역)

 

峽束江盤棧道傾 忽逢雲外出溪淸

至今人說廬山社 是處君爲谷口耕

白月滿空餘素抱 晴嵐無跡遣浮榮

東韓隱逸誰修傳 莫指微疪屛白珩

 

 

가파른 산협을 강물이 감돌아 흐르는 골짝이어서 길이 제대로 나 있질 않다. 그래서 나무토막을 얽어 임시로 사다릿길을 놓았나 보다. 그런데 그것도 헐어서 느슨하게 한쪽으로 기울어 있는 모양이다. 그 길을 건너 계곡에 이르렀더니 문득 흘러내리는 맑은 물과 마주치게 된다. 그 물이 마치 구름 밖에서 쏟아져 내린 듯 속세와는 동떨어진 별유천지, 신선의 세계인 것만 같다. 지금까지 세상 사람들은 은자 하면 저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 은거해 지낸 혜원(慧遠)만 생각하지만, 정승을 마다하고 곡구(谷口)에서 밭을 갈며 맑게 살았던 한나라의 정자진(鄭子眞) 같은 이가 이곳에도 있었음을 왜 모른단 말인가. 온 세상 밝게 비친 달처럼 그의 맑은 정신은 남아 있는데, 아지랑이 자취 없이 사라지듯 헛된 영화 버렸어라. 누가 이 나라의 숨어산 은사들의 얘기를 바르게 전할 것인가? 작은 흠 트집 잡아 맑은 구슬 가리는 일 없게 하리로다.

마지막 행의 의미는 이자현의 행적을 사관들이 역사에 잘못 기록하고 있는 것을 탓하는 내용이다. 식암(息庵)이 ‘논밭 마련하기를 일삼았다’느니, ‘농민을 괴롭혔다’느니 하는 등의 기록이 보이는데, 이는 세속의 더러운 명리에 발을 담그고 살아가는 자들이 식암의 고매한 삶을 투기해서 헐뜯는 말이라고 퇴계는 변호한다.

 

이 시는 역사적인 한 인물을 노래한 작품이지만, 이는 이자현이라는 은사를 통해서 퇴계 자신의 청정한 정신세계를 드러내 보인 글이기도 하다.

은일(隱逸)이란 무엇인가? 얼핏 보면 세상을 등진 소극적인 삶의 자세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지만 깊이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이는 욕망을 억누르는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며, 세속을 향한 무저항의 투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들은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세상을 변화시키는 큰 스승들이다. 세상이 그들을 존경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에도 스스로 높은 관직의 자리를 박차고 향리에 돌아가기를 꿈꾸는 관료가 있을까? 그러한 귀거래를 자의에 의해 실현한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근래에 들어본 것 같지 않다. 청정한 선비정신이 아쉽기만 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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