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프에 불을 켜며 / 유공희
먼 서쪽 하늘에 저녁놀이 단테의 지옥편의 어느 하늘처럼 심각해진다.
이러한 때 램프에 불을 켠다는 것은 가슴이 부푸는 하나의 구원(救援)!
반역과 도회(韜晦)에 지친 마음아! 어머니나 아내처럼 다정하게 될 수 있는
어린아이처럼 순진해질 수 있는 이 슬픈 시각을 사랑하자
나는 의지를 당기어 테이블 위에 머리를 고이고 앉는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책들과 벽에 걸린 의복들과 카렌다는
어쩌면 맑게 개인 아침에 입항(入港)한 어느 낯선 항구의 거리 같기도 하다.
창밖은 통곡하고 싶은 어둠의 바다… 미칠 듯한 카오스의 위협과
창 하나를 격(隔)한 아, 우리들의 살고 싶은 마음이여!
이 한 떨기의 화끈거리는 프로메테의 연정에 싸여,
운명을 같이 한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 대고 그리하여 아,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슬픔….
이 눈물겨운 희한한 보람을 사랑하자!
(1955.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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