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ILLUSION

운수재 2007. 6. 2. 07:58

 

ILLUSION  /    유공희

 

이끼가 퍼렇게 낀 깨어진 기와 쪼각들이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들었는가?

 

그것은 멀리 거대한 뱀처럼 누운 양자강(楊子江)의,

물빛조차 조금도 엑조틱하지 않는 내 고향 같은 중국의 벌판―

따스한 사월의 햇볕이 쏟아져 내리는 언덕 위….

구구식 소총을 풀밭에 던져 둔 채

티없이 푸른 하늘이 소나기처럼 향수를 쏟는 한낮

나는 문득 구슬프기 이를 데 없는 들새의 곡성을 들었다.

ku ku ku kwoo………ku ku ku kwoo……

워드워즈의 로맨티시즘이 생각났다.

cuckoo의 원더링 보이스를 찾아 헤매는 그의 미스터리를….

나는 소리를 찾아서 엊그제 익힌 포복(匍匐)을 시험했다.

저 호반 시인처럼 머리털을 훈풍에 휘날리며 걸을 수는 없다.

푸른 하늘에 얼굴을 쪼이는 것도 내게는 하나의 반항이었으니까.

멀리서 경기관총이 연발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표적이니까 이 언덕 위에 엎드려 있어야 하는 것이다.

소리를 향하여 포복하던 나는 이윽고 소리가 있었을 장소에

그 슬픈 들새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의외에도 이끼가 퍼렇게 낀 채 흩어져 있는 기와 쪼각들이었다!

아까 ku ku ku kwoo……하고 울던 소리는 분명히

이 기와 쪼각들의 곡성이었다!

몇 백 년 몇 천 년을 두고 이 기와 쪼각들은 인적 없는 이 언덕에서

그렇게 슬피 울어 왔으랴!

아, 사천 년의 차이나의 오열(嗚咽)…

갈갈이 찢기우고 짓밟히는 차이나의……오리엔트의…….

 

그 소리는 죽지 않는다. 나의 가슴속―

벌판마다 언덕마다 ku ku ku kwoo……ku ku ku kwoo…….

 

이끼가 퍼렇게 낀 깨어진 기와 쪼각들이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들으며 산다.

귀를 기울이려므나…

 

붉은 산들이 둘러 있는 네 고향의 언덕 위에 혼자 누워 있어 보려므나.

 

 

 

'유상 유공희의 글 > 유공희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에 / 유공희  (0) 2007.06.04
호수 1 / 유공희  (0) 2007.06.03
땅거미 속에서 / 유공희  (0) 2007.06.01
램프에 불을 켜며 / 유공희  (0) 2007.05.31
탱자 / 유공희  (0) 2007.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