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想]
이런 도형수(徒刑囚) / 유공희
― 시험감독 편감(片感)
시꺼먼 연기를 뿜는 굴뚝이 없어 그렇지 학교란 건물은 이따금 큰 공장 같은 인상을 준다.
해마다 수백 명의 상급학교 입학 가능성이 있는 청소년을 졸업장이란 레텔을 붙여서 생산해 내는 공장,
하루에 6,7시간씩 종소리에 조종되어 기계적으로 수십 명의 기사(技師)가 각종의 전문(專門)에 따라 베푸는 가공식(加工式) 수업,
가뜩이나 다른 우수한 공장과의 경쟁이 붙어서 수시 숫자로 표시되는 제품(製品) 평가와 각양(各樣)의 특수한 분업적인 재가공,
매년 각급 기사들이 신경질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제품에 대한 시장(市場)의 평가 등등…
* *
교육에서 평가라 할 그것은 일정한 기간의 교육의 효과를 평가한다는 것일 것이니 평가의 결과는 기사가 더욱 염려해야 할 일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평가장(評價場)에서 기사는 언제나 도형수(徒刑囚)를 감시하는 일종의 간수(看守)가 되어야 하는 서글픔에 잠기기 일쑤다.
몹시 기회를 노리다 못해 안색까지 어설퍼지는 것을 보게 되면 문득 동정이 앞서
하필 면상(面上)에다만 두 개의 눈을 마련해 준 조물주의 졸기(拙技)와 인색(吝嗇)이 안타깝게 여겨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열 개나 되는 손가락 가운데 어느 한 개의 첨단에라도 알뜰하게 하나만 더 마련하셨던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망상이 시작되어 간수로서의 50분간의 고역이 실없이 덜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 *
지금 내 앞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청년들은 그러나 자기를 하나의 도형수로 느끼기에는 너무도 마음에 공간이 없는 상 싶다.
이들은 시험이라는 역사(役事)에 거의 면역이 되어 젊은 감성이 완전히 마비된 것 같다.
그러나 앞으로도 무수한 고역(苦役)이 이들 무고(無辜)한 청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우선 서울대학교라는 관문이 이들의 지척에 놓여 있고 그 위에 다시 무슨 고시(考試) 무슨 고시…
그리고 이 숫한 관문의 저편에 꿈같이 어른거리는 ‘출세(出世)’라는 골(goal)이라기보다 하나의 출구(出口)가 은현(隱現)하는 것이리라.
사실 이 멀쩡한 청춘의 거개가 그들의 수학 과정을 ‘출세’라는 골에 도달하는 장애물경기로 알고 있을 게다.
그러나 나는 늘 이 장애물선수들에서 측은하도록 일종 분명한 영양의 실조(失調)를 느낀다.
이 딱한 증상이 어떻게 되어 가는 것일까.
* *
크레틴(cretin)병이란 것이 있다. 머리는 보기 흉하게 왜소하고 몸뚱어리만 비대해지는 갑상선(甲狀腺) 이상에서 오는 백치병(白痴病)이다.
교양이라는 정신의 영양을 섭취해 볼 겨를도 없이 점수 따기로만 기록을 낸 선수가 누구보다도 기술적으로 경기에서 해방되어 소위 ‘출세’를 하게 되면
그의 사상과 교양의 결핍은 그의 ‘출세’와 더불어 비대해지는 본능에 작용하여 점차로 일종 크레틴의 징조를 보이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일개 무명 기사의 터무니없는 기우(杞憂)가 아니라 이른바 ‘출세’란 것을 해버린 덕택으로 독서는 청승맞은 수면제로나 이용되고 날이 갈수록 사상은 고갈되는 반면에 애매하게 체중만 불어가는 왕년의 명선수를 나는 허다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찍이 ‘수재(秀才)’라는 순탄한 칭호를 받던 사람들이다.
* *
무고한 나의 학생들을 앞에 두고 나의 억측은 너무나 지나치는가?
인생 그것이 하나의 도형장이란 느낌을 이따금 갖게 된다.
나는 수십억의 시지포스가 숙명의 바윗돌과 몸부림하는 광경을 상상해 본다.
지금 내 앞에서 끙끙대고 있는 이 어린 시지포스들에게 나는 일단 일분간만이라도 제 자신으로부터의 의식(意識)의 허탈(虛脫)을 빌고 싶어진다.
언젠가 어떤 선수 한 놈이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머릿속이 혼란해져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집니다.”했다.
그렇다, 하다못해 너희들의 머릿속을 휘휘 내저어 주리라.
싱겁게도 그 새머리가 굳어져야 되겠느냐? 그래서 너희들에게 그 썩어빠진 유행가보다 땀나는 젊음의 몸부림이 있게 하리라. (1958.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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