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포에지와 서양의 포에지 / 유공희
당대(唐代)의 시인 하지장(賀知章)은 동시대의 저 유명한 이백(李白)을 적선(謫仙)이라 불렀다.
四明有狂客 風流賀季眞
長安一相見 呼我謫仙人
昔好盃中物 今爲松下塵
金龜換酒處 却憶淚沾巾 (李白)
시인이 하늘에서 귀양 온 신선이란 사상은 결코 동양 고유의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도 꼭 같은 사상을 볼 수 있으니 근대시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보들레르(C. Baudelaire,1821~1867)가 20세 때 ‘파리의 분위기에서 멀리해야 한다’는 친족회의 결정으로 말미암아 인도여행을 하게 되었을 때,
항해 도중에서 얻은 시 「알바트로스(海王鳥)」에서 그는 시인을 선원들에게 사로잡힌 해왕조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도 자유스럽고 아름답게 푸른 하늘을 비상하던 해왕조가 권태한 선원들에게 사로잡혀 ‘심심풀이’의 조롱물이 되는 것을 보들레르는 이 지상에서의 시인의 자태로 본 것이다.
시인을 하늘에서 잘못 지상에 내려온 신선과 같이 여기는 사상은 이와 같이 동서에 공통된 사실이지만 같은 적선인이라도 동양과 서양의 그것에는 흥미있는 차이가 있으니 이것은 서양문명과 동양문명의 특질의 차별을 말해주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고도 할 수 있다.
대체로 서양문명은 자연 내지 신에 대한 반역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희랍신화에서 천상에 가서 금단의 불을 훔쳐온 죄로 제우스신에게 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라든지, 기독교신화에서의 낙원추방의 이야기라든지, 하늘까지 닿는 바벨탑을 쌓으려다 하늘의 벌을 받아 언어의 혼란을 입게 된 구약의 신화 같은 것은 모두 서양문명의 성격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동양에서는 이와 같은 반역의 신화를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의 지혜를 가지고서는 감히 대항할 수도 없게 번식하는 자연 우거진 그늘 아래에서 명상하는 석가나 무위자연주의를 설교하는 노자의 모습이 동양문명을 상징하는 것이다.
시인이 귀양 온 신선이란 사상에도 동양과 서양에는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으니, 적선인 이백(李白)이나 해왕조의 보들레르나 다 같이 비극적이기는 하지만 이백(李白)뿐 아니라 동양의 시인들은 모두 반역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안주할 수 있었다.
염세사상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자연에의 귀의 속에서 언제나 아름답게 하모니를 이룩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이 지상에서도 멋진 신선일 수 있었다.
저 도연명(陶淵明)은 얼마나 우리에게 다정한 신선이었던가! 그러나 서양의 적선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귀양 온 천사로서 지상에서 조화를 찾지 못했고 안주를 얻지 못했다.
천상(天上)에는 본래 도덕도 법률도 있을 수 없다. 거기에는 오직 ‘아름다운 것, 순결한 것’이 있을 뿐이다.
모든 시인들의 깊은 비애는 순결이 없는 지상에서 생활하면서 도덕이나 법률의 속박 속에 있지 않으면 안 되는 데 있다.
그리하여 서양의 시인들은 분노와 복수감으로써 상식의 세계에 대하여 도전하는 것이다.
언제나 압상트의 강렬한 주정(酒精)에 취해 살던 베를렌을 ‘태양의 아들 본연의 자태’로 만들어 주려고 한 미성년의 천재 시인 랭보(A. Rimbaud, 1854~1891)는 지상 일체의 것에 복수하려고 했던 전형적인 분노의 천사였다.
수삼 년 동안의 문학생활에서 그가 쓴 시집 『지옥의 계절』과 산문 수편은 실로 지상의 세계에 대하여 쏟아놓은 격렬한 욕설이었다.
후세인들이 그것을 들춰 보고 놀라운 작품이요 그를 천재 시인이라고 경탄한 줄 안다면 랭보는 너털웃음을 칠 것이다.
시라는 것은 본래 인생의 무미건조함을 감각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날카로운 감성으로써 이 무미건조한 인생의 습관을 전복(顚覆)하고 깨뜨려 줌으로써 현실을 신선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생활에 권태감을 느끼고 무엇인가의 변화를 바라는 범용인의 심리조차도 시에 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범용인의 하품이 랭보의 이른바 ‘가정(家庭)이 되었거나 무엇이 되었거나 안정된 행복이란 것은 견딜 수 없다’라는 독백에까지 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시는 어느 경우에든지 상식의 세계를 전복하는 것이다.
시의 이와 같은 본질에 있어서는 동양이나 서양이 다를 바 없다. 당대 왕유(王維)의 저 누구나 읊는 시
獨坐幽篁裏 彈琴復長嘯 深林人不知 明月來相照 (王維)
이 절구를 어느 부호댁 주련(柱聯)에서 보았다. 여기에 나타난 유현(幽玄) 고원(高遠)한 시경(詩境)이 시정(市井)의 범용인(凡庸人)들의 상식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근방의 장삼이사(張三李四)와도 더불어 좀더 허물없이 벗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해도 주위의 동포들은 좀처럼 무장을 풀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왕유는 오히려 배부른 속인의 처마 아래서 추잡(醜雜)한 위선의 허식(虛飾)이 되어 버렸다.
상식은 그들을 구원할 수도 없을 만큼 처참하게도 정복해 버린 것이다.
워드워즈는 상식에 정복되기 전에 차라리 죽을 것을 바랐다.
보들레르는 엄청난 빚에 고개가 돌아가지 않게 되어도 시를 팔지 않고 산문을 팔았다.
상식이 시를 다만 이해하지 않으려고만 한다 해도 시의 공죄(功罪)는 좀더 희미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시보다도 항상 상식이 무지한 테러를 해 왔다.
전통에 빛나는 상식은 바이런과 쉘리 그리고 키츠를 악마라고 불렀고 또한 보들레르를 고소(告訴)했고 도연명(陶淵明)을 시골로 추방해서 오히려 이들에게 시인의 명예를 주었고, 그 밖의 시인도 아닌 시인군상들에게는 ‘철학’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고역(苦役)을 집어 씌웠다.
이와 같은 상식에 대항하는 시인들의 태도에 있어서는 동·서의 시인이 현저하게 다르다.
바이런, 쉘리, 키츠는 끝까지 ‘악마’로서 반항하다가 인생의 2분의 1도 못 가고 말았고, 보들레르는 유고의 열광적인 응원을 받으면서 댄디즘으로 무장하여 반항하다가 패배해 버렸고, 랭보는 눈이 부시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자신을 고문(拷問)에 부쳤다. 그러나 도연명에게는 흔연히 ‘귀거(歸去)’할 곳이 있었다.
그것은 ‘동복(童僕)이 반겨 맞이하고 어린 자식이 문에서 기다리는 전원(田園)― 삼경(三徑)은 거칠어졌으나 송국(松菊)이 남아 있고 친척과 정화(情話)하며 금서(琴書)를 즐기며 더러는 지팡이를 세우고 밭매기도 하면서 청류(淸流)에 임(任)하여 음시(吟詩)도 할 수 있는’ 전원이다.
우리의 오류(五柳) 선생은 이와 같이 해서 조화(造化)를 좇아 살다가 돌아가실망정 그 천명(天命)을 즐기며 다시 의심할 것이 없는 자약(自若)한 생(生)을 누리시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의 적선들은 이 지상에서는 ‘귀거(歸去)’할 곳을 발견하지 못한다.
영국의 방랑시인 중 대표적인 자연 시인이라는 워드워즈의 ‘호반(湖畔)’의 어디를 찾아보아도 오류선생 같은 띳집은 볼 수 없다.
그의 내추럴 파이어티(natural piety)는 도연명의 조화(造化)를 좇는 자약(自若)에 비하면 오히려 외경(畏敬)이다.
그것은 조화(調和)가 아니라 범할 수 없는 절대자에 대한 스토익(stoic)한 근신에 가깝고, 불연(不然)이면 그가 자기의 심령 속에서 그처럼 아끼는 유년기의 감동이다.
워드워즈의 어떠한 자연시 가운데서도 우리는 동양적인 인간과 자연의 동화(同化)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서양의 시에서는 인간은 오히려 언제나 자연에 대한 무모한 도전자로 나타난다.
서양의 시의 원천이라고 볼 수 있는 호머의 서사시(敍事詩)는 신과 우주의 천리(天理)인 자연에 대한 인간의지의 투쟁을 노래한 것이다.
유리시스의 비장한 생애는 그대로 서양문화의 비극성을 표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까?
여호와는 언제나 그들을 불과 홍수로 벌하였건만 그들은 패배를 각오하면서도 신에 반역하여 한없이 쓰라린 복수를 되풀이해 온 것이다.
서양의 시인들은 상식에 대해서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운명에 복수하려고 한다.
지고(至高)한 신의 명(命)에 의하여
‘시인’이 이 권태한 세상에 나타났을 때,
그의 모친은 공포에 떨며 모독의 감정에 사로잡혀
가엾게 여기는 신을 향하여 두 주먹을 부들부들 떨 뿐이다.
아, 이 같은 조소의 씨를 키우느니보다
어찌 차라리 독사의 살덩이를 낳지 않았으랴!
내 배가 고과(固果)의 씨를 배게 된 저 서글픈 쾌락의 밤이여!
저주받을 지로다. (보들레르)
이리하여 시인은 세속에 대해서보다도 더욱 자기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숙명에 복수하기 위하여 반역과 자기 도회(韜晦)로써 비극의 일생을 마치는 것이다.
대체로 서양의 시인들의 노년은 불행하다. 어떤 시인은 늙어서는 완전한 광인(狂人)이었고(Hölderin) 또 어떤 시인은 늙기도 전에 자살해 버렸고(Nerval) 어떤 시인들은 늙기도 전에 병사(Byron, Keats, Novalis 등) 또는 횡사(Shelly)하였다.
서양의 시는 그렇기 때문에 거개가 청년의 시다. 설령 노경에 이른 시인이 있더라도 역시 청년같이 열광적이다.
괴테는 80세가 된 뒤에도 연애했고 톨스토이는 시인은 아니지만 노인이 되어서도 청년과 같이 열광적으로 사회의 불의와 싸웠으며 지드는 노인이 되어도 청년과 같이 ‘자아(自我)’ 때문에 고민했다. 말하자면 서양문명에는 ‘노년’이 없다.
그러나 동양에는 신선같이 천연스러운 노년의 세계가 있다.
인간은 본래 자연에서 태어났으니 다시 무위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천리다.
노년은 이와 같이 자연으로 화하는 길이기 때문에 존귀하게 축복받아야 하는 것이다.
동양인이 환갑(還甲)으로써 노인을 축복하는 풍속은 서양인은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동양의 이와 같은 자연주의는 서양의 인간주의가 실천할 수 없는 사상이다.
독일 낭만주의의 선구적 문학자 쉴레겔이 그의 소설 『Lucinde』 속에서 ‘오직 동양 사람만이 눕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말했지만, (이 말은 ‘오직 동양 사람만이 죽을 줄 안다’라는 말로 해석할 수 없을까?) 그것은 문학의 한 유파의 특수한 주장에서 새어나온 말에 불과하다. 서양문학에 있어서 동양은 언제나 꿈 같은 엑소티즘의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
동양의 시에도 인간의 비애의 정서가 없는 것은 아니다.
誰家玉笛暗飛聲 散入春風滿洛城 此夜曲中聞折柳 何人不起故園情 (李白)
동양의 시에 나타난 비애는 인생 자체에서 솟는 보편적인 감상(感傷)이 아니면 불교적인 체관(諦觀)에서 오는 일종의 파도스(pathos), 인간을 자연에 대하여 도전케 하는 비극적인 비애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자연과 조화케 하는 아름다운 비애다.
동양에는 옛날부터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도 한 사람의 호머도 없었다.
(동양에서는 나팔도 큰북도 행진곡도 없었다. 다만 한 개의 조그만 슬픈 피리가 있었다)
이것은 나의 학생시대 시를 가르쳐 주신 일본의 유명한 시인의 말이다.
(1955. 12. 5.)
'유상 유공희의 글 > 유공희의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열(嗚咽)하는 모음(母音)의 세계 / 유공희 (0) | 2007.06.03 |
---|---|
시와 식욕 / 유공희 (0) | 2007.06.02 |
어떤 도형수 / 유공희 (0) | 2007.06.01 |
팔월의 독백 / 유공희 (0) | 2007.05.28 |
한일수상 (0) | 2007.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