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도 / 윤제림
버스 뒤에
레미콘트럭,
트럭 뒤에
소나타,
소나타 뒤에
경운기,
경운기 뒤에
세상에서 가장 느린 탈것 하나가 세상 모든 탈것들을 줄줄이 멈춰 세웠습니다. 느릿느릿 길을 건너 산길로 접어든 꽃상여 하나. 찻길을 막아놓고서는 제 자신도 솔밭머리에서 제자리걸음입니다.
시동을 끄고 내려서 담배를 피워 무는 버스기사를 보고 레미콘트럭이 경적을 울려댑니다. 그 소리에 놀란 깃발과 사람들이 길 양편으로 흘러내립니다.
버스 기사가 차에 오릅니다. 차창 밖을 내다보던 새댁 하나가 품에 안은 아이 손을 붙잡고 빠이빠이를 합니다. 멈췄던 차들이 가던 길을 갑니다.
버스 뒤에
레미콘트럭,
트럭 뒤에
소나타,
소나타 뒤에
경운기,
경운기 뒤에
코란도,
[감상 안내]
참 쉬운 시입니다.
굳이 안내할 것도 없이 읽으면 그냥 그 정황이 머리에 선히 떠오르지 않습니까?
시가 어려워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시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글이 어려워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시골 국도에 차들이 멎었습니다.
버스며 레미콘트럭 소나타 경운기 코란도…
많은 차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서 있습니다.
버스 기사는 아예 시동을 크고 내려와 담배를 피워 물고 구경합니다.
버스에 탄 손님들도 별로 없는지 불평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버스 뒤를 따라가던 레미콘트럭은 몹시 바쁜가 봅니다.
아마도 공사장에 빨리 대가야 하는 모양이지요?
경적을 요란하게 울리며 버스를 보챕니다.
그러자 ‘세상에서 가장 느린 탈것’을 메고 가는 사람들과 깃발들이 길 양편으로 흘러내립니다.
그리고 멎었던 차들이 다시 움직여 가기 시작합니다.
버스 안에서 젊은 새댁이 품에 안은 아이 손을 붙들고 빠이 빠이를 합니다.
국도를 지나가던 꽃상여가 잠시 달리던 차들을 멈추게 한 것입니다.
지금은 시골에서도 이런 풍경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상여를 태워 저승길로 인도했던 우리의 옛 풍습은 낭만적인 멋을 지녔습니다.
꽃상여의 아름다운 치장은 말할 것도 없고, 상여소리는 또 얼마나 구슬프게 아름답습니까?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움직이는 상여꾼들의 느린 발걸음
상여가 나갈 땐 어떠한 것도 그 앞을 가로질러 가지 못합니다.
마지막 길을 가는 망자에 대한 예우입니다.
상여가 길을 막는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레미콘이 경적을 울린 것도 그 대상이 상여가 아닌, 버스 기사입니다.
상여를 ‘세상에서 가장 느린 탈것’이라고 표현한 것도 웃음을 머금게 합니다.
바삐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발걸음을 잠시 멎게 하는,
미소를 짓게 하는 아름다운 장의행렬입니다.
(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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