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체격 / 유공희
대중목욕탕에 가면 어디나 큼직한 거울과 저울이 눈에 띈다.
그 용도가 어디 있는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언제고 저울은 별로 소용이 없기 때문에 ‘푸줏간도 아닌데…’하는 의아심마저 느낄 때가 더러 있다.
백 번 천 번 올라서 보았자 55킬로의 내 체중은 언제나 늘지도 줄지도 않기 때문이다.
170센티 키에 너무 빈약한 체중임을 노상 자인하고 있지만 일찍이 그런 일로 고민해 본 적은 없다.
사람의 경우 살 무게라는 것이 그다지 뜻깊은 것이라고는 도무지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욕탕에서 나오면 저울을 외면하고 거울 앞에서 더 시간을 보낸다.
추상적인 숫자보다도 구체적인 형상에서 오는 비애가 더 클 터인데… 하고 동정해 주는 육체파가 있을지 모르나 나는 그들과 좀 다른 차원에서 거울에 끌리는 것이다.
내게는 거울이 어떤 문명의 이기보다도 형이상학적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육체파들이 얼른 미치지 못하는 상념에 잠긴다.
언제부터 인간이란 동물은 그 앞발이 땅에서 해방되어 팔로 변해 가지고 저렇게 오만스런 자세로 이 지상에 군림하게 되었을까?
다른 동물들은 네 발로 충실히 땅을 기고, 어떤 동물은 전신을 땅에 대고 기는 놈도 있는데….
동물이란 고도로 진화할수록 땅을 배척하게 되는 것인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포옹하는 동물은 인간 외에 또 없을까?
인류의 시조는 어쩌면 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일지도 모른다.
지구에 빙하시대가 오자 원숭이들은 열심히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한 덕분에 오늘날까지 제 족보를 착실히 지키고 있는데,
그 중 게으른 몇 놈이 설마 하다가 빙하 위에 처지게 되었을 것이다. 얼음판 위에서 살아가자니 이제는 열매도 열지 않는 나무에서 내려와 부지런히 앞발을 놀려서 먹을 것을 찾아야 한다.
눈코 뜰 새 없이 앞발을 놀리다 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직립(直立) 원인(猿人)으로 변하여 결국 생물계에 인류라고 하는 새 족보가 생겨난 것이 아닐까?
전신을 덮고 있던 털은 또 어떻게 해서 저렇게 남을 데만 남았는고?
내가 거울 앞에서 일말의 향수조차 느끼면서 아득한 조상의 모습을 더듬고 있는 동안에도 옆의 저울에는 게으른 원숭이의 후손들이 계속 오르고 내리고 한다.
대개는 탐스러운 육체파들인데 개중에는 나보다도 더 형편없는 빼빼 씨가 열심히 숫자를 읽고 있으니 그 사연이 몹시 궁금하다.
그러자 진짜 헤비급 하나가 휘파람까지 한 곡 불면서 서서히 저울에서 내려서더니 내가 서 있는 거울 쪽으로 다가온다.
거울의 안팎 양면에서 나를 위압하려는 기세다.
남달리 배가 나온, 내 보기에는 체격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사나이다.
어쩌다 저렇게 되었을까? 거울 속의 첫 인상이 배꼽 아래쪽은 아예 시계(視界) 밖일 것만 같다.
이를테면 불룩한 저 배의 윤관이 지평선인 셈이어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노상 실감할 것 같다.
좀 잔인한 이야기지만 식인종도 저런 사람을 만나면 입맛이 가시고 말 것이다.
임어당(林語堂)이 ‘서양 사람은 피부로 생각하고 동양 사람은 배로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뱃심이 있다’ ‘배짱이 좋다’ ‘복안(腹案)을 세운다’ ‘만강(滿腔)의 감사를 드린다’ 등의 말들이 잘 쓰이는 것을 보면 그럴 듯도 한 말이다.
그는 또 ‘중년기로 들어가면 과일이 익고 술이 익듯이 성격도 성숙해지고 전보다 배가 나오게 되며 냉소(冷笑)을 알게 되고 동시에 인생을 따뜻한 마음으로 보게 된다.’고 쓴 적이 있다.
‘전보다 배가 나오게 되며…’는 동양 사람으로서의 도량이 커진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유머러스한 그의 객담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이 ‘배’ 이야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재미있는 탈선을 한 적이 있다.
10여 년 전에 S고교에서 가르치고 있을 때 일이다.
교재 속에 임어당의 그 글이 있었는데 그 ‘배’ 이야기에 이르렀을 때 한 놈이 불쑥 “선생님은 중년이신데 왜 여태 배가 안 나오시나요?” 하고 맹랑하게 묻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 워낙 탈선과 객담이 많은 나인지라 이런 질문을 짐짓 꾸짖지 않는다.
대뜸 “교사치고 배가 나온 사람은 모두 가짜다.”고 응수한 것은 좋았는데 그 순간, 동료 P씨의 유달리 풍만한 복부가 눈앞에 떠올랐다.
응수가 또한 당돌했던지라 내심 각오한 바 있는데 “그럼 P선생님은 가짜겠네요?”하고 딴 놈이 꼭 찌른다. 그때 냉큼 생각난 것이 P씨가 육군 장교였다는 사실이다.
“그 선생님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그분의 배는 육군 장교 시절에 나온 배야 현재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중일 터이니 한번 여쭈어 보렴!” 이렇게 P씨를 ‘가짜’로부터 구제해 놓고 함숨 돌리려는 참인데, 또 한 놈이 “그럼 선생님들은 왜 배가 안 나오시나요?” 한다.
평소에 실감하는 대로 “생각 좀 해 보려무나. 휴식신간에 조오꼼 나오려고 하는 배가 50분 강의하는 동안에 쏘옥 들어가고 하니 어느 겨를에 나올 수가 있겠니? …배 나온 사람 부러울 게 없느니라. 배가 나온 사람은 죽은 뒤까지도 남에게 폐만 끼친다는 것쯤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알 게 아니냐?” 이렇게 마무리까지 짓고 말았는데,
이때의 탈선은 어디까지나 임어당(林語堂)의 객담에 그 책임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우리 집에서는 남자들이 날씬하고 여자들이 똥똥한 편이다.
그래서 드라이브 용 자전거말고도 줄넘기 로프, 훌라후프 등 미용기구(?)가 집안에 굴러다닌다.
한번 쩌 버린 살이 쉽사리 빠질 리가 없으련만 이따금 잡지를 펴놓고 미용체조 흉내를 내는가 하면 때로는 밤중에도 헐떡헐떡 줄을 넘고, 어떤 때는 볼품없이 몸을 흔들면서 훌라후프를 돌리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녀들의 몸매는 언제 보아도 날씬해질 낌새란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새옷을 지어 입는 데도 어떤 빛깔이 날씬 빛깔이고, 어떤 무늬가 날씬 무늬고… 열심히 ‘날씬’을 향해서 매진하건만 그것은 여전히 멀고 먼 동경의 피안일 뿐이다.
한번은 좀 늦게 집에 돌아와 안방에 들어서 보니 텔레비전 위에 놓인 날씬한 탁상시계가 괴임대 없는 앉은뱅이가 되어 있고, 예쁜 목조각이 붙은 거울이 알맹이가 빠져나가고 없다.
의아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자 늦게 돌아온 가장을 반갑게 맞이할 날씬 희망생 그녀들이 바로 범인임을 알아채었다. 번갈아가면서 훌라후프 돌리기에 열중하다가 그렇게 된 모양인데 그 파괴 현장은 세 뚱보들이 거울에 비친 에누리 없는 제 몸매들에 푸념을 하다가 곁에 놓인 그 날씬한 탁상시계에 샘이 나서 공모 끝에 화풀이를 해버린 그런 장면 같기만 했다.
사랑하는 우리 집 그녀들은 내가 보기에는 남들보다 약간 동실동실한 편일 뿐, 오히려 거기에 귀염성이 있어 보이는데 그녀들이 한결같이 제 고운 점을 모르니 딱한 일이다.
요즘은 그 점을 터득했다기보다는 효과도 안 나는 미용운동에 지쳤으리라.
그 중 두 동실이는 고것만은 아비를 닮아 의지가 약해선지 우리 집 날씬 운동은 강조기간이 한번 지나가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눈치다.
중년기가 지나도 배가 나오지 않는 나는 죽을 때까지 날씬할 것이다.
구태여 비싼 맞춤 양복을 지어 입지 않더라고 무엇이건 기성복을 사 입으면 척 들어맞는 내 170에 55의 체격은 더 없이 쾌적한 내 영혼의 보금자리가 아닐 수 없다.
‘경제체격’이라고 할까. 갈수록 비좁아만 가는 이 나라의 형편에 공헌하는 바 또한 지대하리라는 점 공명하는 이 적지 않을 것이다. (1975. 『財政』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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