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壁) 2 / 유공희
나는 저기저 빨간 조약돌을 집고 싶어 집고 싶어
벼르다 벼르다 이 길고 긴 담벽에 구멍이 나도록…
너희들은 새긴다
이 하얀 담벽에 몇 천년 묵은 달팽이를…
나는 몸을 돌리면 몸을 돌리면
황금빛 바람이 달음질치는 동그란 구멍만 남으리
어젯밤 어디선지 샘물 소리가 샘물 소리가
내사 귀뚜라미처럼 홉씬 울었다만
이 아침 저 하폄치는 하늘 아래에서는
나의 꿈 얘기는 조각달보다도 처량하리
담 너머 그늘에는 늙은 ‘배암’이 누웠다더냐?
나는 조약돌을 집고 싶어 집고 싶어
해가 기울어 그림자들이 거미처럼 기어오르는 오후
나의 귀에서는 아직도 한 살 먹은 내가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