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벽 2 / 유공희

운수재 2007. 9. 14. 09:13

 

 

벽(壁) 2  /   유공희

 

 

나는 저기저 빨간 조약돌을 집고 싶어 집고 싶어

벼르다 벼르다 이 길고 긴 담벽에 구멍이 나도록…

 

너희들은 새긴다

이 하얀 담벽에 몇 천년 묵은 달팽이를…

나는 몸을 돌리면 몸을 돌리면

황금빛 바람이 달음질치는 동그란 구멍만 남으리

 

어젯밤 어디선지 샘물 소리가 샘물 소리가

내사 귀뚜라미처럼 홉씬 울었다만

이 아침 저 하폄치는 하늘 아래에서는

나의 꿈 얘기는 조각달보다도 처량하리

 

담 너머 그늘에는 늙은 ‘배암’이 누웠다더냐?

나는 조약돌을 집고 싶어 집고 싶어

해가 기울어 그림자들이 거미처럼 기어오르는 오후

나의 귀에서는 아직도 한 살 먹은 내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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