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素月의 「초혼」 / 정 성 수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하지 못 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김소월 「초혼」
내가 특별활동반을 ‘미술반’에서 ‘문예반’으로 옮긴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초등학교 5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내가 창작한 장편 만화를 반 아이들에게 시리즈로 돌려 보여주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어린 나이에 친동생 둘을 잃고, 죽은 동생 대신 정을 주었던 개까지 잃은 나는 이미 치유하기 힘든 ‘소년 허무주의자’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교단 앞으로 불려나가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어깨 두드림을 당한 이 천재 아닌 천재 소년은, 그러나 중학교 2학년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내가 문학의 길로 접어들게 해 준 같은 반 친구가 있었다. 김상욱, 나보다 한 살 위인 이 친구는 문학뿐만 아니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소주’를 가르쳐 주었고, 멋지게 ‘담배’ 피우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중1 하반기, 내가 날마다 도장에 나가 당수(태권도)를 배우며 만화 그리기에 미쳐 있을 때, 이 친구는 나에게 자기가 쓴 시를 보여주었고, 수필을 보여주었고 심훈의 『상록수』를 빌려주었다. 나는 그때 충격과 함께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내가 초등학생식 만화 수준이라면 그는 이미 격조 높은(?) 문학 수준이었던 것이다.
2학년 올라가면서 나는 미련없이 미술반을 내동댕이치고 문예반으로 뛰어들었다. 김래성의 『마인』과 이광수의 『이차돈의 사』를 읽으면서 나는 「복수 뒤의 복수」를 비롯해서 중2 때 모두 6편의 중편소설을 썼다. 나는 학생이 아니었다. 수업 시간이나 집에서나 나는 소설을 읽고 작품 구상을 하고 글을 쓰는 데 하루의 대부분을 소비했다.
내가 밤이나 낮이나 열심히 공부하는 것으로 착각하셨던 아버지의 노발대발로 나는 결국 소설 쓰기를 포기하고 아버지를 속이기가 수월한 시 쓰기에 전념하였다.
그 무렵 내가 난생 처음으로 사서 읽은 시집이 바로 김소월 시집이었다. 「초혼」은 내 심금을 울려주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나는 옆 동네에 사는 한 동갑내기 여학생을 끔찍하게 짝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여학생을 소재(?)로 해서 쓴 시만 중3때까지 공책으로 6권.
그러나 막상 1961년 1월,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낸 나의 첫 시집 『개척자』엔 그 여학생을 노래한 시는 「기다림」이란 작품 1편뿐이었다. 왜 그랬을까? 어렸을 때부터 쓸데없이 열등감이 심하고 자존심도 강했던 내 심장이 상처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내 가장 친한 친구 중의 한 사람이었던 김상욱, 시와 소설을 열심히 썼던 그는 문학의 꿈을 펼쳐보지 못한 채 지난 80년대 초에 홀로 세상을 떠났다. 「초혼」! 지상에 살아남은 내가 이젠 바람 부는 강가에 서서 죽은 옛 친구의 혼을 부른다!
(우이시 제132호)
'나를 사로잡은 한 편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두진의 <해> / 황도제 (0) | 2007.10.04 |
---|---|
이원의 절구 일수 / 이무원 (0) | 2007.10.01 |
이성부의 <어머니가 된 여자는 알고 있나니> / 추명희 (0) | 2007.09.30 |
[스크랩] 내 마음을 움직인 세 편의 시 / 임보 (0) | 2007.09.29 |
한하운시초 / 이생진 (0) | 2007.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