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의 「꽃」 / 윤준경
여고 시절 나는 교과서에서 이 시를 만나게 되었다. 이 시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초등학교 때에는 소월의 「진달래꽃」을, 중학교 때에는 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좋아했었는데 「꽃」을 만나면서부터는 지금껏 가장 좋아하는 시로 꼽고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얼마나 귀절 귀절 아름답고 쉽고 의미 또한 가득하고 고결한가. 그런데 나는 이 시를 한번도 깊이 연구하거나 해석 또는 분석해 본 적이 없다. 그저 한 구절만 떠올려도 아! 하고 탄성을 발할 만큼 좋아서, 아름다운 자연을 대할 때나 아름다운 사람이 그리워질 때 혹은 마음이 스산하고 외로울 때, 나도 모르게 읊조리곤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에 대해 조금의 연구도 없었다는 것이 새삼 부끄럽고 죄스러운 생각마저 들어 이 책 저 책 꺼내어 뒤적여 보았다..
이승훈 교수는 그의 저서 『해체시론』에서 김춘수의 무의미의 시를 두고 ‘철저하게 반전통성…’ ‘모더니즘 시의 대가’ ‘사물과의 단절을 지향…’등등 그의 시적 가치를 논하고 있으나 내가 보기에는 그런 무의미시보다는 의미를 지향했던 「꽃」과 같은 초기의 작품들에 애착이 더 간다.
국어 교사인 김성호는 그가 엮은 『한국대표명시선』에서 이 시를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꽃’이라는 자연, 자연 중에서도 아름다운 것의 상징으로서의 미적 존재와 의미를, 하나의 깨달음의 세계에서 새롭게 눈을 뜨고 깨닫는 생명 내지 현상의 실존적 가치를 이름 부름으로써 만나게 되는 존재의 확인과 실체의 파악을 추구하는 형이상학적인 시다
―이하 생략
그 밖에도 출전, 주제, 제재, 소재, 갈래, 성격, 표현법, 어조, 구조 분석, 의의 등 여러 각도에서 따지고 있다. 그러나 나에겐 이러한 시 분석들이 별로 의미가 없이 생각되었다. 이러한 해설들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잔물결 소리를 내며 맑게 흘러내리는 차고 달콤한 샘물에 돌을 던져 오히려 본래의 맛과 모양을 깨뜨린 듯한 느낌마저 든다.
딴은 그것이 나의 한계이기도 하다. 음악을 매우 좋아하면서도 곡명이나 작곡자, 시대적 배경 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영화를 보아도 책을 읽어도 주인공의 이름이나 저자 인명, 연대 등에는 너무 어둡다. 의미있는 언급에 대해서 내가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그러한 나의 무지의 소치임을 인정한다.
어쨌든 이 시의 귀절 귀절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내가 이름을 불러 주어 비로소 꽃이 될 수 있는―존재할 수 있는―사람, 나의 이름을 불러 나를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아름다움의 상징인 꽃으로 존재케 하는 사람― 그런 사랑과 인간애를 우리는 일생에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그리하여 말하고 쓰고 읽고 배우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며 매일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의미가 된다는 것은 아주 작은 소망이면서도 어쩌면 인생에서의 가장 큰 성공이 아닐는지…
나는 꽃을 좋아한다. 꽃을 좋아하지 않는 이가 어디 있을까마는 내가 좋아하는 시들이 모두 꽃을 노래한 것임에서 다시 한번 그 사실을 확인하게 된 느낌이다. 들길을 걷다가, 산길을 오르다가 아니면 어느 공간에서라도 꽃을 보면 한 발짝 다가가게 되고 향기에 몸을 기울이게 된다. 조그맣고 연약한 들꽃에서부터 꽃의 여왕이라는 장미에 이르기까지 어느 꽃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대답이 어렵다. 그래서인지 나의 작품 중에는 꽃을 노래한 시들이 많다. 「꽃」 「꽃이여」 「꽃에게」 「꽃과 노인」 「목련」 「장미를 위하여」… 등
나의 시 「꽃」 역시 김춘수의 「꽃」을 좋아하여 씌어진 것이다.
뉘신가
이름 붙여준 이를 따라
후로는 늘 꽃이 되어 핀다
물 중의 물
빛깔 중의 빛깔로 골라
노역 끝에 쓰는
면사포
습작처럼 해마다 지우며
그러나 아물리는 생애
미소뿐인 언어와
분수와
겸허한 최후로
누리 가득 아름다움을 채우며
어느 아득한 날부터
땅을 지켜 왔는가
땅 속 어디로부터
그 고운 빛을 빨아올리는가
욕심에 길든 우리네 눈을
투명한 향내로 씻으며
더 주고 싶은 사랑은
씨로 남는다.
(우이시 제1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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