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로잡은 한 편의 시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오> / 오수일

운수재 2007. 10. 8. 05:03

 

김상용의 「南으로 窓을 내겠소」 / 오수일

 

―‘왜 사냐건 웃지요’

 

― 이 글은 꼭 이십 년 전에 쓴 것이다. 이제 여기에 옮겨보는 것은 내 마음을 움직인 ‘한 편의 시’로서보다, 내 마음에 남는 한 인간의 삶과 그의 짧은 생을 애도하는 심정에서다. 그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를 생각하면 내 마음에 늘 한 편의 시가 떠오른다. ―

 

K형을 따라 충청도 이 산간벽지 마을에 도착한 것은 어제, 이곳은 K형의 고향이다. 서울서 고학을 하다시피 대학 시절을 보내던 K형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로부터 십여 년 후, 이제 향리(鄕里)에 돌아와 늙으신 노모를 모시고 농사를 지으며, 한편 어린 시절의 모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간에 안정된 그의 생활 모습은 소박함 그대로였다. 집 뒤로는 빨갛게 익어 가는 감이 수줍어 볼 붉힌 아가씨처럼 고개를 숙인 채 가을의 정취를 말해주고 있었다. 모처럼의 손님이라고 신경을 쓰는 K형 내외의 정성에 이 도시인의 부끄러움은 어인 까닭인가?

 

저녁 후에 K형과 마을 동산을 넘었다. 산책 겸 밤낚시를 나온 것이다. 오랜만의 해후(邂逅)로 호젓한 시간을 갖자는 K형의 뜻인 듯했다. 밤길을 더듬어 솔숲을 빠져 나오자 커다란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는 잔잔한 어둠 속에 누워 있었다. 호면 가득히 이는 안개가 밤의 적막을 싸고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풀벌레조차 울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온 신경이 밤 호수의 적막 속에 빠져버린 탓일까? 정말 나는 이 뜻밖의 신비 속에 갇힌 채, 온몸이 저리도록 파고드는 고독감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그것은 말로 형용키 어려운 고적함이랄까, 외롭고 쓸쓸하고 허전한 비감이랄까, 이러한 감각의 혼란은 차라리 감미롭기까지 한 것이었다. 자연의 조화와 신비 속에 나는 그대로 침몰당하고 말았다.

 

K형은 낚싯대를 드리우고 ‘카바이트’ 불빛을 밝혔다. 어둠을 가르고 호면 깊숙이 떨어지는 불빛, 불빛 위로 몇 마리 날벌레가 선을 그으며 사라진다. K형의 눈빛이 호심(湖心) 깊이 가라앉는다. 이 신비한 호수의 전설이라도 읽어가는 것일까. 우리는 망아(忘我)의 경지 속에 천년 설화의 밤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이따금 정적을 깨고 물고기들이 우리의 대화를 엿듣기라도 하듯 수면으로 머리를 내밀고 사라진다. 문득 솔바람을 타고 목이 쉰 부엉이 소리가 들려온다. 부엉, 부우엉 …… 처량하고 능청스러운 부엉이 울음소리― 어린 시절엔 그토록 무서워했던 부엉이 소리까지 왠지 잃어버린 고향 소식을 듣는 것만 같았다. 밤이슬이 촉촉이 어깨를 감싼다. K형은 마른 건초를 모아 불을 지핀다. 연기가 자욱히 호면(湖面)을 타고 비단결처럼 깔려 나간다. 건너편 호안(湖岸)은 어둠과 안개와 연기에 가려 마치 내세를 보듯 알 수가 없다. 이렇듯 아름답고 신비롭고 포근한 적막의 비경을 어디서 또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자연은 인간의 위대한 어머니. 그 위대한 모성의 품에 안긴 인간의 삶이 참으로 희로애락과 생로병사의 아귀다툼이라 생각하니 허망함을 절감할 뿐이다. 무소유(無所有)가 진정한 소유(所有)라는 걸 또 한 번 느낀다.

 

스산히 바람이 불어 옷깃을 여미게 하더니, 기어이 흐린 날씨에 빗방울이 듣기 시작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그것은 아무도 알려 하지 않았다. 이 순간 순간의 소중한 삶의 만남을 우리는 만끽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낚시를 거두어 말없이 깊은 밤길을 돌아오고 있었다. 차가운 가을 밤비가 신비의 환상에서 깨어나 비정(非情)의 현실로 돌아오게 한 것이다. 나는 아무 말로도 K형에게 나의 느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짚어보고 실은 나의 생각은 버리지 못했다.

“K형, 서울 생각 없소? 어떻소, 적막감도 견딜 만한가요?”

 

K형은 빙그레 웃을 뿐이다. 그 웃는 표정을 본 순간 나는 갑자기 확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꼈다. 그것은 내가 본 가장 소박하고 소탈(疏脫)한 표정이었다. 세상살이에 찌든 아둔한 마음의 부끄러운 질문이었다. 학창시절, 문학에 뜻을 두었던 K형. 김상용의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를 즐겨 이야기하던 K형. 전원파(田園派) 시인으로서의 깊은 인생 철학을 ‘왜 사냐건 웃지요’라는 한 마디로 함축했다고 역설하던 K형의 인생을 이제야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南으로 窓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이튿날, K형의 학교 교정에서 우리는 작별을 나누었다. 양지 바른 언덕에 자리잡은 아담한 학교, 때마침 등교 길의 학생들이 해맑은 표정으로 달려와 인사를 한다. 가을 이슬에 영근 과일마냥 꿈이 가득 어린 얼굴들, 그 뒤엔 파란 하늘이 더욱 높아 보인다. 어린 손들이 가꾼 화단에는 정성을 담뿍 안은 빨간 샐비아와 코스모스가 동심처럼 웃고 있었다.

 

지금, 나는 또 다시 도시의 아우성 속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꿈같은 하룻밤의 이 여행에서 느낀 자연의 신비로움과 한 인간의 숭고한 삶의 모습은, 도시 생활의 속진(俗塵)을 씻어내는 한 청량제(淸凉劑)로 삼을 것이며, 또한 내 인생 길의 어둠을 여러모로 비추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오형, 고맙소. 틈이 나거든 또 들러 주시오.’ K형의 모습이 어리는 차창가엔 가을 풍경이 아름답게 스치고 있었다.

                                                                                                                  (우이시 제1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