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로잡은 한 편의 시

박목월의 <이별가> / 최상호

운수재 2007. 10. 10. 13:35

 

 

박목월의 「이별가」 / 최상호

 

 

나는 감수성이 예민한 중학교 때에 어머니를 잃었고, 꿈과 정열이 뒤엉켰던 푸른 청춘의 나이에 가장 친했던 친구를 잃었다. 이 두 죽음의 연이은 충격은 젊은 시절 나를 온통 삶과 죽음의 화두에 매이게 하였고, 웃음 속에서도 가슴 저 편에서는 늘 검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7남매를 키우시느라 온갖 고생을 겪으신 우리 어머님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무렵에 고혈압으로 쓰러지시더니 돌아가시기 전 수 년 간을 겨우 거동이나 하실 만큼 큰 고생을 하셨다. 그런 상태에서도 마을 나들이 정도는 하셨건만 이상하게도 봄만 되면 갑자기 쓰러져 누우셔서 혼수상태에 빠지곤 했기 때문에 우리 식구들은 봄이 언제나 싫었고 공포스러웠다. 그러나 정작에 어머님은 봄도 아닌 어느 추운 겨울날 그예 세상을 뜨시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고, 어머님이 돌아가신 충격이 진정될 쯤 해서 나는 다시 친구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내가 군생활을 하고 있을 때 친구 P는 대구에 있는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발령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고대하던 첫 부임지에서 부임인사도 못 해 보고 그만 그 전날 밤 연탄 중독으로 변을 당하고 말았다. 쓰지 않던 農家房을 귀한 손님맞이한다고 내어주고 연탄불을 피운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능금 꽃 피는 마을/ 첫 부임지에서 그는 죽었다/

경주군 천북면 화산리의/ 소나무 그늘 진 초등학교/ 그 운동장엔/

귀신으로도 스무 해째인 오늘도/ 숨바꼭질하는 아이들 따라다니며/

선생 노릇하는 키 작은 그림자 하나 있으리라./ (중략)

잊어다오 스크루지 영감을 찾아온/ 유령처럼 나를 깨우치러 오지도 마라./

형산강은 내게도 흘렀었다./ 20년 동안/ 내 뼛가루 씻어 내렸다. 잊어다오.

―졸시 「思友」 부분

 

윗 시는 그의 죽음을 소재로 쓴 나의 많은 시들 중 하나이다. 철없던 시절 느닷없이 당했던 어머니와의 사별보다 다분히 감상적인 기질을 가진 청년기의 나에게는 친구의 죽음이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남겼다. 어쨌든 이 일은 가라앉아 있던 내 허무 의식을 일깨웠고 나는 다시 종교와 염세의 문학 사이에서 죽음을 곱씹게 되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아아, 삶이란 또 무엇인가.

이런 방황의 시기에 나는 박목월의 시 <이별가>를 읽게 되었는데 그것은 내 생활과 영혼의 소리를 그대로 드러내는 놀라운 노래였다. 메마른 입술 사이로 뭐락카노 하며 반복되는 절규, 꾸밈없는 무게의 사투리 위에 클로즈업되는 야윈 얼굴― 그것은 곧 나의 모습이요, 음성으로 각인되었다. 목월은 더군다나 고향 경주 쪽 사람이었으니 그 문학적 충격파는 더욱 큰 것이었다.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부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불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 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을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이별가」전문

 

이승과 저승의 갈림에서 망자에 대한 그리움과 인연의 끈질긴 갈망이 담긴 이 시를 읊으면서 바람 부는 날 고향의 형산강 언덕이나 긴 갈밭 머리에 서면, 정말이지 저쯤에서 흰 옷자락을 펄럭이며 어머님이 다정히 손짓하며 부르시는 것 같았다. 죽어버린 친구가 무어라고 안타까이 소리치는 것 같았다. 친구의 목소리를 환청으로 들으며 허공을 향해 갈라진 목소리로 뭐락카노 뭐락카노 오냐 오냐를 되풀이하다 보면 저승의 세계도 가까운 이웃마을인양 친근하였다. 이 시와 함께 김소월의 <초혼>이나 목월의 또 다른 작품 <하관>처럼 한결같이 죽음을 다룬 시들을 음울하게 읊조리며 저물어가는 강변을 거니는 것이 당시 나의 일상이었다.

 

이렇게 나는 목월의 시 <이별가>와 만나 삶과 죽음의 문제를 더듬어가며 청춘시대를 건너왔다. 그러나 이제 다시 생각해 보면 그 갈등의 시절이 마냥 내게 회색빛 추억이나 그림자만 드리운 것은 아닌 듯 싶다. 죽음에 대한 성찰은 우리 인생살이에서 때로는 삶에 대한 또 다른 채색이며 양념일 수 있는 것이다. 질투와 욕망으로 온 마음이 들끓을 때 죽음의 허망함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냉정해질 수 있고 출세와 명예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고 새로운 관점에 시작해야 하는 죽음 앞에서 우리는 진실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헛되고 헛되며 해 아래 모든 것이 헛되다고 솔로몬은 성경 전도서에서 탄식하였다. 온갖 부귀영화와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건강,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금해보지 않았다고 스스로 말한 최고의 왕 솔로몬도 죽음의 허망함을 생각할 때는 도무지 삶이란 안개와 같은 것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인생을 예찬하는 시도 좋고 사랑을 노래하는 시도 좋지만, 무한 경쟁의 이 시대에 우리에게 삶과 죽음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하는 「이별가」와 같은 시도 가끔은 인생의 스승이 될 것이다.

(우이시 제14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