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禍 / 조 영 님
詩로 인해 화를 입는 것을 흔히 詩禍라고 한다. 단 몇 줄의 시로 인해 죽임을 당하거나 배척된 일은 역사상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소화시평>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당나라 劉希夷가 '白頭翁詩'를 지었는데 그 시는 다음과 같았다.
올해 꽃이 지자 얼굴빛 바뀌었으니 今年花落顔色改
명년에 꽃이 피면 그 누가 살아있으려나? 明年花開復誰在
그의 장인 宋之問이 이 글귀를 사랑하여 자기에게 주기를 간절히 청했으나 주지 않았다. 이에 장인은 화가 나서 흙푸대로 사위를 눌러 죽였다고 한다. 자기보다 나은 재주를 인정하지 못하고 시기하여 끝내 죽이고 만 것이다. 시에 대한 욕심이 빚은 비극적인 일화가 아닐 수 없다.
다음은 <白雲小說>에 실려 전하는 이야기다. 侍中 金富軾과 學士 鄭知常은 문장에 있어서 한 때에 명망이 꼭 같아서 두 사람이 서로 시기하여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세상에 전하기로 정지상이 다음의 시구를 읊었다고 한다.
절에서 독경소리 끝나자 琳宮梵語罷
하늘은 유리인양 맑구나 天色淨琉璃
김부식은 이 시구를 너무나 좋아하여 자기가 지은 것으로 하려고 그 글귀를 달라고 했으나 정지상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김부식이 사건을 꾸며서 정지상을 죽였다. 그 뒤에 정지상은 陰鬼가 되어 김부식을 계속 괴롭혔다. 김부식이 어느 날 '봄을 읊은 시(詠春詩)'에 이르기를
버들 빛은 천 갈래 실처럼 파랗게 늘어졌고 柳色千絲綠
복사꽃은 만점이나 붉게 피었네. 桃花萬點紅
라 읊으니 갑자기 공중에서 정지상의 귀신이 나타나 부식의 뺨을 갈기며 '천갈래 실과 만점의 꽃은 누가 세어본 것이냐? 어째서 '버들 빛은 갈래갈래 푸르고 (柳色絲絲綠) 복사꽃은 방울방울 붉도다 (桃花點點紅)'라고 하지 못하느냐?'라고 꼬집었다고 한다. 千絲, 滿點보다는 정지상이 일러준 대로 絲絲, 點點이 보다 시적이다. 김부식은 기분이 몹시 언짢았는데 그 뒤 어떤 절에 가서 일을 보려고 뒷간엘 갔었다. 문득 정지상 귀신이 음낭을 잡아당기며 '너는 술도 먹지 않았는데 얼굴이 어째서 그리 붉으냐?'하니 김부식이 천천히 말하기를 '저 건너 언덕의 단풍이 얼굴에 비쳐서 붉으니라'하였다. 정지상 귀신은 더욱 힘을 주어 음낭을 움켜잡아 결국 김부식은 뒷간에서 죽고 말았다고 한다.
위의 이야기들은 그 사실여부를 떠나서 재주 있는 자들의 무서운 시기심을 빗대는 시화들로 보인다. 柳夢寅도 <於于野談>에 "재능 있는 자는 운수가 사나운데, 이는 하늘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니 하늘이 또한 시기심이 많음을 알 수가 있다."라 하고 이어서 "재주 있는 사람은 하늘이 또한 시기하나니 세상사람을 또 어찌 허물하겠는가? 슬프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앞의 예화들은 시의 재주로 인해 화를 당한 경우라면 아래의 이야기는 시에 지나치게 뜻을 노출시켜 화근이 된 경우이다. <동인시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고려 공양왕 때 太祖 李成桂가 정사를 돕게 되고, 牧隱 李穡이 장단(長湍)으로 좌천되었다. 그때 '송헌이 나라 일을 맡아보고 나는 멀리 떨어져 나가니 꿈엔들 어찌 일찍이 이런 생각을 했으리오?'(有松軒當國我流離 夢裏何曾 有此思)란 시구를 남겼다고 한다. 松軒은 이성계의 호이다. 이성계가 나라의 임금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뜻이며 그것은 결국 이성계를 긍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조정에서는 이 말이 불손하므로 법에 따라 처리하자고 하였다 한다. 서거정은 '시는 깊은 뜻을 지니고 노출되지 않는 것이 귀하다'고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이것 역시 시의 큰 병이라 하였다. 목은 같은 大才로도 이러한 詩病에 주저앉아 화를 입었으니 시는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논평하였다.
조선시대에 崔壽城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성질이 활달하여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았다. 기묘사화 때 친구들이 화를 당하는 것을 보고 벼슬을 아예 포기하고 술과 여행, 詩書畵, 음악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그의 숙부 崔世節이 승지가 되자 수성이 그의 숙부에게 편지와 시를 부쳐 보내어 외직에 보임되기를 청하라고 권하였는데 그의 시에
해가 지는 넘실대는 강물 위에 日暮滄江上
날씨는 차고 물은 절로 일렁이네 天寒水自波
외로운 배 일찌감치 대야 하리니 孤舟宜早泊
풍랑이 밤에는 응당 거세어지겠지 風浪夜應多
라고 하였다. 이 시는 전반구에 나오는 日暮,天寒,水波와 같은 어휘가 암시하듯 어두운 현실을, 후반구에서는 풍랑이 더욱 거세어질 것이라 하여 앞으로 다가올 정치적 소용돌이를 예고한 시로 읽을 수 있다. 그의 숙부는 이 글을 가지고 윗사람에게 고발하여 수성은 결국 참소에 걸려들어 심문을 받다가 죽고 말았다 한다. 이것은 <지봉유설>에 실려 있는데 <國朝詩刪>,<箕雅>,<大東詩選> 등의 시선집에는 羅湜의 작품으로 소개되어 있다.
이렇듯 시로 인해 禍를 당한 일은 그밖에도 많이 볼 수 있다. <詩經 周南 關雎序>에 '말한 사람은 죄를 받지 않고 이것을 듣는 자는 충분히 경계로 삼을 수 있다(言之者 無罪, 聞之者 足以戒)'라 하였다. 그러나 그 말로 인해 화를 입는 것을 보면 삼가지 않을 수 없는 것 역시 말이니 언어를 재단하는 이들은 片言隻句라도 함부로 내뱉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이시 제1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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