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 이대의

운수재 2007. 11. 14. 11:06

 

 

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지금까지도 대답을 찾고 있는 中

이 대 의(시인)

 

시를 쓰고 있는 내게 시가 무엇이냐고 물어올 때는 정말 답변하기 힘들다. 좀더 솔직히 말하면 그런 질문을 받으면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럼에도 나는 그 질문을 피하지 않고 꼬박꼬박 답변을 했다. 그 답변은 대답 장소 혹은 분위기에 따라 달리 대답한 것으로 기억한다. 또한 그 답변을 하고서 바보같이 왜 그렇게 밖에 대답을 못했을까 하고 부끄러울 때가 많다. 나의 대답은 범을 그리고 싶었는데 항상 고양이를 그린 느낌이다.

그렇다. 시는 내게 말할 수 없는 큰 존재다. 그렇게 큰 존재를 말하기엔 아직도 내 능력이 부족한 듯하다. 하여 지금까지도 그 대답을 찾고 있는 중이라는 말을 하고 끝맺고 싶다. 그러나 여기서 끝맺으면 어설픈 기교를 부리는 것 같아, 생각나는 사족을 첨부한다.

 

혹자는 내게 말한다. 시를 쓰면서 최고가 되겠다는 자존심도 없이 글을 쓰느냐고 한다. 그런 독기도 없이 글을 쓰면 그게 생명력 있는 글이 되겠냐고 질책하는 후배도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문청시절의 내 모습 같아 내심 뜨끔할 때가 있다. 나도 한때는 그런 독기와 오기로 글을 쓴 때가 있다. 그 오기와 독기는 자신의 이론에 맞지 않으면 작품으로 취급하지 않는 오만함도 있었다. 그 때는 그게 내 수준의 전부였기 때문에 폭넓게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오만함에 빠진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런 오만함은 남을 인정하지 않는 편견을 가지게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등단을 하고 시가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요즘 느끼는 바가 많다. 그 시절의 독기와 오만함이 전부였던 느낌이었는데 이젠 오히려 그 독기와 오만이 점차 빠져나간 듯하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 것인지 그러한 뜨거운 논의가 대수롭게 않게 느껴진다.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란 생각에서 좋게 이야기하면 많은 것을 포용하는 아량이 생긴 것도 같다.

 

흔히 하는 이야기이지만 시라는 것은 ‘크고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작고 하찮은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독기와 오만은 작은 것에 가치를 알지 못하고 큰 것에만 마음이 쏠리게 된다. 그러기에 나는 이제 시를 제대로 쓰기 위해 작고 하찮은 것에 관심을 가지려 한다.

요즘 김판용 시인이 보내주는 메일을 보며 작고 하찮은 것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산이나 들에 버려진 듯이 피어 있는 야생화나 기억 속에 잊혀진 곳을 찾아다니며 영상화 시켜 잔잔하게 던져주는 에세이에서 시의 숨결을 느낀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또 생각나는 말이 있다.

 

‘우리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자동차보다는 소달구지를 타고 가서, 마을 중심에 있는 집보다는 변두리 허름한 집에 머물러, 보잘 것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다보면 거기에 시가 있다’는 이생진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무엇보다도 시를 쓰기 위해 육체의 편안함보다는 고행을 자처하면서 하찮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사는 인간적인 따스함까지 엿보인다. ‘고행’과 ‘인간적인 따스함’이 진정한 시인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진정한 내 글을 쓰기 위해서 고행과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키우려는 마음을 다음 글로 대신한다.

 

나는 내 갈 길만 가면 되는 줄 알았다.

진흙길 물길에도 앞으로만 가면 되는 줄 알았다.

비바람 몰아쳐도 뚫고 가면 되는 줄 알았고

남보다 앞서서 가야하는 하는 줄 알았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걸어 온 길.

이젠 그게 전부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내 갈 길을 바로 가기 위해서는 남의 길도 가보고

앞으로만 가는 길보다는 옆길도 가보고

뒤도 뒤돌아볼 줄 알아야 하고

남들과 함께 가기 위해서는

앞서서만 갈게 아니라

뒤에서 따라 갈 줄도 알아야 하고

남이 힘들어 할 때 손을 잡아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문학을 하며 떠나는 내 길은 ……

 

지금까지 시에 대한 견해를 쓴다고 한 것이 엉뚱한 데로 빠진 느낌이다. 변명하자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지금도 답변을 찾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역시 호랑이를 그리고 싶었는데 고양이 밖에 그려지지 않는다. 또다시 후회할 것 같아 망설이다가 원고를 늦게 내면 편집진에서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아 서둘러 송부한다.

                                                                                                                       (우이시 제19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