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신화와 전설의 흔적을 따라 혼자 놀기 / 박정순

운수재 2007. 11. 15. 09:59

 

신화와 전설의 흔적을 따라 혼자 놀기

박 정 순(시인)

 

제대로 시(詩)를 쓰려면 고독해져야 한다고 한다. 모든 예술의 바탕이 된다는 시(詩). 시가 모든 예술의 으뜸이라면 시인은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씨앗을 심어 한 포기 생명을 가꾸고 거두는 사람일 것이다. 어느 시인이 말하기를 󰡒시인은 가장 맑은 정신을 찾아내어 언어의 씨줄과 날줄로 의미를 엮어야 한다.󰡓고 했다. 덧붙여 말하기를 그 자신은 술에 취해서 시를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맑은 정신이 차가운 논리의 이성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나는 ‘맑은 정신’이라는 말에 가슴이 섬뜩해졌다. 언제 나는 맑은 정신을 가졌었는가? 얼마나 언어의 농축과 의미의 구축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가?

 

며칠 전 어느 여교수가 대학 내의 왕따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하였다는 신문 보도를 읽었다. 혼자 고립되고 외면당하는 것을 왕따라고 하는 모양인데, 이 세상에서 스스로 왕따를 당해야만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닐까? 왕따를 자초하여 고독을 불러모으는 것, 대체 고립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혼자 사유하고 외톨이가 되어 느끼는 외로움의 감정 찌꺼기를 스스로 침잠 시킬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고독을 느낄 때 그때 비로소 더 많이 나를 돌아볼 수 있고 더 많이 나를 정제시킬 수 있는 힘을 받아들여 백지 위에 언어의 집을 지어야 한다고 말이다. 어둠이 짙어야만 별이 밝게 빛나듯이 시인은 고독해야만 그리움을 품고, 희망을 꿈꾸며, 세상의 가장 먼 언저리에서도 빛나는 한 줄의 시를 생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의 뜰 담장으로 / 자작나무와 측백나무 사이 / 다소곳이 자리잡고 있는

키 작은 나무 한 그루 / 쭈욱 쭉 뻗은 몸매를 자랑하는 / 키 큰 나무 속에서

기 죽지 않고 싱싱한 푸른 빛을 띄고 있다 / 설한 속에서도 / 풍우 속에서도

아무 말없이 / 좋은 자리 탐내는 싸움하지 않고 / 높은 자리 기웃대며 질투하지 않고

침묵으로 기도 열며 / 마음 하나 가지 끝에 걸어 두었다 / 제멋대로 부추기는 바람

온몸으로 흔들리지만 / 안으로 삭이는 동그란 나이테 / 그가 서 있는 작은 공간

제 키보다 더 높아지고 / 제 뿌리보다 더 깊어져 간다    ―졸시 「키 작은 나무」 전문

 

지금 와 생각해보니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인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그 사람들 속에서도 힘들고 외로울 때가 많았던 것 같다. 그것이 사람들과 섞여 사는 일에 지혜롭지 못한 탓일 수도 있지만 환경으로 인한 스스로 혼자이기를 자초한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요인이었던 것 같다. 형제가 많은 집안의 막내인 나는 실제로 부모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자랐는데도 불구하고 늘 혼자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유폐시켰던 것 같다. 언니들과 오빠들과의 나이 차가 많이 났던 까닭으로 그들과의 대화에서 늘 제외되었던 까닭에 대가족 속에서도 나는 늘 혼자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직장 생활을 할 때에도 남자 직원들 속의 홍일점으로, 여자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보다는 남자들과 일하는 시간이 많았던 탓에 혼자 생각하고 혼자 꼼지락거리는 일에 편해지고 그런 나만의 놀이에 익숙해졌다.

 

어쩌면 시는 늘 혼자인 나를 기다려 주고 다독거려 주는 친구이며 사랑이었다. 가난했지만 미래를 꿈꾸게 하는 힘이 되는 시가 나를 숨 쉴 수 있게 해 주었다. 허공과 허상에다 쏟아 붓는 나의 독백은 미지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기도 하고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며 때로는 내 안의 사랑을 혼자 꿈꾸다 외로워지는 풍경이기도 하였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대신하여 내 땀방울을 닦아주는 바람의 손길 같은 시. 한 송이 꽃 앞에서, 말없는 나무나 침묵하는 바위를 보며 자연, 그 거대한 우주 안의 작고 볼 품 없는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며 그 자연으로 인해 다시 내가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아마도 유한한 생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올곧게 하여 주었다.

 

산에는 / 항상 오르는 길만 / 있는 줄 알았는데 / 어느새 / 산마루 지나고

산자락 향해 내려가는 / 내리막길 있다는 것을 / 이제사 깨닫는다

이 길 올라 올 때 / 뒷사람 위해 / 잡초를 베거나 / 잔가지 치기조차 / 못하였는데

산길 올라오는 이가 / 길을 어떻게 가야 하느냐고 물으면 /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산마루는 올라 가보지도 못하고 / 산길을 내려오는 / 지친 발걸음

햇솜 한 뭉치 / 머리에 인 / 들꽃이 하얗게 손을 흔든다

                                                                            ― 졸시 「길․14 」

 

자기 희생이 곧 사랑의 정신이라고 믿었던 결혼생활, 뜨거운 사랑보다는 끈끈한 인간적 이해와 정으로 유지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결혼 15주년. 아이들과 남편으로부터 소외된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고, 허탈감이 왔다. 내가 꿈꾸었던 사랑은 멀리 사라지고 낯선 여자 하나가 거울에서 푸석한 얼굴로 서 있는 것이었다. 절망과 불안의 상황 속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이라던가, 자신의 운명과 투쟁하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글들이 다시금 내 시의 불씨를 당겨주었다.

 

가슴속에서 울려 퍼지는 미칠 듯한, 그러나 실체가 잡히지 않는 존재의 요구와 나를 에워싸고 있는 세계와의 충돌, 내 삶을 합리화시키려고 하면 할수록 기만에 빠지고 마는 듯한 허무감. 이민자의 삶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밖에 없음에도 결국 나는 혼자였다. 아이들은 내 품을 떠나 그들만의 세계로 날아가려 하고 내가 안주했던 곳은 서슬 푸른 물결이 출렁이는 듯한 비장한 고요와 고독만이 아프게 스며 있었다. 한동안 잊혀졌던 시의 불씨가 내게서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의 글 쓰기는 아득한 존재의 벼랑 끝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벽을 타고 올라가는 담쟁이의 땀방울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처럼 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동인 활동을 통해 경쟁과 비교의 내공을 쌓는 연마에 힘썼던 것도 아니었으므로 글 쓰기의 체계적 접근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 모든 빈곳을 채워준 것은 독서였다. 독서를 통해서 만난 명작의 주인공들, 사건들, 독서를 하는 동안만큼은 그들과 함께 있어 내 외로움이 덜어졌고, 그 독서를 통해서 시를 쓰겠다는 욕망이 불타올랐다. 시를 쓰고 있는 동안만큼은 나는 꿈꿀 수 있었기 때문에 나의 글 쓰기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씌어지기보다는 내 안에 응어리진 것을 토해 내고 꿈꾸기 위한 절실한 방편이었다.

 

또 하나 나의 독서의 체험 속에는 신화나 전설에 관한 기억이 많다. 사실과 허구 사이를 넘나드는 신화나 전설을 읽을 때면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를 바라보며 그 반짝이는 빛에 이야기 구슬을 묶는 듯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우리가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할 길을 하늘의 별이 지도의 몫을 하는 시대는 복되다.” (루카치,『소설의 이론』). 별을 바라보며 우주의 이치와 만물의 생성 원리를 사색했던 고대인에서부터 오늘날의 현대 과학에 이르기까지 별은 사람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영감과 혜안을 주는 것 같다. 무궁한 우주와 수많은 별들 속에 아로새겨진 신화와 전설과 더불어 역사의 한 장을 차지하고 영원의 무대 저 편으로 사라져 간 영웅들과 위인들을 마주할 때면 나의 왜소함, 나의 편벽함이 절로 드러나서 부끄러움과 반성의 기색이 역력해지곤 한다.

 

나의 글 쓰기는 민들레 홀씨의 운명을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바람에 의탁한 채로 날아서 돌 틈에, 허허벌판에 아니면 양지바른 언덕 그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곳이 어디면 어떠랴. 싹이 돋고 소담하게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날 수 있으면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외롭지 않았다면, 고단한 생활이 나에 없었다면 시는 나에게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작은 꽃들도 혼신의 힘을 다하여 꽃을 피워내듯이 자잘한 일상 속에서 빚어지는 나의 시는 나에게서 기도가 된다. 영원히 떠돌이별이 되게 하소서!

 

마침표를 찍은 어제의 일은 / 오늘로 이어져, / 인연의 끈마저 / 놓아 버리면 내 손안에

얽혀 있는 실타래는 / 울다 웃은 이야기들로 / 먼 행성을 떠돌지도 모르지만

너의 생각과 / 나의 생각이 하나가 되기에는 / 모양이 다른 행성

파멸의 소리만 커질 터인즉 / 지금 너의 눈길 / 몇 광년 전에 보낸

내 미소였는지도 몰라 / 생성과 소멸의 연속인 내 안에서 / 아득한 너

                                                                                         ―졸시 「떠돌이 별」전문

                                                                                                           (우이시 제19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