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 / 조 영 님
이상적(1804~1865)은 조선후기 역관으로 문명이 높았던 시인이다. 자는 惠吉이며 호는 藕船이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역관을 배출하여 출세한 가문으로 9대에 걸쳐 무려 30여 명이나 되는 역관이 나왔으며 특히 역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漢譯官을 가장 많이 배출하기도 하였다. 이상적 역시 한역관의 신분으로 12번이나 중국을 여행하였다. 그는 언어에 있어 중국인 못지 않은 달변인데다 문장까지 갖추었기에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유명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62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중국 사신으로 갔으니 시쳇말로 그는 ‘중국통’인 셈이었다. 그는 헌종으로부터 전답과 노비를 하사받았으며, 철종 때에는 특명으로 영구히 지중추부사의 직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그가 임금으로부터 은총을 입었다는 것은 그의 문집을 秘閣에서 간행하라는 어명을 받은 것이라 하겠다. 결국 그의 문집인『恩誦堂集』은 국내에서는 본인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다가 중국의 친구들에 의해 간행되게 되었다. 이상적은 시뿐만 아니라 금석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김정희가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하고 그 건립연대를 추정할 때 고증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상적은 그 신분이 역관의 중인이었지만 그는 주로 사대부들과 사귀었으며 특히 김정희와의 교분은「세한도」로 유명하다. 일찍이 김정희가 제주도로 귀양가 있을 때, 이상적은 세상에 흔하지 않은, 그것도 몇 해를 걸려서 구한 귀한 서적들과 문방구류를 머나먼 제주도로 보내주었다. 이에 김정희는 권세와 이해에 관계하지 않고 한결같은 정의를 보내온 그에게 감사의 뜻으로 소나무와 잣나무 4그루가 서있는 유배지의 설경 「세한도」를 그려보낸다. ‘歲寒’은『논어』에 나오는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의 함축이니, 곧 ‘날씨가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시듦이 늦음을 안다라 하였으니 송백이 사철을 통해 늘 푸르듯, 나를 향한 자네의 마음도 늘상 변함없네 그려. 권세와 이익이 없으면 교분도 성글어지는 것이 사람의 정리거늘 자네는 이전이나 이후나 한결같으니 내 고마운 마음을 이것으로 대신한다네’라는 뜻을 ‘세한도 제발’에 곁들여 놓았다. 이것을 받은 이상적은 중국의 16명의 학자에게 세한도를 보이며 제찬을 받았다. 이렇게 하여 저 유명하고 귀한「세한도」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의 시는 역관으로서 언어에 대한 탁월한 기교를 구사하여 섬세하고 화려하며 때로는 청아하다는 평을 받기도 하였다.
이상적의「논시절구」5수는 그의 문학관이 여실히 드러나 있는 작품들인데 이제 그 한 편을 감상하기로 하자.
시는 그림에서 그림은 시에서 詩參於畵畵參詩
오묘한 뜻이야 깨친 뒤나 아는 법 妙處從來悟後知
옛법에 얽매여 검다 누르다 말고 莫把驪黃拘古法
마굿간의 말들이 바로 내 스승 天閑萬馬是臣師
먼저 1구에서는 시와 그림이 하나라는 ‘詩畵一致’론이 제기되어 있다. 이는 당시 조선후기에 만연해 있던 ‘詩中有畵, 畵中有詩’의 예술풍조에 영향 받은 것이며 또한 그가 교류하였던 추사 김정희, 자하 신위는 모두 시서화 삼절로 유명했던 인물이었으니 그들의 영향이 적잖았으리라 보여진다. 2구에서는 선을 하여 깨우치는 것이나 시를 통해 깨우침에 이르는 것이나 모두 같은 것이라고 하는 ‘詩禪如一’의 문학관이 드러나 있다. 마지막으로 3, 4구에서는 작시에 있어 무엇보다도 시인의 독창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다음의 작품은「江州途中」이다.
촌 늙은이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靑藜扶野老
누런 송아지는 산골 집을 지킨다 黃犢守山家
나무하는 길은 숲을 뚫고 가늘게 뻗어 있고 樵逕穿林細
마을의 모습은 언덕을 따라 비스듬히 누웠네 村容逐岸斜
사슴은 시냇가 달빛 아래 잠들고 鹿眠溪半月
벌은 돌 사이 꽃에서 꿀을 딴다 蜂釀石間花
잠시 소나무 그늘에서 쉬면서 暫向松陰憩
맑은 샘물로 손수 차를 끓이노라 淸泉手煮茶
경상도 사천현의 어느 포구를 지나면서 지은 시이다. 촌로와 누렁 송아지가 있는 시골. 나무꾼들이 다니는 좁다랗게 뻗어 있는 길, 언덕 옆 비스듬히 위치해 있는 마을의 정경. 맑고 한가로운 시골의 정취가 느껴진다.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차를 끓이는 시인의 모습은 더없이 안온해 보인다. 사슴이며 벌이 자연 속에서 숨쉬고 먹고 잠들 듯, 시인 역시 애써 추구하지 않아도 이미 자연과 더불어 화락한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다음의 작품은 헌종 때 동지사를 따라 중국에 갔을 때 지은 시로,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記夢」이다.
담비 갖옷 안고 앉아서 잠시 따스하게 잠들었는데 坐擁貂裘少睡溫
어렴풋이 꿈길에 고향집을 찾았다네 依依歸夢到家園
눈이 개인 개울가 집일랑 쓰는 이 없고 雪晴溪館無人掃
오로지 매처학자만 문을 지킬 뿐 一樹梅花鶴守門
고향을 떠나 수 천 리 머나먼 중국을 여행하다가 갖옷을 입고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에 고향집을 찾았다. 눈이 개인 개울가 집. 눈길을 쓰는 이 아무도 없고 다만 집 앞에는 매처학자가 있어 지킬 뿐이다. 매처학자는 옛 은자인 林和靖이 아내도 자식도 없이 홀로 살면서 울안에 매화나무를 심고 학을 기른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후에 이 시가 중국의 문인에게 알려지면서 이상적은 ‘鶴守門’이란 별명을 얻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애써 꾸미려고 또 다듬으려 한 흔적이 없어 편안하다. 그러면서 타향에서 느끼는 향수를 잔잔하게 드러내는 솜씨가 사대부 못지 않다. 대개 중인문학은 문학성에 있어 뒤쳐진다는 평가를 많이 받곤 하는데 이상적의 작품은 섬세하고 화려한 시풍으로 인해 사대부는 물론이려니와 헌종도 그의 시집을 애독하였다 하니 작품성은 이미 입증되었다 할 수 있겠다. 문학사에서는 홍세태가 중인문학의 대부이자 역관문학의 창시자라면 이상적은 19세기 후반기 중인 및 역관문학의 총결산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이시 제1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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