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한담(漢詩閑談)

[스크랩] 적벽부(赤壁賦)-소식

운수재 2012. 9. 3. 09:13

적벽부(赤壁賦)

 

임술(壬戌) 가을 7월 기망(기望)에 소자(蘇子)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 노닐새,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 오고 물결은 일지 않더라. 술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고 요조(窈窕)의 장(章)을 노래하더니,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더라. 흰 이슬은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더라. 한 잎의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넓고도 넓게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더라.

 이에 술을 마시고 흥취가 도도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니,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상앗대로 속이 훤히 들이비치는 물을 쳐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도다. 아득한 내 생각이여, 미인(美人)을 하늘 한 가에 바라보도다." 손 중에 퉁소를 부는 이 있어 노래를 따라 화답(和答)하니,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하는 듯, 여음(餘音)이 가늘게 실같이 이어져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교룡(蛟龍)을 춤추이고 외로운 배의 홀어미를 울릴레라.

 소자(蘇子)가 근심스레 옷깃을 바루고 곧추앉아 손에게 묻기를 "어찌 그러한가?" 하니, 손이 말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난다.'는 것은 조맹덕(曹孟德)의 시가 아닌가?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山川)이 서로 얽혀 빽빽이 푸른데, 예는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곤욕(困辱)을 받은 데가 아니던가? 바야흐로 형주(荊州)를 깨뜨리고 강릉(江陵)으로 내려갈 제, 흐름을 따라 동으로 감에 배는 천 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어라. 술을 걸러 강물을 굽어보며 창을 비끼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일세(一世)의 영웅(英雄)이러니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물며 나는 그대와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며, 물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함에랴. 한 잎의 좁은 배를 타고서 술을 들어 서로 권하며, 하루살이 삶을 천지(天地)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알이로다. 우리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긴 강(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날으는 신선을 끼고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길이 마치는 것은 갑자기 얻지 못할 줄 알새, 끼치는 소리를 슬픈 바람에 부치노라."

 소자 말하되 "손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 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되 마침내 줄고 늚이 없으니, 변하는 데서 보면 천지(天地)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 데서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요? 또, 천지 사이에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이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서,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갈무리로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손이 기뻐하며 웃고,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드니 안주가 다하고 잔과 쟁반이 어지럽더라. 배 안에서 서로 팔을 베고 누워 동녘 하늘이 밝아 오는 줄도 몰랐어라.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임술(壬戌) 가을 7월 기망(기望)에 소자(蘇子)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 노닐새,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 오고 물결은 일지 않더라. 술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고 요조(窈窕)의 장(章)을 노래하더니,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더라. 흰 이슬은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더라. 한 잎의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넓고도 넓게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더라.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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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에 술을 마시고 흥취가 도도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니,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상앗대로 속이 훤히 들이비치는 물을 쳐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도다. 아득한 내 생각이여, 미인(美人)을 하늘 한 가에 바라보도다." 손 중에 퉁소를 부는 이 있어 노래를 따라 화답(和答)하니,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하는 듯, 여음(餘音)이 가늘게 실같이 이어져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교룡(蛟龍)을 춤추이고 외로운 배의 홀어미를 울릴레라.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소자(蘇子)가 근심스레 옷깃을 바루고 곧추앉아 손에게 묻기를 "어찌 그러한가 ? " 하니, 손이 말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난다.' 는 것은 조맹덕(曹孟德)의 시가 아닌가 ?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山川)이 서로 얽혀 빽빽이 푸른데, 예는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곤욕(困辱)을 받은 데가 아니던가 ? 바야흐로 형주(荊州)를 깨뜨리고 강릉(江陵)으로 내려갈 제, 흐름을 따라 동으로 감에 배는 천 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어라. 술을 걸러 강물을 굽어보며 창을 비끼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일세(一世)의 영웅(英雄)이러니 지금 어디에 있는가 ? 하물며 나는 그대와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며, 물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함에랴. 한 잎의 좁은 배를 타고서 술을 들어 서로 권하며, 하루살이 삶을 천지(天地)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알이로다. 우리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긴 강(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날으는 신선을 끼고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길이 마치는 것은 갑자기 얻지 못할 줄 알새, 끼치는 소리를 슬픈 바람에 부치노라.”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소자 말하되 "손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 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되 마침내 줄고 늚이 없으니, 변하는 데서 보면 천지(天地)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 데서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요? 또, 천지 사이에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이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서,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갈무리로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손이 기뻐하며 웃고,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드니 안주가 다하고 잔과 쟁반이 어지럽더라. 배 안에서 서로 팔을 베고 누워 동녘 하늘이 밝아 오는 줄도 몰랐어라.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임술(壬戌) 가을 7월 기망(기望)에 소자(蘇子)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 노닐새,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 오고 물결은 일지 않더라. 술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고 요조(窈窕)의 장(章)을 노래하더니,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더라. 흰 이슬은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더라. 한 잎의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넓고도 넓게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더라.- 적벽의 야경과 흥취

 이에 술을 마시고 흥취가 도도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니,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상앗대로 속이 훤히 들이비치는 물을 쳐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도다. 아득한 내 생각이여, 미인(美人)을 하늘 한 가에 바라보도다." 손 중에 퉁소를 부는 이 있어 노래를 따라 화답(和答)하니,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하는 듯, 여음(餘音)이 가늘게 실같이 이어져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교룡(蛟龍)을 춤추이고 외로운 배의 홀어미를 울릴레라.- 주흥이 일어남

 소자(蘇子)가 근심스레 옷깃을 바루고 곧추앉아 손에게 묻기를 "어찌 그러한가 ? " 하니, 손이 말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난다.' 는 것은 조맹덕(曹孟德)의 시가 아닌가 ?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山川)이 서로 얽혀 빽빽이 푸른데, 예는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곤욕(困辱)을 받은 데가 아니던가 ? 바야흐로 형주(荊州)를 깨뜨리고 강릉(江陵)으로 내려갈 제, 흐름을 따라 동으로 감에 배는 천 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어라. 술을 걸러 강물을 굽어보며 창을 비끼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일세(一世)의 영웅(英雄)이러니 지금 어디에 있는가 ? 하물며 나는 그대와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며, 물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함에랴. 한 잎의 좁은 배를 타고서 술을 들어 서로 권하며, 하루살이 삶을 천지(天地)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알이로다. 우리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긴 강(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날으는 신선을 끼고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길이 마치는 것은 갑자기 얻지 못할 줄 알새, 끼치는 소리를 슬픈 바람에 부치노라.”- 손의 말

 소자 말하되 "손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 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되 마침내 줄고 늚이 없으니, 변하는 데서 보면 천지(天地)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 데서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요? 또, 천지 사이에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이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서,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갈무리로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소자의 말(손의 말에 대한 반론)

 손이 기뻐하며 웃고,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드니 안주가 다하고 잔과 쟁반이 어지럽더라. 배 안에서 서로 팔을 베고 누워 동녘 하늘이 밝아 오는 줄도 몰랐어라.- 두 사람의 화해

이완근

이완근 요점 정리

이완근 작자 : 소식(蘇 軾)/ 이응백(李應百)옮김
이완근 성격 : 자연 친화, 낭만적, 철학적, 사색적, 낙천적, 운문적, 설리적
이완근 사상적 배경 : 노장사상(老莊思想)과 불교의 제행무상
(諸行無常 : 우주의 모든 사물은 늘 돌고 변하여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아니함), 자연친화사상
circle01_blue.gif 특징 : 대화의 기법, 서정, 서사, 서경, 설교적 표현기법, 인간의 보편적 관심사 생사(生死)문제, 관점의 차이 이해
circle01_blue.gif 갈래 : 부(賦)
circle01_blue.gif 배경 : 공간적 배경은 적벽강, 시간적 배경은 가을 달밤
circle01_blue.gif 표현상 특징 : 
① 대화(문답법)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② 변증법적 사고에 의해 결론을 이끌어 간다. 대구법 사용
③ 작자의 인생관이 잘 나타난다.
④ 자연 현상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동양적인 전통 사상이 담겨 있다.
circle01_blue.gif 주제 : 적벽 아래에서 노닐며 느낀 인생과 자연에 대한 깨달음
(손은 인생을 허무한 것으로  보고, 소자는 무한한 본체의 관점에서 인생을 보면 삶과 죽음은 같은 것이라는  달관의 자세를 보임),  적벽에서 느낀 인생의 순간성과 자연의 영원성 

단계

내용

특징

적벽의 야경과 흥취

풍류적

주흥과 퉁소 연주

손의 말 : 역사 회고와 인생의 무상

회고적, 무상감

소자의 말 : 사물의 무한한 본질과 시름의 극복

긍정적, 낙천적

두 사람의 화해(의견 일치)

circle01_blue.gif 줄거리 :

 임술년 7월 16일 소자는 손과 함께 적벽 아래에서 놀았다. 손[客]과 더불어 술을 마시고 달밤의 아름다운 정취를 시로 읊으며 배를 타고 노닐면서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흠뻑 맛보았다. 이에 흥취가 도도해 흥겨운 노래를 부르고 손은 퉁솔 화답하는데, 그 퉁소 소리가 슬픈 가락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소자는 손에게 왜 퉁소의 가락이 슬프냐고 묻자, 손은 '이 곳에서 이름을 떨쳤던 조조와 같은 천하의 영웅도 간 곳이 없으니, 우리 같은 하찮은 인생은 오죽 유한하겠는가. 그래서 허무한 마음이 들어 퉁소 가락에 그 슬픔을 실었노라.'고 말한다. 그래서 소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손을 위로한다.

 '변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유한한 것이겠지만, 변하지 않다는 관점에서 보면 사물이든 우리 인간이든 모두 다함이 없는 것이니 걱정 말고 함께 즐기자.'

 손이 소자의 말에 공감하여 두 사람은 밤새도록 술을 들며 함께 어우러져 풍류를 즐겼다.

 

dia_bluve.gif 내용 연구

 임술(壬戌 : 임술년. 여기서는 송나라 신종의 연호인 원풍 5년을 가리킴. 이때 소식의 나이는 47세) 가을 7월 기망(기望 : 음력 16일. 보름날의 만월을 지난 다음날)에 소자(蘇子 : 소식 자신을 가리켜 말함)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 중국 후베이 성에 있는 암벽으로 붉은 빛을 띠고 있다.) 아래 노닐새,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 오고 물결은 일지 않더라. 술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시경'에 나오는 '진풍 월출편'의 시' )를 외고 요조(窈窕 : 시경의 남풍의 관저편으로 추정)의 장(章)을 노래하더니('시경'에 나오는 '진풍' 월출편'의 시를 외우고, 소식의 풍류객의 모습이 반영된 구절. 대구법),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더라. 흰 이슬은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더라(일망무제). 한 잎의 갈대 같은 배(일엽편주)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갈아 놓은 밭의 한 두둑과 한 고랑을 합하여 이르는 말)의 아득한 물결(만경창파/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 물빛은 하늘에 이었더라 : 달이 떠서 동남쪽 하늘에서 고요히 빛을 내고 있었고, 밤 이슬이 강변의 풀잎에 맺히며, 강물은 아득하고 넓어서 마치 하늘과 맞붙어 있는 것 같았다. 대구법으로 자연의 정경을 묘사한 부분. 북두성과 견우성의 중간은 동남쪽을 가리킴.)을 헤치니, 넓고도 넓게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더라[우화등선(羽化登仙) : 사람의 몸에 날개가 돋아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됨. 《진서(晉書)》의 허매전(許邁傳)에 나오는 말이다.]
- 적벽의 야경과 흥취

임술 : 임술년. 여기서는 송나라 신종의 연호인 원풍 5년을 가리킴. 이때 소식의 나이는 47세
기망 : 음력 16일. 보름날의 만월을 지난 다음날
소자 : 소식 자신을 가리켜 말함
적벽 : 중국 후베이 성에 있는 암벽으로 붉은 빛을 띠고 있다.
이랑 : 갈아 놓은 밭의 한 두둑과 한 고랑을 합하여 이르는 말
명월의 시를 ~ 장을 노래하더니 : '시경'에 나오는 '진풍' 월출편'의 시를 외우고, 소식의 풍류객의 모습이 반영된 구절. 대구법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 물빛은 하늘에 이었더라 :
달이 떠서 동남쪽 하늘에서 고요히 빛을 내고 있었고, 밤 이슬이 강변의 풀잎에 맺히며, 강물은 아득하고 넓어서 마치 하늘과 맞붙어 있는 것 같았다. 대구법으로 자연의 정경을 묘사한 부분. 북두성과 견우성의 중간은 동남쪽을 가리킴.

 이에 술을 마시고 흥취가 도도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니,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상앗대(초사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용사의 예)로 속이 훤히 들이비치는 물을 쳐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도다. 아득한 내 생각이여, 미인(美人)을 하늘 한 가에 바라보도다." 손 중에 퉁소를 부는 이 있어 노래를 따라 화답(和答)하니,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하는 듯, 여음(餘音)이 가늘게 실같이 이어져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교룡(蛟龍 : ①상상 속에 등장하는 동물의 하나. 모양이 뱀과 같고 몸의 길이가 한 길이 넘으며 넓적한 네 발이 있고, 가슴은 붉고 등에는 푸른 무늬가 있으며 옆구리와 배는 비단처럼 부드럽고 눈썹으로 교미하여 알을 낳는다고 한다. ②때를 못 만나 뜻을 이루지 못한 영웅호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춤추이고 외로운 배의 홀어미를 울릴레라.
-
주흥이 일어남

도도해 : 거침없이 그득 퍼져 흘러
상앗대 : 삿대
미인 : 마음에 드는 좋은 사람. 또는 아름다운 여인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이지만, 임금을 가리키기도함.
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 오르는 것 같더라. :
자연 속에서 풍류를 즐기는 서정적 자아의 흥취를 표현한 구절로 세속을 잊고 그 무엇에도 구애받음이 없는 자유의 경지를 읊고 있음.
손 중에 퉁소를 부는 이 ~ 홀어미를 울릴레라 :
같이 뱃놀이를 하는 손님중에 한 사람이 나의 노래에 맞추어 퉁소를 연주하는데 그 소리가 매우 애절하였으며 그 여운이 길게 이어져 물 속의 용과 의지할 곳 없는 홀어머니 마음까지 움직일 듯했다. '교룡'은 물 속에 사는 뿔 없는 용을 가리키고, '외로운 배의 홀어미'는 한 척의 배를 집으로 삼아 의지할 곳이 없이 지내는 홀어미를 뜻함. 퉁소 소리를 슬프고   하소연하는 듯하다고 한 것은 감정 이입된 표현이다. 여운이 길게 이어져 교룡과 홀어미의 마음을 울리었다는 말은 사람의 심금을 울릴 만큼 그 소리가 애절한 느낌을 주었다는 뜻임. 대구에 의한 표현으로 퉁소 소리의 느낌을 드러내고 있다. 

 소자(蘇子)가 근심스레 옷깃을 바루고 곧추앉아 손에게 묻기를 "어찌 그러한가 ?(어찌 그리 신통한 소리를 내는가) " 하니, 손이 말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난다.' 는 것은 조맹덕(曹孟德)의 시가 아닌가 ?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山川)이 서로 얽혀 빽빽이 푸른데, 예는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곤욕(困辱)을 받은 데가 아니던가(조조가 주유의 군사에게 대패한 장소) ? 바야흐로 형주(荊州)를 깨뜨리고 강릉(江陵)으로 내려갈 제, 흐름을 따라 동으로 감에 배는 천 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어라(군대의 위용). 술을 걸러 강물을 굽어보며 창을 비끼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일세(一世)의 영웅(英雄)이러니 지금 어디에 있는가(죽고 없음, 무상한 인생) ? 하물며 나는 그대와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며, 물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함에랴.(서민의 생활, 맹덕과 주랑->영웅, 나. 그대->서민) 한 잎의 좁은 배를 타고서 술을 들어 서로 권하며, 하루살이 삶을 천지(天地)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알이로다(보잘것 없는 자신의 삶). 우리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긴 강(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날으는 신선을 끼고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길이 마치는 것은 갑자기 얻지 못할 줄 알새, 끼치는 소리를 슬픈 바람에 부치노라.”
- 손의 말

바루고 : 바르게 하고
곧추 : 굽히거나 구부리지 않고 곧게
조맹덕 : 위의 조조
하구, 무창 : 중국 후베이 성의 지명.
주랑 : 오의 장수인 주유.
"어찌 그러한가?" :
어찌 그리 신통한 소리를 내는가? 소동파의 노래 소리에 맞춰 연주하는 퉁소 소리가  손의 비감한 마음을 절실하게 잘 드러내었다는 뜻
산천이 서로 얽혀 ~ 받은 데가 아니던가? :
산과 강은 한데 어울려 푸르렀는데, 우리가 지금 뱃놀이하고 있는 이 곳은 조조가 주유에게 참패를 당했던 적벽 대전이 있었던 곳이 아닌가? 자연 경치를 바라보면서 인간의 삶을 생각해 보고 있다. 자유 연상의 방법으로 역사를 회고하는 대목이다.
바야흐로 형주를 깨뜨리고 ~ 지금 어디에 있는가? :
조조는 유비의 군대를 연파하고 강릉에서 유비를 추격하여 백만의 대군을 태운 대선단으로 장강을 기세 좋게 내려갔다. 그렇게 위풍당당하던 조조는 주유의 화공으로 참패한 채 육로로 도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어디에 있는가?' 라는 구절은 패전한 조조의 비참한 모습을 나타냄과 동시에 인생의 무상함을 드러내고 있다. '배는 천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어라.' 는 구절은 조조의 수군의 위용을 묘사한 부분이다.
하루살이 삶을 천지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알이로다. :
하루살이 같은 덧없는 삶을 광활한 천지에 견주니 우리 인생이란 것은 넓은 바다의 좁쌀 한 톨에 지나지 않는구나. 대자연의 광활함과 영원함에 비할 때 우리들의 인생은 너무나 덧없다는 것을 토로한 대목
신선을 끼고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길이 마치는 것은 갑자기 얻지 못 할 줄 알새, :
신선과 더불어 즐겁게 노닐고, 밝은 달을 안고 길이 운명을 같이하기란 별안간에 수월히 이루어질 수 없는것임을 알므로. 인생의 유한함을 표출함.
조맹덕의 시 :
조맹덕은 조조. 조조는 그의 시 '단가행'에서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난다."고 하였는데, 달이 밝으면 별빛이 희미하듯이 조조 자신의 위력에 군웅(群雄)이 그림자를 감추는 것과 같으며, 까치가 남쪽으로 세 번 돌아도 의지할 가지가 없다."는 말이 이어져 있는데, 이는 유비 등이 그처럼 몸을 붙일 데도 없이 남쪽으로 패주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조조의 시를 끌어 온 것은 자연스럽게 그 다음에 이어지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생각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조조는 문학을 사랑하여, 많은 문인들을 불러들였으며, 자신도 그 아들 조비·조식과 함께 시부의 재능이 뛰어나 이른바 건안문학의 흉륭을 가져 오게 하였다. 후세에 조조는 간신의 전형처럼 여겨져 왔는데, 근년에 이르러 중국 사학계에서는 그의 재평가를 둘러싼 논쟁이 일기도 하였다.

 소자 말하되 "손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 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강물의 영원함)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되 마침내 줄고 늚이 없으니(달의 영원함), 변하는 데서 보면 천지(天地)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 데서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요?(우리들 개개의 존재는 각기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 천지 사이에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이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서,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造物主 물건을 잘 정리하여 간수함)의 다함이 없는 갈무리로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_ 소자의 말(손의 말에 대한 반론)

터럭 : 길고 굵은 털
조물주 : 조화옹
갈무리 : 물건을 잘 정리하여 간수함.
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 ~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
물이 흘러간다는 것과 달이 차고 기운다는 것을 변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천지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이며,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강물이나 달이나 언제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라고 할 수 있으니, 모든 사물과 나도 또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는 뜻. 소자는 강물이 영원히 흐르고, 달도 영원히 비추고 있는 사물의 본체라는 관점에서 보면 만물은 다 같은 것임을 설파하여 인생의 무상을 극복하고 있다. 서정과 철학을 융합한 대표적인 대목이다.
강 위의 밝은 바람과 ~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
대자연은 소유주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향유해도 소모됨이 없으니, 그대와 내가 즐길 만한 것이다. 인생에 대한 필자의 직접적 서술이라는 수필적 성격을 갖고 있음을 확인하는 대목임.

 손이 기뻐하며 웃고(소자의 말을 듣고 인생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음),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드니 안주가 다하고 잔과 쟁반이 어지럽더라. 배 안에서 서로 팔을 베고(손과 소자의 화해 : 의견 일치) 누워 동녘 하늘이 밝아 오는 줄도 몰랐어라. - 두 사람의 화해

손이 기뻐하여 웃고, ~ 오는 줄도 몰랐어라. : 무한하고 영원한 사물의 본체라는 관점의 소자의 말을 들은 손이,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기뻐하여 소자와 즐겁게 술을 나누고 동이 트는 줄도 모르고 배위에 함께 누워 있었다. 두 사람의 생각이 일치하고, 인생관의 차이를 극복하고 화해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동양적 사고의 표현임.

㈎ 임술(壬戌) 가을 7월 ①기망(旣望)에 소자(蘇子)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 노닐새,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 오고 물결은 일지 않더라. ㉠술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우고 ②요조(窈窕) 장(章)을 노래하더니,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 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더라. 흰 이슬은 강에 ③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더라.

㉡한 잎의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넓고도 넓게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④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더라. (적벽의 야경과 흥취)

㈏ 이에 술을 마시고 흥취가 ⑤도도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니,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상앗대로 속이 훤히 들이비치는 물을 쳐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도다. 아득한 내 생각이여, ⑥미인(美人)을 하늘 한 가에 바라보도다." ㉤손 중에 퉁소를 부는 이 있어 노래를 따라 화답(和答)하니,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하는 듯, 여음(餘音)이 가늘게 실같이 이어져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교룡(蛟龍)을 춤추이고 외로운 배의 홀어미를 울릴레라. (주흥이 일어남)

① 기망(旣望) 16일 밤, 보름날의 만월(滿月)이 지난 다음 날
② 요조(窈窕) 부녀자의 행실이 아리땁고 얌전함
(요조(窈窕) 장(章 시경(詩經)에 나오는 시의 일부)
③ 비끼고
(비스듬이 비치고)
④ 가붓가붓 여럿이 다 조금 가벼운 모양
(가벼이 나부끼는 모양)
⑤ 도도해 물이 그득 넘쳐 흐르는 모양
(즐거움이 넘쳐)
⑥ 미인(美人) 아름다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 마음에 그리는 사람)

밑줄친 구절(㉠~㉤)에 알맞는 고사성어를 적용해 보기.

㉠ 음풍농월(吟風弄月) : 맑은 바람과 밝은 달에 대하여 시를 짓고 즐겁게 놂.
㉡ 유유자적(悠悠自適) : 아무것에도 속박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조용하고 가만히 생활하는 일
㉢ 만경창파(萬頃蒼波) : 한없이 넓고 넓은 바다
㉣ 우화등선(羽化登仙) : 날개가 돋아 하늘에 오르는 신선과 같다.
㉤ 고장난명(孤掌難鳴) : 혼자서는 일을 하지 못함.(=獨掌不鳴)

circle01_blue.gif 서술 양식의 특성

① 글의 전개가 시간적 순서로 되어 있다.
② 서정적 정감을 드러내기에 힘썼다.
③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작품이 전개되고 있다.
④ 장면 묘사를 통하여 배경과 상황을 생동감 있게 그렸다.
⑤ 대상이 화자의 의식 속에서 그 의미가 주관화되고 있다.
⑥ 심리 변화에 초점을 맞춰 인물의 내면을 분석하고 있다.
⑦ 처음에는 사실을 제시하고 뒤에는 느낌을 표현했다.
⑧ 자연과 인간의 대비를 통해 점층적인 효과를 가져 왔다.
⑨ 자연과 인간의 친화에 바탕을 둔 상상의 세계를 펼쳐 보였다.
⑩ 윗글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 긴요한 것은 시  공간 배경의 이해이다.

circle01_blue.gif 글의 구성

㈎ 적벽에서의 즐거운 뱃놀이
㈏ 흥취와 슬픈 퉁소 소리 

㈎ 소자(蘇子)가 근심스레 옷깃을 바루고 ①곧추 앉아 손에게 묻기를 "어찌 그러한가?" 하니, 손이 말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②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난다.'는 것은 조맹덕(曹孟德)의 시가 아닌가?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山川)이 서로 얽혀 빽빽히 푸른데, 예는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③곤욕(困辱)을 받은 데가 아니던가? 바야흐로 형주(荊州)를 깨뜨리고 강릉(江陵)으로 내려갈제,흐름을 따라 동으로 감에 배는 천 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어라. 술을 ④걸러 강물을 굽어보며 창을 비끼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일세(一世)의 영웅(英雄)이러니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물며 나는 그대와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며, 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함에랴. 한 잎의 좁은 배를 타고서 술을 들어 서로 권하고, 하루살이 삶을 천지(天地)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알이로다. 우리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긴 강(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날으는 신선을 끼고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길이 마치는 것은 갑자기 얻지 못 할 줄 알새, ⑤끼치는 소리를 슬픈 바람에 부치노라."(손의 말 - 조맹덕의 시구, 적벽대전의 회곡)

㈏ 소자 말하되 "손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⑥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⑦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되 마침내 줄고 늚이 없으니, 변하는 데서 보면 천지(天地)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 데서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오. 또, 천지 사이에 ⑧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⑨터럭이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서, 가져도 금할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⑩갈무리로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소자의 말 - 손의 말에 대한 반론)

㈐ 손이 기뻐하며 웃고,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드니 안주가 다하고 잔과 쟁반이 어지럽더라. 배안에서 서로 팔을 베고 누워 동녘 하늘이 밝아오는 줄도 몰랐어라. (두 사람의 화해)

① 곧추 굽히거나 구부러지지 않고 곧게
② 성긴데 공간적으로 사이가 뜨다
③ 곤욕(困辱) 심한 모욕(패전의 쓰라림을 겪은)
④ 걸러 매달려 있다. (술을 마심)
⑤ 끼치는 (가슴에 사무치는)
⑥ 가는 것 (흘러가는 물)
⑦ 차고 비는 것 (차고 기우는 달)
⑧ 사물 일과 물건 (사유물(私有物))
⑨ 터럭 털 (조금, 추호(秋毫))
⑩ 갈무리 일을 처리하여 마무리하는 것, 창고 (물건을 정돈하여 간수하는 것)

 

1)壬戌之秋(임술지추), 七月2)旣望(칠월기망), 蘇子與客(소자여객), 泛舟遊於3)赤壁之下(범주유어적벽지하).淸風徐來(청풍서래), 水波不興(수파불흥). 擧舟4)屬客(거주촉객), 誦5)明月之詩(송명월지시), 歌6)窈窕之章(가요조지장).少焉(소언), 月出於東山之上(월출어동산지상), 徘徊於7)斗牛之間(배회어두우지간)白露橫江(백로횡강), 水光接天(수광접천). 縱8)一葦之9)所如(종일위지소여), 10)凌萬頃之茫然(능만경지망연).11)浩浩乎(호호호), 如12)憑虛御風(여빙허어풍), 而不知其所止(이부지기소지).13)飄飄乎(표표호), 如14)遺世獨立(여유세독립), 15)羽化而登仙(우화이등선).於是(어시), 飮酒樂甚(음주락심). 16) 舷而歌之(구현이가지).歌曰(가왈), [17)桂棹兮蘭 (계도혜난장), 擊18)空明兮 19)流光(격공명혜소류광). 20)渺渺兮21)予懷(묘묘혜여회), 望22)美人兮23)天一方(망미인혜천일방).客有吹24)洞簫者(객유취통소자), 倚歌而和之(의가이화지). 其聲25)嗚嗚然(기성오오연), 如怨如慕(여원여모), 如泣如訴(여읍여소), 餘音26)  (여음요요), 不絶如縷(부절여루).舞27)幽壑之28)潛蚊(무유학지잠문), 泣29)孤舟之釐婦(읍고주지리부).蘇者30) 然正襟(소자추연정금), 31)危坐而問客曰(위좌이문객왈),[何爲其然也(하위기연야).]客曰(객왈), [32)月明星稀 烏鵲南飛(월명성희 오작남비), 此非曹孟德之詩乎(차비조맹덕지시호). 西望33)夏口(서망하구), 東望34)武昌(동망무창), 山川上繆(산천상무), 35)鬱乎蒼蒼(울호창창). 此非36)孟德之困於 周郞者乎(차비맹덕지곤어 주랑자호).方其破荊州(방기파형주), 下江陵(하강릉), 順流於東也(순류어동야), 37)  千里(축로천리), 38)旌旗蔽空(정기폐공). 39) 酒臨江(시주임강), 40)橫 賦詩(횡삭부시). 固一世之雄也(고일세지웅야). 而今安在哉(이금안재재). 況吾與子(황오여자).41)漁樵於42)江渚之上(어초어강저지상), 侶魚43)蝦而友44) 鹿(여어하이우미록). 賀一葉之扁舟(하일엽지편주), 擧45)匏樽而46)相屬(거포준이상촉), 寄47)  於天地(기부유어천지), 渺滄海之一粟(묘창해지일속). 哀吾生之48)須臾(애오생지수유), 長江之無窮(이장강지무궁). 挾飛仙49) 遊(협비선오유), 抱明月而長終(포명월이장종), 知不可乎50)驟得(지부가호취득), 託51)遺響於52)悲風(탁유향어비풍)蘇者曰(소자왈) [客亦知夫水與月乎(객역지부수여월호). 53)逝者如斯(서자여사), 而54)未嘗往也(이미상왕야). 盈55)虛者如彼(영허자여피), 而卒莫消長也(이졸막소장야), 蓋將自其變者而觀之(개장자기변자이관지), 則天地曾不(칙천지증불),能以一瞬(능이일순). 56)自其不變者而觀之(자기불변자이관지). 則物與我皆無盡也(즉물여아개무진야). 而又何 乎(이우하이호), 且夫天地之間(차부천지지간), 物各有主(물각유주), 苟非吾之所有(구비오지소유), 雖一毫而莫取(수일호이막취).惟江上之淸風(유강상지청풍), 與山間之明月(여산간지명월), 而得之而爲聲(이득지이위성), 目遇之而成色(목우지이성색). 57)取之無禁(취지무금), 用之不竭(용지불갈), 是58)造物者之59)無盡藏也(시조물자지무진장야). 而吾與者之所共樂(이오여자지공락),客喜而笑(객희이소), 洗盞更酌(세잔갱작). 60)肴核旣盡(효핵기진), 61)杯盤62)狼藉相與63)枕籍乎舟中(배반낭자상여침적호주중), 不知東方之旣64)白(부지동방지기백).

 

주(註) - 일부 한자 지원되지 않음

1) 壬戌(임술) 송(宋) 원풍5년    
2) 旣望(기망) 음력 16일
3) 赤壁(적벽) 양자강 상류에 있는 황강현 황주의 강언덕 이름
4) 屬客(촉객) 손님에게 (술을) 따르다.
5) 明月之詩(명월지시) 시경(詩經) 진풍(陣風)에 있는 월출편(月出編)
6) 窈窕之章(요조지장) 서경(書經) 국풍(國風) 주남(周南)에 있는 관저편(關雎篇)
7) 斗牛之間(두우지간) 북두성과 견우성의 중간
8) 一葦(일위) 한 잎의 갈대. 작은 배를 가리킨다.
9) 所如(소여) 여(如)는 왕(往), 거(去)의 뜻. 가는 대로
10) 凌萬頃之茫然(능만경지망연) 凌은 (배 같은 것을) 타고 건너가다. 萬頃은 한 없이 너른 바다. 望然은 하도 너르고 멀어서 아득한 모양을 말함.
11) 浩浩乎(호호호) 넓은 것을 뜻하는 형용사
12) 憑虛御風(빙허어풍) 憑은 의지한다. 虛는 허공을 가리키며, 御는 乘과 같다.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간다는 말은 마음이 이미 신선의 경지에 들어가고 있음을 말함.
13) 飄飄乎(표표호) 가볍게 나부끼는 모습. 여기서는 몸이 두둥실 가벼이 떠오른 모양을 말함.
14) 遺世獨立(유세독립) 遺世(유세)는 속세를 떠나다. 속세를 떠나 그 어떠한 사물에도 속박되지 아니한 대자연의 경지를 말함
15) 羽化而登仙(우화이등선) 몸에 날개가 돋치어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르다.
16)  舷(구현) 뱃전을 치다.
17) 桂棹兮蘭 (계도혜난장) 계수나무로 만든 노(櫓)와 난나무로 만든 상앗대
18) 空明(공명) 달이 물속을 환히 비친 것을 가리킴.
19) 流光(류광) 달빛으로 물결이 반짝이는 것.
20) 渺渺(묘묘) 아득히 먼 모양   
21) 予懷(여회) 자기가 품고 있는 회포
22) 美人(미인) 평소에 사모하여 잊지 못하는 사람. 군자(君子)를 비유한 것
23) 天一方(천일방) 하늘 저 한 쪽. 조정을 가리키는 설(?)
24) 洞簫(통소) 퉁소) 악기 이름  
25) 嗚嗚然(오오연) 구슬픈 소리의 형용.
26)   (요요) 실같이 가늘고 긴 것을 표현한 형용사. 가날프고 길게 이어지다.
27) 幽壑(유학) 깊은 골짜기
28) 潛蚊(잠문) 숨어 있는 교룡(蛟龍)) 교룡-뿔 없는 용
29) 孤舟之釐婦(읍고주지이부) 孤舟(고주)는 외로운 작은 배요, 釐婦(이부)는 과부이니 의지할 곳 없어 작은 배를 삼고 외로이 지내는 과부를 말한다.
30)  然(추연) 감상에 젖어 얼굴색이 변한 모습. 애처로운 얼굴빛
31) 危坐(위좌) 몸을 바로 세우고 단정히 앉는 것. 단좌(端坐) 도는 정좌(正坐)와 같다.
32) 月明星稀 烏鵲南飛(월명성희 오작남비) 조조(曹操)가 지은 단가행(短歌行)이라는 시(詩)의 일절
33) 夏口(하구) 지명)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한구(漢口)
34) 武昌(무창) 지명)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무창
35) 鬱乎(울호) 초목이 빽빽하게 들어서 무성한 모양
36) 孟德之困於 周郞(맹덕지곤어 주랑) 맹덕은 조조의 자(字). 주랑은 주유(周喩). 적벽대전에 조조가 주유에게 크게 패한 것을 말함.
37)   千里(축로천리)   (축로)는 배의 뒤쪽( ) 즉 선미(船尾)와 배의 앞머리( ) 즉 선두(船頭). 배가 천리를 잇닿아 있음을 뜻한다.
38) 旌旗(정기) 군(軍)에서 쓰는 여러 가지 기     
39)  酒(시주) 술을 따르다.
40) 橫 (횡삭)  (삭)은 여덟자나 되는 긴 창. 창을 가로 놓다.
41) 漁樵(어초) 고기 잡고 나무 하는 일   
42) 江渚(강저) 강 가
43) 蝦(하) 새우 
44)  (미) 고라니
45) 匏樽(포준) 표주박 술잔      
46) 相屬(상촉) 주객(主客)이 서로 술을 권하는 일
47)   (부유) 하루살이 48) 須臾(수유) 잠깐 동안, 눈 깜짝할 사이
49)  遊(오유) 멀리 가서 놀다. 밖에 나와 자유롭게 노니는 것.
50) 驟(취) 갑짜기, 쉽사리      
51) 遺響(유향) 퉁소 소리의 여운(餘韻)
52) 悲風(비풍) 가을 바람(秋風)
53) 逝者如斯(서자여사) 일찍이 공자가 한 말로써, 흐르는 물은 잠시도 쉬지 않고 밤낮으로 흐른다는 말이다.
54) 未嘗往也(미상왕) 돌아온 일이 없다.  
55) 盈虛(영허) 곧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
56) 自其變者而觀之(자기변자이관지)~ 우주 만상을 동적(動的)인 개념으로 본다면 어느 것 하나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 없고, 불변(不變)의 개념으로 본다면 천지 만물(天地萬物)은 오직 하나의 근원이라, 나고 죽음이 따로 없으니, 그 생명 또한 무한(無限)하여 다함이 없다.
57) 取之(취지) 맑은 바람을 쏘이고 밝은 달을 보는 것.
58) 造物者(조물자) 조물주(造物主)
59) 無盡藏(무진장) 한 없이 있는 보물, 써도 써도 다함이 없는 한정 없이 많은 것.
60) 肴核(효핵) 肴(효)는 어육(魚肉)의 안주요, 核(핵)은 과실(果實)의 안주임. 술안주와 과실
61) 杯盤(배반) 잔과 접시        
62) 狼藉(낭자) 어지럽게 흩어지다.
63) 枕籍(침적) 베개 삼아 베고 눈고, 깔고 앉다.
64) 白(백) 하얗게 날이 새는 것

 

이완근 이해와 감상

 당송(唐宋) 팔대가의 하나인 소식(호 동파(東坡)가 황주에 유배되어 있을 때, 적벽 아래에서 한 나그네와 함께 뱃놀이를 한 이야기를 읊은 운문이다. 인생의 의미를 적벽 대전의 영웅인 조조와 주유를 회상하고 인생이란 덧없는 것이라는 것과, 무한한 본체의 관점에서 보면 만물이 다 같은 것임으로 반론을 제시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내용상 전편과 후편으로 나누는데, 전편에서 작가는 삼국 시대에 유비와 조조의 군사가 격렬한 싸움을 벌였던 적벽에서 친구들과 뱃놀이를 하면서 옛날을 회고하고 인생과 대자연의 의미를 노래한다. 그리고 후편에서는 적벽의 겨울 풍경이 지닌 아름다움을 감동어린 시선으로 묘사한다. 한편 이러한 내용 가운데서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노장 사상의 영향을 받은 전편의 뒷부분과 후편이다. 이 부분에서 작자는 자연의 장구한 시간성에 비하여 순간에 지나지 않는 인생의 짧음을 한탄함으로써 자연으로 귀의하고자 하는 마음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해와 감상1

 송나라 원풍(元豊, 송의 연호) 5년(1082) 가을 7월 16일의 달 밝은 밤에 소동파가 적벽에서 뱃놀이를 하며 삼국의 영웅인 조조(曹操)와 주유(周瑜)의 풍류에 비겨 자신의 덧없는 인생을 생각하고, 결국은 저들이나 자신이 다 무한한 생명 앞에서는 모두 덧없는 존재라는 것과, 무한한 본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만물이 다 같은 것임을 깨닫고 시름을 잊는다는 내용을 술회한 명문이다.

 적벽강은 한(漢)나라 때 유비(劉備)와 조조(曹操)가 싸웠던 전쟁터이다. 이 작품은 소식이 황주(黃州)로 유배 갔을 때 친구들과 뱃놀이를 하면서 지은 것인데. 전.후 적벽부 2편이 있다. 그러니까 이 글에 이어서 쓴 '후적벽부'도 있다는 것이다.

 '부(賦)'는 한문체의 하나로 글귀 끝에 운을 달고 대(對)를 맞추어 짓는다. 때로는 '감상을 느낀 그대로 읊은 글'의 뜻으로도 쓰인다. 이 작품은 중국의 명문(名文)을 가려 뽑은 책인 <고문진보(古文眞寶)>에 들어 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조정의 비리를 풍자한 혐의를 받아 황주(黃州)로 유배 갔을 때 지은 것이라고 한다. 전편에서 작가는 삼국 시대에 유비와 조조의 군사가 격렬한 싸움을 벌였던 적벽에서 친구들과 뱃놀이를 하면서 옛날을 회고하고 인생과 대자연의 의미를 노래하고 있으며, 후편에서는 적벽의 겨울 풍경이 지닌 아름다움을 감동 어린 시선으로 묘사한다.

 한편 이러한 내용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노장(老莊) 사상의 영향을 받은 전편의 뒷부분과 후편이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자연의 장구(長久)한 시간성에 비하여 순간에 지나지 않는 인생의 짧음을 한탄함으로써 자연으로 귀의하고자 하는 마음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완근

dia_bluve.gif 심화 자료

당송팔대가

 중국당의 한유·유종원·송의 구양수·소순·소식·소철·증공·왕안석 등 8명의 산문 작가의 총칭. 한유·유종원은 육조 이후 산문의 내용이 공소하며 화려한 사륙변려체의 문장인 데 대하여, 진한 이전의 고문으로 돌아가, 유교적 정신을 바탕으로 간결하며 뜻의 전달을 지향하는 새로운 산문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것이 소위 고문운동이다. 이 운동은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지만 두 사람이 죽은 후에는 점차 기세가 약해졌다. 그것은 새로운 표현과 착상의 연구가 뜻의 전달성을 희박하게 하였고, 도한 도덕 지향의 면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도학 냄새가 짙은 것이 원인이었으며, 그 반동으로 당 말기에서 5대에 걸쳐 육조식 탐미적 산문이 부활하였고, 북송의 천성기가 되자 구양수가 한유의 문집을 규범으로 하여, 알기 쉽고 유창한 산문을 만드는 혁신 운동에 앞장서, 이 운동으로부터 소순·소식·소철·증공·왕안석 등 우수한 문학자가 배출되었다.

중국 사상의 특징

 중국인들은 선진 시대부터 인문 중심의 가치 철학을 바탕으로 존재 철학과 방법철학의 세 전통을 형성하였다. 사회 정치 사상으로서의 법가(法家)와 논리학파로서의 명가(名家) 등은 이 전통 위에 서 있으며 뒤에 전래된 인도의 불교도 여기에 용해되어 법화·화엄·선종 같은 중국 불교로 변모하였다. 송나라 이후 이른바 신유학이나 고거(考據)학들은 이 전통들을 유가를 중심으로 일원화시켰던 새로운 창조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사상의 일반적 특성은

1. 우주 및 자연과, 인과 및 만물을 언제나 유기적 관계로 이해했다는 점이다(이른바 천일 합일, 도즉만물, 일이다, 이즉사 등이 좋은 예이다.)
2. 본체를 설명함에 있어 공간적 단위상 보다는 시간적 변화상을 중시하였다. 즉, 본체의 존재론적 측면보다는 생성 변화론적 측면에 관심을 두었다.
3. 인륜 또는 인문과 도덕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즉, 인간을 그들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되 바람직한 관계 형식을 심성(心性)과 연관시켜 정립하려 하였다.(제성론과 제규범의 발달이 그 좋은 예이다.)
4. 동양사상의 마지막 특징은 그 방법이 직관적이고 그 성격이 예술적이라는 점이다. 사유의 단계적 과정이나 논리적 추론보다는 본질을 밝혀 내어 깨닫는 것을 중요시하고 사실의 과학적 세계보다 미적 경지를 지향하는 경향은 동양 사상의 일반적 특성임에 틀림없다.

중국 문학의 경향

 중국 문학은 한민족(漢民族)을 중심으로 구축된 긴 역사를 가지며, 그 역사의 장구함과 문헌의 풍부함에서 세계에 그 유례가 없다. 중국 문학의 언어, 즉 한어는 원래 단음절어이며, 1어가 1음절. 1개념을 나타내고 1문자로 표기된다. 그 문자 즉, 한자도 알파벳과 같은 표음 문자로 발달한 기회를 얻지 못한 채, 표의 문자로서 복잡하고 다양한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언어 문자의 특성이 결국은 중국 문학의 특성을 규정하게 된다. 수사에서 대구를 존중하는 것도 그 하나이며, 언어와 문자의 특성은 청각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의미 내용적으로나, 좌우 대칭의 대구를 만들기 쉽게 한다. 이 대구의 기교는 당대의 율시의 중심적 요소가 되기도 하는데, 그것이 문장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발휘된 것이 사륙변려문이며, 4자구6자구를 기조로 변(쌍두마차)·여(부부의 짝)와 같은 대구를 존중하는 문장이 중세에 성행하여, 언제나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 고대 문장의 자연스럽고 소박한 양식을 존중하는 고문은 근세 이후의 주류가 되었다. 단, 양쪽이 모두 전고(典故)를 즐겨 인용하는 것은 하나의 공통적 특색이라고 하겠다. 시나 문장은 선인의 명언이나 고사를 인용함으로써 표현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지만, 전고가 지식인의 공통의 광장에서 벗어나면 난해하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된다. 근대의 문학 혁명 운동에서 전고를 인용하지 않는다는 조목이 들어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대구나 전고의 존중은 주로 귀족과 사대부의 문학, 시문의 장르, 이른바 아(雅)의 세계의 문제였으며, 이와는 달리 서민의 문학, 민가나 소설. 연극의 장르, 이른바 속의 세계가 존재했는데, 아의 세계와 속(俗)의 세계는 단절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깊은 교섭을 가지면서 발전하였다. 아의 세계의 문학은 문언을 주로 했으나, 속의 세계의 문학은 백과를 중심으로 했으며 근세 서민의 발흥을 배경으로 송대부터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다. 후자의 강인한 생명력과 전자의 꾸준한 문학 기법은 끊임없는 교섭을 가지면서 중국 문학을 떠받쳐 온 거대한 두 기둥이었다.

동양의 자연관

 서양인들은 자연을 정복과 지배의 대상으로 삼거나 개발의 대상으로 보아 자연 파괴 현상을 초래했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자연에서 삶의 의미를 발굴해 내거나, 미적 존재라는 차원을 훨씬 뛰어넘어 자연에서 이상향의 모습을 찾아내고자 했다. 자연에서 삶의 의미를 발굴해 내려는 태도가 드러난 것을 문학 작품에서 찾아보면, 이화의 '도산십이곡'이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청상은 엇대하야, 만고애 프르르며, 유수는 엇뎨하야 주야에 긋디 아니난고. 우리도 그치디 마라 만고상청호리라'처럼 산과 냇물의 영원성에서 변함없는 학문 정진이라는 의미를 추구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이양하의 수필 '나무', 김수영의 시 '폭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런가 하면 동양인은 주변의 자연을 단순한 삶의 터전으로 의식하지 아니하고 이상향의 구체적 모습으로 인식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태도는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그러기 떳는 밧긔 못 보던 뫼 뵈나고야. 낙시질도 하려니와 취한 거시 이 흥이라. 석양이 비치니 천산 금수로다.'에서 자연은 선경, 즉 이상향의 모습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자연관은 현대에도 계승되어 박목월의 '산도화' 등의 작품을 낳게 되었다.

이완근

circle01_blue.gif 본문

 壬戌之秋(임술지추) 七月旣望(칠월기망) 蘇子與客(소자여객) 泛舟遊於赤壁之下(범주유어적벽지하) 淸風徐來(청풍서래) 水波不興(수파불흥). 擧舟屬客(거주촉객) 誦明月之詩(송명월지시) 歌窈窕之章(가요조지장) 少焉(소언) 月出於東山之上(월출어동산지상) 徘徊於斗牛之間(배회어두우지간) 白露橫江(백로횡강) 水光接天(수광접천) 縱一葦之所如(종일위지소여) 凌萬頃之茫然(능만경지망연) 浩浩乎(호호호) 如憑虛御風(여빙허어풍) 而不知其所止(이부지기소지) 飄飄乎(표표호) 如遺世獨立(여유세독립)羽化而登仙(우화이등선) 於是(어시) 飮酒樂甚(음주락심)  舷而歌之(구현이가지) 歌曰(가왈) 桂棹兮蘭 (계도혜난장) 擊空明兮 流光(격공명혜소류광) 渺渺兮予懷(묘묘혜여회), 望美人兮天一方(망미인혜천일방) 客有吹洞簫者(객유취통소자) 倚歌而和之(의가이화지) 其聲嗚嗚然(기성오오연) 如怨如慕(여원여모) 如泣如訴(여읍여소), 餘音  (여음요요), 不絶如縷(부절여루) 舞幽壑之潛蚊(무유학지잠문) 泣孤舟之釐婦(읍고주지리부) 蘇者 然正襟(소자추연정금) 危坐而問客曰(위좌이문객왈) 何爲其然也(하위기연야) 客曰(객왈) 月明星稀 烏鵲南飛(월명성희 오작남비) 此非曹孟德之詩乎(차비조맹덕지시호) 西望夏口(서망하구) 東望武昌(동망무창) 山川上繆(산천상무)鬱乎蒼蒼(울호창창) 此非孟德之困於 周郞者乎(차비맹덕지곤어 주랑자호) 方其破荊州(방기파형주) 下江陵(하강릉), 順流於東也(순류어동야) 軸 千里(축로천리) 旌旗蔽空(정기폐공)  酒臨江(시주임강) 橫 賦詩(횡삭부시) 固一世之雄也(고일세지웅야) 而今安在哉(이금안재재) 況吾與子(황오여자) 漁樵於江渚之上(어초어강저지상) 侶魚蝦而友 鹿(여어하이우미록) 賀一葉之扁舟(하일엽지편주) 擧匏樽而相屬(거포준이상촉) 寄  於天地(기부유어천지) 渺滄海之一粟(묘창해지일속) 哀吾生之須臾(애오생지수유) 長江之無窮(이장강지무궁) 挾飛仙 遊(협비선오유)  抱明月而長終(포명월이장종) 知不可乎驟得(지부가호취득) 託遺響於悲風(탁유향어비풍) 蘇者曰(소자왈) 客亦知夫水與月乎(객역지부수여월호) 逝者如斯(서자여사), 而未嘗往也(이미상왕야). 盈虛者如彼(영허자여피) 而卒莫消長也(이졸막소장야) 蓋將自其變者而觀之(개장자기변자이관지) 則天地曾不(칙천지증불) 能以一瞬(능이일순) 自其不變者而觀之(자기불변자이관지) 則物與我皆無盡也(즉물여아개무진야) 而又何羨乎(이우하선호) 且夫天地之間(차부천지지간)  物各有主(물각유주) 苟非吾之所有(구비오지소유) 雖一毫而莫取(수일호이막취)  惟江上之淸風(유강상지청풍) 與山間之明月(여산간지명월) 而得之而爲聲(이득지이위성) 目遇之而成色(목우지이성색) 取之無禁(취지무금) 用之不竭(용지불갈) 是造物者之無盡藏也(시조물자지무진장야) 而吾與者之所共樂(이오여자지공락) 客喜而笑(객희이소) 洗盞更酌(세잔갱작) 肴核旣盡(효핵기진) 杯盤狼藉相與枕籍乎舟中(배반낭자상여침적호주중) 不知東方之旣白(부지동방지기백)

 

 임술(壬戌) 가을 7월 기망(기望)에 소자(蘇子)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 노닐새,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 오고 물결은 일지 않더라. 술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고 요조(窈窕)의 장(章)을 노래하더니,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더라. 흰 이슬은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더라. 한 잎의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넓고도 넓게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더라.

 이에 술을 마시고 흥취가 도도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니,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상앗대로 속이 훤히 들이비치는 물을 쳐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도다. 아득한 내 생각이여, 미인(美人)을 하늘 한 가에 바라보도다." 손 중에 퉁소를 부는 이 있어 노래를 따라 화답(和答)하니,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하는 듯, 여음(餘音)이 가늘게 실같이 이어져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교룡(蛟龍)을 춤추이고 외로운 배의 홀어미를 울릴레라.

 소자(蘇子)가 근심스레 옷깃을 바루고 곧추앉아 손에게 묻기를 "어찌 그러한가?" 하니, 손이 말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난다.'는 것은 조맹덕(曹孟德)의 시가 아닌가?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山川)이 서로 얽혀 빽빽이 푸른데, 예는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곤욕(困辱)을 받은 데가 아니던가? 바야흐로 형주(荊州)를 깨뜨리고 강릉(江陵)으로 내려갈 제, 흐름을 따라 동으로 감에 배는 천 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어라. 술을 걸러 강물을 굽어보며 창을 비끼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일세(一世)의 영웅(英雄)이러니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물며 나는 그대와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며, 물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함에랴. 한 잎의 좁은 배를 타고서 술을 들어 서로 권하며, 하루살이 삶을 천지(天地)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알이로다. 우리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긴 강(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날으는 신선을 끼고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길이 마치는 것은 갑자기 얻지 못할 줄 알새, 끼치는 소리를 슬픈 바람에 부치노라."

 소자 말하되 "손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 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되 마침내 줄고 늚이 없으니, 변하는 데서 보면 천지(天地)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 데서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요? 또, 천지 사이에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이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서,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갈무리로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손이 기뻐하며 웃고,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드니 안주가 다하고 잔과 쟁반이 어지럽더라. 배 안에서 서로 팔을 베고 누워 동녘 하늘이 밝아 오는 줄도 몰랐어라.

 

시어 풀이

 

  임술(壬戌) : 송나라 신종(神宗) 원풍(元豊) 5년(1082년). 소동파의 나이 47세

  기망(旣望) : 16일 밤

  손[客] : 소동파의 고향으로부터 온 도가(道家)의 무리인 양세창(楊世昌)

  교룡(蛟龍) : 뱀과 같고 넓적한 네 발이 있다는 상상의 동물

  바루고 : 바르게 하고

  곧추 : 굽히거나 구부러지지 않고. 곧게

  성긴데 : 공간적으로 사이가 뜨다

  조맹덕(曹孟德 154-220) : 중국 삼국 시대 위(魏)나라의 왕

  하구(夏口) : 호북성(湖北城)의 강하현(江夏懸) 서쪽의 지명

  무창(武昌) : 호북성(湖北城) 악주부(鄂州府)

  주랑(周郞) : 중국 삼국 시대 오(吳)나라의 장수. 이름은 주유(周瑜)

  형주(荊州) : 호북(湖北)과 호남(湖南)의 중간쯤에 위치한 지명

  가는 것 : 여기서는 '흘러가는 물'을 뜻함

  차고 비는 것 : 여기서는 '차고 기우는 달'을 뜻함

  한 터럭 : 털 한 개. 극히 적은 분량을 비유해서 나타내는 말

  다함이 없는 갈무리 : 원문은 '무진장(無盡藏)'이니, 원래 '유마경(維摩經)'에서 나온 말로 '다함이 없는 창고(倉庫)'란 뜻이다.

  어지럽더라 : 마구 흩어져 뒤섞여 있었다.

  명월(明月)의 시를 외고 요조(窈窕)의 장(章)을 노래하더니, : '명월의 시'란 '시경(詩經)'의 '진풍(陣風) 월출편(月出篇)'에 나오는 "달이 떠 환하게 비치니 아름다운 임의 얼굴 떠오르네. 아리따운 그대여, 마음의 시름 어이하리."라는 시 구절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낭만적인 정취를 흠뻑 맛보며 풍류의 즐거움을 노래로 불렀다.'는 뜻이다.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 오르는 것 같더라. : 번잡한 세상사를 잊고, 무엇에도 지배됨이 없는 절대 자유의 경지를 맛보았다.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상앗대 : '초사(楚辭)'에 나오는 말로. '초사'에는 '계수나무 노와 목란 돛대'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처럼 예전에 쓰인 훌륭한 표현을 따다가 쓰는 것을 잘 된 표현의 이상으로 삼은 것에서 고문(古文) 숭상의 문화적 전통을 엿볼 수 있다.

  미인(美人)을 하늘 한 가에 바라보도다. : '미인'은 내 마음에 드는 좋은 사람, 또는 달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미인'이란 말은 오늘날 아름다운 여인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이지만, 옛날에는 마음에 그리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등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하는 듯 : 퉁소 소리가 그만큼 뛰어났다는 것인데, 여기서 느껴지는 서글픈 느낌은 동파에게 그 이유를 묻게 하는 계기가 된다. 즉, 작품을 발전적으로 전개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조맹덕(曹孟德)의 시 : 조맹덕(趙孟德)은 조조(曹操). 조조는 그의 시 '단가행(短歌行)'에서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난다.[月明星稀(월명성희), 烏鵲南飛(오작남비)]"라고 하였는데, 달은 밝고 별은 성기다는 시구는 달이 밝으면 별빛이 희미하듯이 조조 자신의 위력에 군웅(群雄)이 그림자를 감추었다는 의미이며 까치가 남쪽으로 난다는 시구의 뒤에는 본디 "나무를 세 번 돌아도 의지할 가지가 없다.[繞樹三 (요수삼잡), 無枝可依(무지가의)]"라는 말이 이어져 있는데, 이는 유비(劉備) 등이 그처럼 몸을 붙일 데도 없이 남쪽으로 패주(敗走)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용된 조조의 시는 자연스럽게 그 다음에 이어지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생각으로 발전하게 만든다.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곤욕(困辱)을 받은 데가 아니던가? : 이 곳은 조조가 손권의 장수인 주유에게 패전의 쓰라림을 겪은 적벽이 아닌가? '적벽'이라는 이름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웅 조조를 연상하고, 그런 표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조조를 영웅으로 인식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지, 적벽 대전에서 패주했다는 사실에 의미 부여를 해서는 안 된다.

  끼치는 소리를 슬픈 바람에 부치노라. : 이 슬픔을 퉁소의 여운에 실어 스산히 부는 가을 바람에 붙이는 것이다. 가슴에 사무치는 허무의 감정을 퉁소에 담아 부노라니 슬픈 가락으로 울리게 되었다는 뜻이다.

  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 - 저와 같으되 마침내 줄고 늚이 없으니, : 물은 주야의 구별이 없이 이 장강(長江)처럼 흘러서 가나 아직까지 흘러가 버린 적 없이 언제나 변함 없이 흐르며, 차고 기울고 하는 달은 저같이 변화하는 것이지만 달의 본체는 완전히 소멸해 버리거나 끝없이 자라지 않고 언제나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니,

  변하지 않는 데서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 변한다는 현상의 입장에서 본다면 천지도 하나의 현상이니 일순간도 그대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만물의 본체를 따져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무한한 생명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다. 나를 자연과 분리하지 않고 자연에 동화시키면, 나 또한 자연의 속성대로 영원한 존재일 것이니, 더 이상 삶의 무상감에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자연에 몰입하여 마음껏 풍류를 즐겨 보자는 제안의 첫 번째 근거에 해당된다.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 자연에 몰입하여 마음껏 풍류를 즐겨 보자는 제안의 두 번째 근거에 해당된다. 일찍이 김천택의 시조를 통해 옛사람들의 풍류의 정서를 감상해 보자. "강산(江山) 좋은 경(景) 힘센 이 다툴 양이면, / 내 힘과 내 분으로 어이하여 얻을쏜이. / 진실로 금(禁)할 이 없을새 나도 두고 노니노라."

  손이 기뻐하며 웃고,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드니 : 나의 설명을 듣고 나서 마음 속에 일던 허무의 감정이 사그러지며, 무상감에서 벗어나 다시 풍류를 즐기게 되었다는 말이다.

  배 안에서 서로 팔을 베고 누워 동녘 하늘이 밝아 오는 줄도 몰랐어라. :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세상사 하찮은 일에 얽매이지 않고 무한한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circle01_blue.gif 소동파(蘇東坡)

1036. 12. 19~1101. 7. 28.

중국 북송시대의 시인·산문작가·예술가·정치가로 본명은 소식(蘇軾), 자는 자첨(子瞻). 동파는 그의 호로 동파거사(東坡居士)에서 따온 별칭이다. 아버지 소순(蘇洵), 동생 소철(蘇轍)과 함께 '3소'(三蘇)라고 일컬어지며, 이들은 모두 당송8대가(唐宋八大家)에 속한다(→ 색인 : 소순, 소철).

 소동파는 북송 인종(仁宗) 때 메이산[眉山:지금의 쓰촨 성(四川省)에 있음]에서 태어났다. 8세 때부터 메이산의 도인(道人)이라 불리던 장역간(張易簡)의 문하에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 영향을 받아 도가(道家), 특히 장자(莊子)의 제물철학(齊物哲學)을 접하게 되었다. 1056년 그의 아버지 소순은 두 형제를 데리고 상경하여 이들의 시를 구양수(歐陽修)에게 보여주고 격찬을 받았다. 이들 형제는 그해 가을 진사(進士)가 되었고 이듬해 예부(禮部)에서 주관하는 시험에 나란히 급제했지만 모친상을 당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 1060년 복상(服喪)을 마치고 수도인 카이펑[開封]으로 돌아온 소동파는 관리임용 특별시험인 제과(制科)에 동생과 함께 급제했다. 이어 봉상부(鳳翔府:지금의 산시 성[陝西省]에 있음)의 첨서판관(簽書判官)이 되어 수도에 남게 된 동생과 헤어져 임지로 떠났다. 봉상부는 서주(西周) 이래의 여러 문화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는 공자묘의 석고(石鼓:고대문자를 새긴 10개의 북 모양의 돌)와 카이위안 사[開元寺] 동탑(東塔)에 남아 있는 당대 왕유(王維)·오도현(吳道玄)의 불화(佛畵) 등을 접한 감회를 〈봉상팔관 鳳翔八觀〉에서 읊었다. 봉상부에서의 임기가 끝나 상경한 1065년에 부인 왕씨(王氏)와 사별하고 그녀의 생전 모습을 〈망처왕씨묘지명 亡妻王氏墓地銘〉에 담았다.

 이듬해 아버지 소순마저 죽자 아버지의 관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 상을 치렀다. 탈상(脫喪)하고 상경한 1068년은 신종(神宗)이 즉위한 해로, 참지정사(參知政事:부재상) 왕안석(王安石)을 중심으로 한 개혁파가 중앙정부의 물자조달을 합리화하기 위한 균륜법(均輪法), 농촌에 저리자금을 융통하여 빈농을 보호하려는 청묘법(靑苗法) 등 이른바 신법(新法)을 시행하던 시기였다. 신법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던 소동파는 감관고원(監官告院)이라는 지극히 사무적인 업무를 담당하다가 지방 근무를 청하여 저장 성[浙江省] 항저우[杭州]에서 근무했고, 이어 밀주(密州:지금의 산둥 성[山東省]에 있음)·쉬저우[徐州]·후저우[湖州] 등지의 지방관을 역임했다. 또한 그는 신법으로 인해 고생하는 농민들의 생활상을 시로써 묘사하고는 했다. 후저우 지사(知事)로 있던 1079년 조정의 정치를 비방하는 내용의 시를 썼다는 죄목으로 어사대(御史臺)에 체포되어 수도로 호송되었다. 이때 어사들의 심문과 소동파의 변명을 담은 기록이 〈오대시안 烏臺詩案〉에 남겨져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다행히 사형을 면한 그는 100일간의 옥살이를 마치고 황주(黃州:지금의 후베이 성[湖北省] 황강 현[黃岡縣]) 단련부사(團練副使)로 좌천되었다. 정치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고 황주에 거주할 의무가 지워진 일종의 유형(流刑)이었다. 황주에서의 생활은 매우 비참했다. 부인은 양잠을 했고, 그는 본래 병영이었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이 땅을 동파(동쪽 언덕)라 이름짓고 스스로를 동파거사라고 칭했는데, 그의 호는 여기서 유래한다. 그 유명한 〈적벽부 赤壁賦〉가 지어진 것도 이곳에서였다.

 1085년 신종이 죽고 철종(哲宗)이 즉위하자 신종의 어머니이며 철종의 할머니인 선인태황후(宣仁太皇后)가 섭정을 시작했다. 그녀는 뤄양[洛陽]에 운둔해 있던 사마광(司馬光)을 불러들여 왕안석 일파가 만든 신법들을 폐지했다. 이때 소동파도 다시 발탁되어 예부랑중(禮部郞中)을 시작으로 중서사인(中書舍人)·한림학사지제고(翰林學士知制誥) 등의 요직에 올랐다. 그러나 사마광의 신법 폐지가 모역법(募役法)의 폐지에 이르는 등 과격해지자, 소동파는 중서사인이 되어 수도로 올라온 동생과 함께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마광이 죽고난 후 당쟁이 시작되었고, 선인황태후마저 사망하자 철종의 친정(親政)이 시작되었다. 철종은 신법들을 다시 부활시켰으며, 소동파는 다시 좌천되어 혜주사마(惠州司馬)로 임명되었다. 그에 대한 탄압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를 질시하는 정치인들로 인해 하이난 섬[海南島]으로 유배되어 그곳에 주로 거주하던 리족[黎族]과 함께 비참한 생활을 했다. 철종의 죽음으로 휘종(徽宗)이 즉위하면서 제거옥국관(提擧玉局觀)이라는 명예직에 봉해져 상경하던 도중, 큰 병을 얻어 창저우[常州]에서 66세의 생을 마감했다.

 소동파는 구양수· 매요신(梅堯臣) 등에 의해서 기틀이 마련된 송시(宋詩)를 더욱 발전시켰다. 구양수·매요신 이전의 시가 대개 비애(悲哀)를 주제로 해왔던 데 비해서 이 두 사람은 평안하고 고요한 심정을 주로 읊었고, 소동파는 이에서 벗어나 훨씬 적극적·자각적인 관점을 취했다. 즉 인생체험에 대한 시각의 전환을 생활의 지혜로 삼아 인간 불행의 내면에서 자신만이 인식할 수 있는 행복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가 이처럼 비애의 지양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장자의 제물철학, 불교의 묘리(妙理) 등의 사상적 배경 때문이었으며 〈적벽부〉에는 이같은 그의 사상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의 시는 자유분방한 심정과 재능의 표현을 통해 경쾌한 리듬 속에 절묘한 비유와 유머를 담고 있다. 제재에 있어서도 특별히 구애받지 않아 이전까지 다른 사람들이 취하지 않았던 것, 간과되어왔던 것들도 시로 썼다. 그의 시는 모든 사람에 대한 폭넓은 애정을 기저에 깔고 있으며, 인간의 욕망을 긍정했고 인간의 선의(善意)를 신봉했다. 그는 사(詞)에서도 기존의 완약(婉約) 대신에 호방한 사풍을 창시했다. '적벽회고'(赤壁懷古)라는 부제가 붙은 〈염노교 念奴嬌〉·〈수룡음 水龍吟〉 등은 영물시(詠物詩)의 극치라 일컬어진다. 한편 산문에서는 당송8대가 중 소씨 부자, 즉 3소가 포함되었다. 동파의 산문은 송대의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비해 이색적이다. 그의 작품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은 그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분방함이다. 동파는 작가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와야만 훌륭한 문장이 된다는 청년기의 생각을 평생토록 일관했다. 〈조주한문공묘비 潮州韓文公廟碑〉 등의 비문, 〈유후론 留侯論〉·〈범증론 范增論〉 등의 사론(史論)을 비롯해 많은 산문을 남겨 지금까지도 널리 읽혀지고 있다.

 소동파는 서예에도 뛰어났다. 그의 글씨는 동진(東晋)의 왕희지(王羲之)·왕헌지(王獻之) 부자의 정통적인 서법과 당대 안진경(顔眞卿) 일파의 혁신적 서법을 겸비하고 있는데, 그 자신은 글씨 자체보다도 살아 있는 정신과 기백의 표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그는 〈제발 題跋〉이라는 평론에서 해서(楷書)가 모든 서체의 기본이며 서예는 사람 됨됨이의 표현이라는 생각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의 글씨로는 유배지 황주에서 쓴 〈한식시권 寒食詩卷〉, 예부상서 시절에 쓴 〈이태백선시권 李太白選詩卷〉 등이 원본으로 남아 있다. 항저우에서 쓴 〈진규각비 宸奎閣碑〉와 같이 탁본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으나, 모두 신품(神品)이라 일컬어진다. 그의 필적을 모은 〈서루첩 西樓帖〉도 전해진다. 한편 그의 죽화(竹畵)는 문동(文同)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동파는 그림을 그리는 데 기교를 쓰지 않았으며, 친구들은 그러한 그의 그림에 한 점의 세속성도 보이지 않는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왕유의 그림에 대해 "시 속에 그림 있고 그림 속에 시 있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이후 중국 화론사에 면면이 이어지고 있다. 이같은 예술 사상과 기교에 대한 무관심은 문인화(文人畵)를 크게 부흥시키는 힘이 되었다. 다른 문인들과는 달리 동파의 시문집은 생전에 이미 간행되어 재판의 물증으로 제출될 정도였다. 〈동파집 東坡集〉 40권과 〈동파후집 東坡後集〉 20권은 남송 데의 판본이 여러 종류 남아 있다. 이 두 책에 〈주의 奏議〉·〈내제집 內制集〉·〈외제집 外制集〉·〈응소집 應詔集〉·〈속집 續集〉을 합친 〈동파칠집 東坡七集〉은 100권이 넘으며, 〈동파전집 東坡全集〉이라 불리기도 한다.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ircle01_blue.gif '적벽부'와 노장 사상

 유가와 대척되는 것이 노장 사상으로, 노자와 장자의 사상이 근본을 이룬다. 노자의 사상은 허무를 주체로 한 무위자연설로서, 그 학도들은 유교의 인의예지를 물리치고 모든 인위적 기교와 지혜를 배척하여 자연 무위의 도로 귀의 할 것을 주장했다. 노자의 사상은 유교와 더불어 중국의 2대사상이 되었다. 노장 사상의 중국 시인에는 이백과 두보가 있다. 이백의 시는 선경의 세계와 이상향을 읊었다. 두보의 시는 우수와 비장미의 극치를 보여 준다. 소식의 '적벽부'에는 노장 사상이 많이 깃들어 있다.

 

도가사상(道家思想)

 노장사상(老莊思想)을 계승, 발전시킨 철학사상.

〔도교와 도가사상〕

도교와 도가사상은 엄밀한 의미에서 구분된다. 그것은 전자가 종교사상이요, 후자가 철학사상이라는 점도 있지만, 두 사상은 애당초 다른 진리관에서 출발하여 전연 별개의 사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도교는 고대의 민간신앙을 기초로 노장사상·역리(易理)·음양·오행·참위(讖緯)·의술·점성, 그리고 불교와 유교사상까지 받아들여, 심신의 수련을 통한 불로장생의 탐구와 기복(祈福)을 통한 현세이익을 추구하여 나가는 종교현상이다. 이를 크게 수련도교와 기복도교 또는 과의(科儀)도교로 나누어 보기도 한다.

그러나 도가사상은 이와는 달리 노장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철학사상으로 인간의 현실적 타락과 무지의 근거를 찾아 그것을 척결해 내고, 자연의 실상을 깨달은 참지혜를 통하여 무위(無爲)의 삶을 추구하는 사상 경향을 말한다. 이를 보통 무위자연사상이라고도 한다.

〔도가사상의 수용〕

우리 나라에 도가사상이 전래된 것은 삼국시대이다.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에는 624년(영류왕 7)에 들어왔고, 신라와 백제에도 그 무렵을 전후하여 유입되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도가사상이 신도사상(神道思想) 내지는 선도사상(仙道思想)으로 대표되는 민족고유사상과 자연풍류사상의 바탕 위에서 도교와 분명한 구분 없이 혼합된 형태로 받아 들여 이해되어 왔다.

이와 같은 경향은 수용 초기 삼국시대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어왔으니, 우리 나라의 도가사상을 굳이 도교와 구별해서 논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도 있다.

그렇지만 여말 선초 성리학의 학문적 구명과 더불어 노장학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새로이 일어난 사실은 주목해야 한다. 도교의식이나 연단법(煉丹法)과는 다른 차원의 도가사상에 주목하게 되었던 것이다. 예컨대, 도교와 구별되는 우리 나라의 도가사상은 원칙적으로 여말선초에 성리학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단(異端)의 사유를 구명하고자 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그 이전까지 도가사상은 유교나 불교처럼 뚜렷한 자기 모습의 사상성을 드러내지 못한 채 민간신앙에 근거를 둔 미신적 종교현상으로만 존속해왔을 뿐, 한번도 학문 대상으로서 심각한 문제거리로 대두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 말은 그 이전 고려시대까지의 사상 속에서 도가사상의 실마리를 전혀 찾을 수 없다거나, 도가의 체계적인 이해와 정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도교와 도가사상이 함유된 다양한 종교현상 속에서, 풍수·도참 사상 특히 단학파(丹學派)의 도맥(道脈)을 형성한 수련도교의 인물과 사상 가운데서 도가철학의 요소를 찾아 새롭게 이해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 구체적인 작업은 앞으로 새롭게 정립해야 할 우리 나라 철학계의 과제이다.

도가철학 내지 도가사상은 그저 막연히 도교라고 할 때와는 달리 노장사상에 대한 철학적 이론을 학문적으로 문제삼아 다룬 것만을 의미한다. 도교와 도가사상의 실질적인 구분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도가사상에 대한 학문적 관심〕

도가사상, 즉 노장철학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조선 건국의 주도적 인물인 정도전(鄭道傳)의 〈심기리편 心氣理篇〉이라는 짤막한 논문과 그 논문에 대한 상세한 주석을 달고 서(序)·발문을 붙인 권근(權近)의 해설에서 처음 찾아볼 수 있다.

이 논문의 내용은 ≪불씨잡변 佛氏雜辨≫과 더불어 이단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분석인데, 참다운 진리탐구의 학문이 무엇인가를 천명함으로써 고려 말에 전래되기 시작한 ‘송학’, 즉 성리학의 학문적 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 목적을 둔 저술이었다. 여기서 이단은 노(老)·불(佛)을 의미한다. 도가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이단사상으로 비판받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비판은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연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비판이 비록 ‘이단’임을 증명하여 뿌리 뽑기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일단 그 사유형태를 학문 영역 안으로 끌어 들여야 하는 것이다. 학문적 이해와 연구가 이루어진 바탕 위에서라야만 그 비판은 합리적 설득력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도가사상의 이해와 한계〕

이단을 막고 ‘올바른 학문’, 즉 정학(正學)인 유학을 천명하려는 확실한 목적의식에서 쓰인 것이기는 하지만, 정도전의 〈심기리편〉은 유(儒)·불(佛)·도(道) 삼가(三家)의 사상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비교, 검토한 뛰어난 저작이다. 일관성 있는 논리와 이해의 깊이는 유학의 분명한 자기 위치를 확보하고 있으며, 도가사상에 대한 이해의 깊이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정도전은 삼가사상의 핵심적인 문제를 불가(佛家)는 심(心), 유가는 이(理), 도가는 기(氣)로 파악하였다. 다시 말해 불가는 심학(心學)으로, 유가는 이학(理學)으로, 도가는 기학(氣學)으로 규정한 것이다. 우리 나라 도가사상의 학문적 출발은 이렇게 기철학(氣哲學)으로 성격이 규정되는 데서 시작되었다.

그 ‘기’는 성리학에서 말하는 ‘이기(理氣)’에서의 ‘기’와 비슷한 개념으로 형이하의 현상적 존재 일체를 의미하였다. 성리학에서 ‘이’는 그러한 현상적 존재의 본질이자 원리로 ‘기’보다 한 차원 높은 실재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도가는 우주와 인간의 여러 현상이 ‘이’에 의해 존속되는 것임을 알지 못하고 ‘기’만을 알고 논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정도전은 비판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도가철학을 유가의 이기구조에서의 ‘기’, 즉 형이하의 현상적 존재만을 전부인 것으로 인식하는 철학이라고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가에서 다루는 ‘기’가 과연 그러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 도가의 ‘기’는 ‘이’와 상대가 되는 ‘기’의 의미를 지닌다기보다는 오히려 유가의 ‘이’ 이상으로 모든 것의 근원인 형이상적 실체이며 본질인 동시에 ‘현상 그 자체’인 궁극적 실재이다.

유가의 입장에서 보면 ‘기’에 대한 의미분석은 형이하적인 ‘기’, 경험 가능한 것의 요소 이상일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 ‘기’는 ‘기’요 ‘이’일 수 없는 이상, 유가적 사념 속에서는 ‘기’가 근원적·본질적일 수 없으며 보편적 존재일 수도 없었다. ‘기’는 특수이고 개체적이며 형이하의 존재로 인식되었다. 바로 여기에 ‘기’ 개념에 대한 유가적 이해의 한계가 있다.

도가의 ‘기’ 개념과 유가의 개념구조 내에서의 그것은 동일한 것이 아님을 미처 생각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 없는 ‘기’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유가의 굳건한 입장이다. 예컨대, 도가에 대한 비판은 “노장이 ‘기’만을 말하고 ‘이’를 말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가해졌다.

정도전 이후 조선시대의 사상적 풍토는 표면적으로는 계속 도가사상을 배척의 대상으로 삼아 왔으나, 도가의 기론(氣論)을 어떤 형태로든 받아 들여야 하는 운명에 처하여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기’ 없는 ‘이’만을 문제삼을 수 없는 것이 성리학이고 보면, 기론은 유가철학이 다루어야만 하는 자기 운명을 동시에 지녔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도가철학의 실재는 ‘부정되는 동시에 긍정의 소지를 항상 보유하면서’, 때로는 적극적인 수용의 양상으로, 때로는 유가적인 ‘기’와는 다른 새로운 기의 의미를 탐색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철학적 수용과 그 추이〕

철학적 수용이라 함은 막연한 사상성의 침투가 아니라 이론적인 학문적 이해로 들어와 문제가 된 경우를 의미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도가사상은 표면적으로는 성리학과 아무런 관련도 맺지 못하고 부정적으로만 평가되어 뿌리째 뽑혀 나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도가의 ‘기’를 ‘이기’와 연결된 ‘기’의 의미로 파악하는 것부터가 자기수용의 터전을 마련하고 있었던 셈이라고 할 수 있다.

권근은 “하늘이 음양오행으로 만물을 화생(化生)하는 질료가 ‘기’이다. 인간도 기를 받아 생(生)하는데 이 ‘기’는 형이하의 것이다.”라는 주희(朱熹)의 말을 이용하면서, 도가철학은 바로 이 ‘기’를 문제삼아 나간 철학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 기는 반드시 ‘이’가 있어야 존립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유가에서 인지된 ‘이’의 개념이다.

‘기’의 운동을 규정하는 본원은 ‘이’에 있다는 것이다. 이 ‘이’에 근거를 둔 현상은 질서를 보유하며, 이 규범이 생의 의미인 자기질서〔道德〕라는 가치의 영역을 이룬다. 현상적 존재의 의미는 ‘이’가 부여한다. 그것이 다름아닌 의(義)요, 덕(德)이요, 미(美)요, 선(善)이요, 성(性)이요, 정(情)이다.

그러나 ‘기’만을 문제삼는 도가에서는 현상적 실상이 무엇이며, 존재성이냐 비존재성이냐가 문제이지, 현상적 존재의 ‘가치론적인 의미’, 즉 선악과 시비를 깊이 따지지 않았다. ‘기’는 그 자체로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다. 그저 ‘현상 자체’일 따름이다. 의미는 부여하는 바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 가치의 절대적인 표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여 문제삼지 않았다.

그런데 유가에서는 바로 ‘존재의 의미’를 묻고 탐색하여 그것을 행위의 준칙으로 삼고자 한다. 현상적 존재를 기반으로 하여 찾아낸 근거·원리·규범이 다름아닌 ‘이’이다. 이때 ‘이’는 어디까지나 ‘근거’이지, 그것이 그대로 의·덕·미·선은 아니다. 그러한 가치론적 의미들은 모두 현상적 존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개념들이니 유가철학은 ‘이’ 못지않게 ‘기’를 중요시 하였다.

‘기’는 현상적 존재성이다. 도가사상에 대한 비난도 여기에 근거를 두고 체계 내부로 수용하는 것도 이 점에 입각해 있다. 도가에 대한 비난은 생의 의미를 찾아 들어 갈 근거를 설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으며, 도가의 관점에서는 생은 생 그대로 용인되어야 할 전부이다. 이렇게 보면 유가의 비판과 부정에도 불구하고 도가를 ‘생의 철학’으로 수용할 길이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생은 현상적 존재의 개체 개체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형이하의 ‘기’이다. 의미없는 생은 생이 아니라 할지 모르나 도가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러움’을 ‘기’의 본 모습으로 보고 목적이나 의도를 위하여 ‘의미’를 추구하는 것을 위험하게 여겼다. ‘몸은 죽은 나무같이 해야 하며, 마음은 식은 재처럼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유가는 생을 무조건 용인하지 않고 반성을 통해 그것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 나갔다. 생은 의미가 부여될 때 비로소 가치 있는 것이 된다고 인식하였던 것이다. 도가철학은 그러한 인위적 의미부여를 거두었을 때 비로소 생이 온전해진다고 보았다.

‘기’의 문제가 화생만물(化生萬物)하는 현상적 존재에서 다루어지는 생의 철학이었기에, 도가사상에 대한 기철학적 측면의 연구와 이해, 수용은 기론을 더욱 분명히 하여 ‘이’의 존재론적 의미를 검토하고 다지는 데 기여하였다.

도가사상의 학문적·이론적 논구는 여말선초에 유자(儒者)들의 이해와 비판에서 비롯되었다. 우리 나라 도가사상은 이를 통하여 성립되었다. 도가에 대한 기철학으로서의 파악은 그 동기가 도가사상에 대한 긍정적·동조적 이해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시 지배이데올로기로 강력하게 요구되었던 성리학의 수용과 정착에 이바지하고자 하였던 비판의식에 있었다.

논박, 배척, 부정하기 위하여 도가를 살펴보고 그 취약점을 찾아내려 애썼던 것이다. 따라서, 그 논구와 이해의 방법은 출발부터 유가적인 사유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해의 자기 한계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를 통해서 우리 나라 도가의 실질적 내용을 비로소 형성하였다는 점에서 사상적·철학적 의의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도가는 ‘기철학’이라는 사실로 하여 배척되고 평가 절하되었으나, 뒤집어 보면 바로 그 점이 유가에 수용될 여지가 있었던 곳이다. 도가의 기론이 유가의 ‘이기구조적 사유’에 끼친 영향을 염두에 두고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철학으로서의 이해와 파악이 우리 나라 도가사상의 특질로 지적될 수 있겠다.

서경덕(徐敬德)에 이르러 양상이 좀 달라진다. 지금까지 이해되어 온 유가적 사유체계 내의 ‘기’가 고식성을 탈피하여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된다. ‘이’와는 무관하게 독립적·자율적으로 활동하는 ‘기’의 본질과 근원을 다룬 것은 획기적인 전환이었다. 서경덕은 이렇게 도가의 기 개념을 깊이 이해하고, 유가적 이기 개념을 철저히 검토한 바탕 위에서 자신의 독창적인 체계를 구축해 나갔다.

이이(李珥)는 노자(老子)를 새롭게 재평가하여 독자적인 주석과 편찬의 성과인 ≪순언 醇言≫을 남기고 있다. 조선 후기에 민간에 음성적으로 만연하던 도가사상을 깊이 우려한 한원진(韓元震)은 장자(莊子)의 사상이 철저한 오류임을 밝히려고 ≪장자변해 莊子辨解≫를 지었다.

박세당(朴世堂)은 무조건 비판을 일삼거나 유가와 배치되는 부분을 삭제하는 편법을 택하지 않고, 유가적 입장에 튼튼히 서서 ≪도덕경≫과 ≪장자≫를 차근차근 주석한 희귀한 전통을 수립하였다.

≪참고문헌≫ 三峰集(鄭道傳), 花潭集(徐敬德), 醇言, 莊子辨解, 新註道德經, 韓國哲學史(韓國哲學會, 東明社, 1987).

강호(江湖)가도

 조선 시대 시가 문학에서 보이는 자연 예찬의 풍조. 시가 문학에서는 자연을 예찬하고 자연에 귀의하여 생활하는 것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사대부들이 창작하였다. 이러한 특징적인 현상을 조윤제는 강호가도로 규정하면서 조선 시대 사대부들의 삶의 방식에서 그 형성 원인을 찾았다. 사회와 당쟁의 와중에서 벼슬길로 나서 자칫 거기에 휩쓸려 일신과 가문을 위기로 몰고 가기보다는 고향의 자연에 귀의하여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는 것이 보다 안전한 삶의 방식이었다. 이들에게는 사유지가 이미 확보되어 있었고, 향리에서도 토지나 명망을 기초로 한 독점적 지위가 가능하였기 때문에 경제적인 문제는 해결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을 예찬하는 강호가도의 구현은 도학을 기반으로 한 그들의 문학관, 세계관과도 합치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영남출신의 문인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현보를 꼽을 수 있다.

 이현보는 영남사림으로서는 비교적 일찍 환로(宦路)에 나서서 경상감사, 형조참판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는데, 줄곧 자연으로 귀의할 것을 꿈꾸다가 마침내 귀향하여 그 기쁨을 '농암가'와 같은 시조로 노래하였다. 그 후 이황이 여러 편의 시조를 통하여 이현보가 표명한 자연에의 귀의를 이어갔고, 나아가 도학적인 이념과 교화 의도까지 노래에 포함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권호문(권(勸好文)을 비롯한 퇴계 문하의 제자들에게 이어져 영남가단을 형성하였다. 그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 벼슬을 사직한 치사(致仕)한객(閑客)이 그 유유자적한 심정을 자연에 담아 노래한 작품들도 강호가도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맹사성의 '강호사시가'가 대표적인데, 이 작품은 강호 자연마저도 군주의 통치가 행해지는 공간으로 규정함으로써 세계와의 단절이 아닌 화합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현보의 '농암가'와는 차이가 있다. (출처 :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제3판, 지식산업사, 1933)

송순(宋純)   

1493(성종 24)∼1582(선조 1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신평(新平). 자는 수초(遂初) 또는 성지(誠之), 호는 기촌(企村) 또는 면앙정(潭仰亭). 담양 출신. 증 이조판서 태(泰)의 아들이다. 면앙정가단(潭仰亭歌壇)의 창설자이며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선구자이다.

1519년(중종 14)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권지부정자를 시작으로 1520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마친 뒤, 1524년 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가 되고 1527년 사간원정언이 되었다. 1533년 김안로(金安老)가 권세를 잡자, 귀향하여 면앙정을 짓고 시를 읊으며 지냈다.

송순은 1537년 김안로가 사사된 뒤 5일 만에 홍문관부응교에 제수되고, 다시 사헌부집의에 올랐다. 이어 홍문관부제학, 충청도어사 등을 지냈고, 1539년 승정원우부승지에 올라 4월 명나라의 요동도사(遼東都司)가 오자 선위사가 되어 서행(西行)하였다.

그 뒤 경상도 관찰사·사간원대사간 등의 요직을 거쳐 50세 되던 해인 1542년 윤원형과 황헌(黃憲) 등에 의하여 전라도관찰사로 좌천되었다. 1547년(명종 2)에는 동지중추부사가 되어 ≪중종실록≫을 찬수하였다. 그해 5월에 주문사로 북경에 다녀와 개성부유수가 되었다.

1550년 대사헌·이조참판이 되었으나, 진복창(陳福昌)과 이기(李咬) 등에 의하여 사론(邪論 : 도리에 어긋난 논설)을 편다는 죄목으로 충청도 서천으로 귀양갔다. 이듬해에 풀려나 1552년 선산 도호부사가 되고, 이 해에 면앙정을 증축하였다.

이 때 기대승이 〈면앙정기〉를 쓰고 임제(林悌)가 부(賦)를 쓰고, 김인후(金麟厚)·임억령(林億齡)·박순(朴淳)·고경명(高敬命) 등이 시를 지었다. 이후 전주부윤과 나주목사를 거쳐 70세에 기로소(耆老所 : 조선시대에, 70세가 넘는 정이품 이상의 문과들을 예우하기 위하여 설치한 기구)에 들고, 1568년(선조 1) 한성부좌윤이 되어, ≪명종실록≫을 찬수하였다.

이듬해 한성 판윤으로 특승하고 이어 의정부우참찬이 된 뒤, 벼슬을 사양하여 관직생활 50년 만에 은퇴하였다. 송순은 성격이 너그럽고 후하였으며, 특히 음률에 밝아 가야금을 잘 탔고, 풍류를 아는 호기로운 재상으로 일컬어졌다.

일찍이 박상(朴祥)과 송세림(宋世琳)을 사사하였고, 교우로는 신광한(申光漢)·성수침(成守琛)·나세찬(羅世纘)·이황(李滉)·박우(朴祐)·정만종(鄭萬鍾)·송세형(宋世珩)·홍섬(洪暹)·임억령 등이 있다. 문하 인사로는 김인후·임형수(林亨秀)·노진(盧진)·박순·기대승·고경명·정철(鄭澈)·임제 등이 있다.

면앙정은 그가 41세 때 담양의 제월봉 아래에 세운 정자로서 호남 제일의 가단(歌壇)을 형성하였다. 여기에는 임제·김인후·고경명·임억령·박순·이황·소세양(蘇世讓)·윤두수(尹斗壽)·양산보·노진 등 많은 인사들이 출입하며 시 짓기를 즐겼다.

면앙정가단은 그 후에 나타난 호남의 성산가단(星山歌壇), 영남의 경정산가단(敬亭山歌壇)·노가재가단(老稼齋歌壇) 등의 선구이며, 영남의 가단이 전문 가객 중심이라면 면앙정가단은 사대부 출신의 문인 가객이 중심이었다.

특히 송순은 벼슬에서 물러나 강호생활을 하면서 자연예찬을 주제로 한 작품을 지음으로써 강호가도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으며, 〈면앙정삼언가〉·〈면앙정제영 潭仰亭題詠〉 등 수많은 한시(총 505수, 부1편)와 국문시가인 〈면앙정가〉 9수, 〈자상특사황국옥당가 自上特賜黃菊玉堂歌〉·〈오륜가〉 등 단가(시조) 20여 수를 지어 조선 시가문학에 크게 기여하였다.

문집으로는 ≪면앙집≫이 있다. 담양 구산사(龜山祠)에 신주가 모셔졌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明宗實錄, 宣祖實錄, 遣閑雜錄(沈守慶), 稗官雜記(魚叔權), 旬五志(洪萬宗), 芝峰類說(李邈光), 竹窓閑話(李德泂), 韓國詩歌史綱(趙潤濟, 乙酉文化社, 1954), 國文學全史(李秉岐·白鐵, 新丘文化社, 1957), 湖南歌壇硏究(丁益燮, 進明文化社, 1975), 壬亂前後歌辭硏究(金東旭, 震檀學報 25·26·27, 1964).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출처 : 5000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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