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여백을 보다
김 성 덕(시인)
그게 말입니다, 미친 짓이었습니다. 세상에 미치지 않으면 얻는 것이 무엇이 있으랴만 지천명의 나이에 시를 쓰고 작품을 발표하고 시집을 낸다는 것은 흡사 미친 짓이었음이 분명하였습니다. 하늘의 뜻인지는 몰라도, 그러나 돌이켜보면·…
시는 사람들의 자연스런 감정 표현이며 노래입니다. 젊은 시절에 시인의 꿈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만 살다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꿈으로만 남게 됩니다. 그런데 나이 오십을 넘어 어느 날, 꿈은 슬며시 내게로 다가왔습니다. 재료는 충분하니까 기술만 몇 수 배우면 나의 노래를 한 권의 시집으로 풀어 쓸 것 같았지요. 아주 오래 전에 묻어두었던 꿈이 서서히 꿈틀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시의 창작기법을 익히고 좋은 시가 무엇인지 학습하고 훈련하는데 정신이 없었습니다. 등단이나 작품 활동 등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런 희망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나에게 그런 세계는 넘겨다볼 수 있는 그런 영역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단지, 내 맘에 드는 시집 하나를 그럴 듯하게 꾸며 내 가족과 주위 사람에게 남길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등단이란 일종의 무형의 자격인 줄만 알았고 시 문단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작품 발표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문예지를 통해서 시인들의 활동을 일부 엿볼 수 있었지만 작품 발표나 창작 활동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몰랐습니다. 등단시인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는 얘기입니다. 사실 등단 전에는 쓸만한 작품들이 모아지면 시집이나 한 권 냈으면 원했고 그래 출간도 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등단했으니 다른 시인들처럼 잡지사에서 청탁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등단작가로 문예지에 투고하면 쉽게 작품을 받아줄 줄 알았습니다. 작품을 열심히 쓰고 준비하면 언젠가 문예지 등에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저절로 찾아오리라 생각했습니다. 등단이란 그 정도의 힘은 있는 줄 알았습니다.
빗방울은 길이 동행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게 믿은 것이 실수였다
함께 어울려 따라가다가, 문득
허방에 놓인 폭포에 이르자
벼랑으로 밀어버릴 줄 누가 알았는가
길은 물안개가 걷히면서
마침내 그 전모를 드러낸 것이었다
물길이 곧 강물의 음모이었다는
하지만 주저앉아 울 수만 없었다
비록 추락하여 깨지고 부서져
찬 바람 소용돌이치는 호소(湖沼)에 갇혀서
웅크려 길잠을 자야 할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바다로 나가는 길을
볼 수 있으라는 기대 때문에
神의 음모라도 두렵지 않았다
정말로 …
―필자의 시, 「노숙자1)」 전문
그게 착각이었습니다. 길은 길만 있을 뿐이지 바다로 가는 것은 물방울의 몫이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만은 없었습니다. 나의 길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시를 좋아하니까 시를 읽고 써보며 그리고 이왕이면 시인이 되고 싶었던 거였지요. 그것은 내 작품을 누군가 읽어주길 원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문학사회에는 시인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를 생산하는 시인과 이를 구매하는 독자, 그리고 작품을 상품으로 만들어 유통시키는 출판사와 서점들이 있었습니다. 전장에 나가는 전사처럼 창, 칼을 갈고 훈련을 해가며 전략을 세우고 단단히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시 쓰기를 시작하면서 느낀 아마추어 작가의 생각과 등단이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을 때의 희열과 갈등, 우리 문학사회와 21세기의 정보기술 사이의 접목과 부조화, 그 틈에서 치열하게 부침을 거듭하는 문예지의 현실 등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과연 시란 무엇인가? 시인은 누구인가? 묻기 시작했습니다.
시문학에서는 시의 종류, 표현 기법 등에 대한 이론들이 잘 정립되어 있는 반면에 시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는 정확하게 동의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시 창작 이론을 배운다는 것은 골치 아픈 일입니다. 그래서 시 창작에 관련된 서적을 먼저 공부하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시 쓰기를 포기할지 모릅니다. 창작기법이야 어떻든 시란, 인간의 정서와 사상을 운율과 이미지를 결합하여 언어로 표현하고 독자에게 감동을 일으켜주는 글이면 충분합니다. 시는 우리의 삶과 동행하는 여백입니다. 생성과 소멸, 시간과 공간, 시인과 독자들 사이에 흐르는 강물입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아마도 자기 삶에 비수를 들이대어 여백을 도려내는 일인지 모릅니다.
모가지도 없는 몸뚱어리
낡은 멍텅구리 배 한 척, 등마저 휘었다
허연 반월도로 끊긴 목숨 줄에는
푸른 강물이 매달려
지난 세월 엷은 나이테나 풀어내고 있다
아직 살아 펄떡이는 햇살의 비늘들
검버섯 돋아가는 얼굴에 사정없이 꽂힌다
어디 햇살뿐이랴, 갈잎도 그믐달마저도
때론 날카로운 비수였으니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매일 목을 조르는 일이다
―필자의 시, 「넥타이를 매며2)」 전문
소설과 시는 이야기란 점에서 공통점을 갖지만 그 특징은 아주 다릅니다. 소설가는 산문형식의 긴 이야기를 쓰고 시인은 함축적인 언어로서 운문의 비교적 짧은 글을 씁니다. 시인은 단어의 분위기와 소리의 효과에 민감하여 낱말에 대한 주관적 반응을 詩의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설가는 비교적 소탈한 분위기인 반면에 세밀한 성격이라면, 시인은 깔끔하게 정리된 느낌이나 전체적인 이미지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조목조목 다 말하지 않습니다. 소설가는 막걸리를 좋아할 것 같고 시인은 포도주를 좋아할 것 같으며, 소설가는 토씨 하나도 중요하지만 시인은 토씨 몇 개는 일부러 없애기도 하지요. 시인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도 같으며 소설가는 집단적인 성향이 짙을 것도 같습니다. 시는 회화적 요소가 짙습니다. 그래서 나는 시집에서 글뿐만 아니라 여백도 읽습니다. 시는 단문이지만 그 속에 한 편의 소설이나 영화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만, 전부 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독자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겨둡니다. 말하지 않은 것 같지만 많은 말을 하기도 하고, 다 말한 것 같아도 모두는 말하지 않은 게 바로 시입니다.
한때 시인은 선천적으로 탄생되는 것인지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와같이 등단이란 독특한 제도가 있어서 일종의 시 쓰는 자격증이나 면허증 역할을 하기도 하여 때론 문학사회에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면 후자 쪽이 가까운 것도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인명 피해나 재물의 손상 등을 방지하기 위하여 위험물을 취급하는 기술사회의 산업기사나, 전문적 지식이 없이는 처리하기 어려운 직종에 전문지식을 가진 변호사나 세무사처럼 등단이 아마 사람살이의 정신적 피해를 줄 수 있어서 그런지 모르지요.
시는 작가의 품을 떠나면 독자의 것이 됩니다. 독자는 작품을 통해서 작가와 교감하게 되고 반응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시는 외적 반응과 내적 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외적 반응이란 작품을 쓴 시인을 둘러싼 인적, 환경적 요인에 의하여 나타나는 심리적 변화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요인들은 작품을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시가 독자에게 주는 자연적인 감정 이입에 대한 접근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물론, 글은 작가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창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특정 테마를 경험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환경으로 들어가 체험하고 난 뒤에 글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험과 지식은 글을 쓰는데 도움을 주지만 그것이 필수조건일 수는 없습니다.
소설이나 수필과는 달리 시는 작가의 품을 떠난 후에는 독자의 내적 반응도가 크다는 사실입니다. 시를 쓰는 입장에서 보면 작품 각각이 시적 동기와 주제가 다릅니다. 그러나 시는 쓰는 작가의 감정과 읽는 독자의 느낌이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글을 읽는 독자의 환경과 감정에 의해 시가 재창조되거나 부활됩니다. 시인은 시인대로, 독자는 독자대로 각자의 경험이나 환경이나 취향에 의해 반응이 다르다는 것이지요. 시의 마력은 이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시를 씁니다.
잔물결 바람에도
뼛속까지 스며드는 고통으로
온몸이 퉁퉁 부었을지라도
달빛 푸르러 꽃필 적엔
내 울지 않았느니, 아프지 않았느니
꽃잎을 바람에 묻고 난 뒤에도
나의 가을은 아직도
이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머물러 있지만
오늘도 연못 속에는
붉은 단풍잎 하나를 바쳐 든
하얀 반달
흔들리며 떠나가고 있느니
그래, 다들 떠나고 나 홀로 남아서
비록 고개를 떨구고 있을지라도
그때에 가 누군가 찾거나
언젠가 떠난 것들이 되돌아와 물으면
대답하리라,
모두 가을에 떠났다고
난 여기서 죽 기다리고 있었노라고
―필자의 시, 「가시연꽃3)」
그래 시는 내 곁을 떠난 것이 아니고 내 마음속 깊이 침잠하여 오래오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먼 세상을 한참 삶이란 굴레에서 허덕이다가 돌아오니 꽃은 비록 졌더라도 뿌리는 남아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인이 되는 것을 꿈꾸던 아주 오래 전에 나의 소망이 어느 날 새싹이 트고 자라면서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겁니다. 시 쓰기는 미친 짓이 아니라는 것을, 새봄에 꽃은 다시 필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제 나는 사십을 훌쩍 넘었으니 요절하는 시인이 되지 않을 것이므로 그것 또한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우이시 제2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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