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나의 변함없는 벗
김 신 아(시인)
누군가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올 때 시를 쓴다고 하면 사람들은 “아, 그러시군요.”하며 말문을 닫곤 한다. 그 잠깐의 침묵이 시에 대한 일반인의 생각이나 동경의 정도를 가름하는데 있어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시인이라는 사실은 때론 그와 나의 심리적인 거리를 좁히는데 좋은 영향을 미치는 듯 서먹했던 대화에 신선한 활기를 더해주곤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시인은 특별한 사람이라며 편하게 어울리고 함께 하기에는 아무래도 어려운 존재로 인식해서인지 이전보다 관계가 부자연스러워지기도 한다.
다수의 사람들은 시가 아름답긴 해도 이해하긴 좀 어려운 것이라고 한다.
시는 매우 고귀한 정신의 산물이며 함부로 논할 수 없는 위대한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소설이나 수필에 비해 시가 문학의 장르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어찌했든 시가 수많은 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고, 시인들에게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 땅에는 일생동안 만인에게 회자되는 좋은 시 한 수 남기기를 소망하는 시인들이 많다.
시인은 떠나도 시가 남아서 오래도록 사랑 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야말로 시인의 한결같은 마음일 게다. 모든 예술은 모름지기 감동이 그 생명 아니던가.
감동적인 시 한 편이 사람의 일생을 바꿀 수 있다면, 실의에 빠진 이에게 용기를 주고,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밝혀 주기도 하며 또 사랑에 충만한 이들의 마음을 대신 전달하기도 하고, 잃어버린 꿈과 희망과 자유를 느끼게 해 줄 수 있다면, 세상에서 시보다 더 아름답고 좋은 것은 없다고 한다면 시를 쓰는 일이 또 얼마나 값지고 행복한 일일까 말이다.
나는 어린 시절 꿈이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
시인은 고귀하고 아름답고 순수하며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라 믿었다. 또 아름다운 싯구들은 내 마음을 위로해 주었고 행복하게 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 시를 읽고 외우며 때론 그 시인과 시를 사랑하게 되기도 했고 그 생생한 느낌들을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한 열망이 싹 트고 자라서인지 나는 어느 샌가 사랑을 받는 시인이 된다면 정말 멋지고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시인이 되겠다는 나의 꿈이 구체화 된 것은 중학교 시절 어느 여름방학 때였다.
군산에 사시는 외삼촌댁에 놀러 갔다가 시인이신 외삼촌의 서재에서 수많은 책들과 삼촌의 시작노트를 보게 되었다. 반듯하고 정갈한 글씨체의 간결하고 아름다운 시들이 빼곡한 그 시작노트는 지금도 내 머리 속에 생생하다.
서고의 은은한 책 향기와 방안 여기저기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외국서적들, 수줍은 듯 미소짓는 삼촌 모습과 그 선량한 음성이 시인의 모습으로는 손색이 없었다. 혈육의 정 이전에 그분의 선량하고 깊은 마음을 접한 것이 내겐 행운이었다.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시인이 나의 삼촌이라는 사실은 나에게 또 다른 기쁨이었다.
천재 소리를 듣던 수재이며 수많은 문학적 감수성과 지식, 사회적 정의감을 지닌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요, 멋진 시어를 구사하는 서정 시인을 가까이에서 뵌 것은 내가 시를 사랑하고 시인이 되겠다는 열망을 갖기에 충분한 동기가 되었다.
뜰 안에 자리한 보리수나무가 사색으로 인도하는 외가의 풍경, 키 큰 미루나무가 매미 소리와 함께 바람에 흔들리는 들길, 마음에 와 닿는 시어(詩語)들로 가슴이 벅찼던 기억, 그 해 여름방학은 감수성 예민한 나를 시의 세계로 인도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언젠가 한 원로 시인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나의 질문에 “사랑과 자유”라는 답을 한 적이 있다.
사랑과 자유 - 대상을 향한 열렬한 사랑 그리고 세상 그 무엇,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느끼며 산다는 것은 정말 멋지고 행복한 일이다. 사랑이 충만한 삶이란 전 인류의 소망이 아니겠는가. 나는 진정한 사랑이야말로 인류를 구원하는 핵심이라 믿는다. 그래서 수많은 문학 작품들이 위대한 사랑과 자유를 노래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시가 꿈꾸는 세계는 사랑과 평화와 자유가 충만한 세계라고 생각한다.
시는 인생과 자연과 우주를 노래한 아름다운 언어의 예술이며 시가 꿈꾸는 아름다움은 무한한 것이고 완벽한 것이라 생각한다.
시는 유한한 우리의 삶을 보다 깊은 깨달음과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인도하는 길잡이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럼 시인은 자신의 내면을 갈고 닦아 만물의 정혼과 우주의 섭리와 소통하는 영혼의 메신저가 아닐까?
시를 쓰는 일은 사물에 깃들어 있는 위대한 정신을 찾는 일,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일, 모든 것을 초월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는 만물의 근원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우리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유한한 존재인 우리의 근원적인 슬픔을 노래하고 마음을 달래주기 때문이다.
시인은 유한하고 보잘 것 없는 삶, 실망과 슬픔과 괴로움을 그 누구보다 절절히 느끼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시인은 마치 구도자와 같이 부단히 정진해야 한다. 또 경건하고 진지한 태도로 살아야 하고 시 역시 그런 맥락에서 쓰여져야 한다고 믿는다.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는 “예술의 길은 무법자가 걷는 길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어두운 길”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어쩌면 시의 길도 그와 무관하진 않으리라.
나는 언젠가 예술가의 초상을 시로 표현한 적이 있다.
그가 추구하는 예술은
중턱의 영광이 아니다
정상을 탈환해야 끝나는 전쟁이다
꼭대기를 향한 탑 쌓기
하늘을 찌를 듯 오만한 바벨탑의
기염 토하는 푸른 理想이다
고뇌로 깊어진 눈
정진으로 밝아진 가슴에
한없이 열리고 열리는 大道이다
그가 열망하는 예술은
세인들의 찬사가 아니다
제 스스로 찾은 벅찬 환희
하염없이 눈물 흘리는 감격의 순간
더 없는 충만함으로
그만 죽어도 좋다는
행복한 결심이다.
-졸시 「예인의 초상」-
우리가 열망하는 것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좋은 시를 쓰는 것이고 시로 인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닐까?
시는 나에게 오래된 말벗이고 연인이며 자식 같은 존재다. 사람들 속에 있지만 섬에 홀로 뚝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쓸쓸한 기분, 그 고독감을 채워주었던 것은 명시였고, 명서들이었다. 나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시인을 사랑했으며 슬프고 아름다운 시들과 벗하며 지냈으니 말이다. 시를 쓰는 지금은 나의 시들이 자식처럼 여러 사람에게 사랑 받고 인정받기를 바란다.
마모되고 퇴색되어 가는 우리의 감정을 되살리고 맑게 정화하는 시, 잃어버린 순수를 되살리는 시가 오래도록 감동을 주고 위안을 주듯 나는 늘 슬프고 아름다운, 그러나 가슴에 새 희망을 심어주는 그런 시를 고대한다.
사랑으로 지켜주지 못한 이들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등 돌린 사람들, 신뢰를 잃고 감사의 마음을 저버린 이들에게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너그러워지기 위해 나는 시를 쓴다.
시한부 생명을 사는 것처럼 안타깝고 쓸쓸한 마음을 위하여, 고독한 존재와 벗하기 위하여, 숱한 상처를 안고 사는 우리의 아픈 영혼을 위하여 시를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살아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느끼고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는 것, 사랑과 자유와 평화를 기원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부족하지만 내 무의식을 지배하는 이미지들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행운이라 생각한다. 나는 시로 인해 치유되고 성장하는 나 자신을 느낀다. 시는 말없이 나를 지켜보면서 든든히 지탱해 준 벗이었다. 살고 싶지 않을 만큼 외롭고 쓸쓸할 때 조용히 다가와 날 위로해 주던 다정하고 믿음직스런 벗이었다.
나다운 시를 쓰고 싶다. 이 지구상에 60억의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나라는 존재는 오직 하나 뿐이지 않은가. 내가 쓰는 시는 오직 하나의 얼굴로 누군가에게 나의 생각과 인생을 말하고 있으리라.
이 아름다운 봄날 나는 새롭게 시의 모험과 여행을 꿈꾸어 본다.
이미 내 손을 떠나간 시와 아직 내 안에서 잉태되고 있는 수많은 시어들을 키우면서, 누군가를 사랑하듯 시와의 즐거운 만남을 또 다시 기대한다.
시는
말의 예술이라 흔히들 말하지만
결코
말도
말의 예술도
아니다
숨결
맥박
따순 손길
말없는 바라봄
뜨건 뺨부빔…
역사의 토양에 깊이 뿌리 내리고
미래의 하늘에 주렁주렁 열매 맺는…
-이광웅 시인의 「시」-
(우이시 제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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