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사슴의 머리에 뿔은 왜 달았는가

사냥 / 임보

운수재 2008. 1. 15. 09:43

 

사냥 /   임보

 

 

살진 준마(駿馬)의 다리 같은 곧고 튼튼한 여인을 하나 얻고 싶다.

그의 등에 업혀 한 보름쯤 망망한 초원을 달리며 꿈을 꾸고 싶다.

 

햇독수리의 날개처럼 탄력 있는 순은(純銀)의 활을 하나 얻고 싶다.

그 시위에 내 영혼의 화살을 꽂아 은하가를 누비는 목이 고운 사슴별 한 놈

이 지상에 끌어내리고 싶다.

 

한 그루 나무를 얻고 싶다.

가슴과 엉덩이가 풍만한 건장한 복숭아나무 한 그루를 갖고 싶다.

그 놈에게 내 피와 땀을 한평생 쏟아 향긋한 천도(天桃)를 맺게 하고 싶다.

 

그 천도가 익으면 한 발대 가득 등에 지고 내 발이 다 닳도록 세상을 누비며 천의 사람들을 사냥하고 싶다.

내 손에 목이 잡힌 놈들에게 천도를 나누어 먹이고 떼를 지어 하늘을 날아보고 싶다.

갈가마귀떼처럼 고래고래 소리치며 하늘의 창문을 뚫고 솟아오르고 싶다.

 

 

 

 

 

'임보시집들 > 사슴의 머리에 뿔은 왜 달았는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 / 임보  (0) 2008.01.17
소요연행 / 임보  (0) 2008.01.16
다 사랑일세 / 임보  (0) 2008.01.14
작은 놈들의 세상 / 임보  (0) 2008.01.13
교미 / 임보  (0) 2008.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