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날아가는 은빛 연못

식구

운수재 2009. 1. 30. 05:52

 

 

 

식구/                             임보

 

 

 

청운산장 오르는 중턱쯤에 <샘터>라는 곳이 있는데

우물가에 포장 한 간 치고 물과 바람이나 마시고 사는 한 노파가 있는데

그 집 볕 밝은 뜰엔(뜰도 산이지만)

사람으로 치면 열네댓쯤 먹어 뵈는 토종 황구(黃狗) 한 마리와

또 사람으로 치면 예닐곱쯤 먹어 뵈는 어리디 어린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볕을 쬐며 놀고 있는데

그 괴가 황구 꼬리를 물고 귀찮게 굴어도 그냥 눈만 껌벅이

날아가는 산새들이나 쳐다보고 있는

전생에 어느 절간 청직이나 해 묵었던 놈 같기도 한

고런 능청스런 개가 한 마리 있는데

주인 노파가 도토리 자루를 지고 숲에서 내려오면

동자놈 제 스승 맞듯 반갑게 달려가는데

글쎄 이 자리가 한 십여 백 년 전엔

이 식구들 서로 얽혀 살던 무슨 절이나 하나 서 있던 그런 데나 아니었는지

내 생각도 이리 달아오른 걸 보면

나도 옛날 그 뜰을 자주 기웃거려 보던

한 그루 물푸레나무나 아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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