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꽃을 보다가/ 임보
소심(素心)이 참 오랜만에 뒤 송이 흰 꽃을 밀어 올리기에 창가에 올려 두고 만지며 보았는데, 그 진한 향으로 종일 방을 흔들어 제법 시끄럽게 했다.
그렇게 하기를 한 열흘쯤 했을까 문득 어느 아침에 녀석의 목이 쉬어 있음을 보았다.
그 쉰 목소리가 창에 붙박힌 방충망에 걸려 찢어지고 있음을 보았다.
그렇구나, 우리는 이제껏 갇혀 있었구나, 벌과 나비 그리고 새들의 즐거운 세상 저 천공의 자유로부터 유폐된 방, 우리는 포로였었구나.
그렇구나, 네가 뿌린 그 짙은 향은 절규였었구나,
옥중 춘향이 장탄가로 님을 목메어 부르다 쓰러지듯 너는 코를 저미여 그렇게 울다 목이 갈라져 이제 주저앉았구나.
오늘밤 잠이 들면, 네 짙은 울음이 묻힌 내 가슴 속에서는 몇 마리 나비가 부화하여 천사처럼 그대에게 가겠구나,
가서 그대 젖은 눈을 닦는 님의 입술이 되고 그리고 드디어 꽃은 지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