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눈부신 귀향

눈부신 귀향

운수재 2009. 8. 13. 15:57

 

 

 

 

눈부신 귀향/             임보

 

 

 

봄이 되면 꽃들은 용케도 제 집들을 찾아 피어난다.

 

보라,

노란 개나리꽃은 어둠의 흙 속에서 헤매고 다니다 봄이 되면

가는 개나리 뿌리에 스며들어 언 개나리 줄기를 녹이며 타고 올라

작은 꽃눈의 창문을 찾아 열고 활짝 밖을 내다보지 않던가?

 

분홍의 진달래꽃은 진달래 제 번지를

노란 민들레꽃은 민들레 제 번지를

해마다 찾는 제 집들을 놓친 적이 없다.

 

백목련은 백목련 가지에

자목련은 자목련 가지에

더러 바뀔 만도 한데 엇갈린 적이 없다.

 

술 취한 사람들은 한밤중에 가끔 제 집 찾기가 헷갈려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다 낭패를 당하기도 하는데

꽃들은 그런 일이 전혀 없다

 

연어가 먼 대양을 떠돌며 살아가다

씨를 뿌릴 때가 되면 수만 리를 거슬러 그의 모천을 찾아가

거센 물살을 헤쳐 오르며 맑은 자갈밭을 열고 알을 낳듯이

 

수만 가지 나무의 영혼들도

지하의 어둠 속을 떠돌며 헤매고 다니다가도 때가 되면

제 고향 나무들을 찾아 그처럼 눈부신 회향을 한다

 

사람들아, 저 가지마다에 얼굴 내밀고 있는 화사한 귀향들을

벌 나비들이 얼마나 찬양하는지 보지 않았는가

머지않아 주렁주렁 그들의 고운 씨가 매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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