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토끼다/ 임보
나는 토끼다
기묘(己卯) 생 토끼띠
음력 5월에 났으니 때를 만났다고
사주(四柱)는 말한다
그러나 60 평생 한번도
큰소리치며 살아보지 못했다
세상을 향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내 집안에서도 늘 숨죽여 지낸다
왜 토끼에게는 단단한 뿔이 없는가?
왜 토끼에게는 사나운 발톱이 없는가?
왜 토끼에게는 날카로운 이빨이 없는가?
허다 못해 고슴도치처럼
가시라도 지녔어야 할 텐데
쓸데없이 큰 귀만 달고 있어
조그만 소리에도 놀라 가슴을 조이고
앞다리는 짧아 넘어지기 일수다
언청이 입에
구부러진 등
귀가 엷어
남의 말에 잘 속고
겁이 많아
사람들 모이는 곳에도 못 간다
나는 토끼다
날카로운 이빨도 사나운 발톱도 없는 토끼
개들도 비웃고
닭들도 얕보고 지나간다.
왜 내겐 뿔을 안 주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