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눈부신 귀향

나는 토끼다

운수재 2009. 10. 29. 12:00

 

 

 

 

나는 토끼다/                     임보

 

 

 

 

 

나는 토끼다

기묘(己卯) 생 토끼띠

음력 5월에 났으니 때를 만났다고

사주(四柱)는 말한다

 

 

그러나 60 평생 한번도

큰소리치며 살아보지 못했다

세상을 향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내 집안에서도 늘 숨죽여 지낸다

 

 

왜 토끼에게는 단단한 뿔이 없는가?

왜 토끼에게는 사나운 발톱이 없는가?

왜 토끼에게는 날카로운 이빨이 없는가?

 

 

허다 못해 고슴도치처럼

가시라도 지녔어야 할 텐데

쓸데없이 큰 귀만 달고 있어

조그만 소리에도 놀라 가슴을 조이고

앞다리는 짧아 넘어지기 일수다

 

 

언청이 입에

구부러진 등

귀가 엷어

남의 말에 잘 속고

겁이 많아

사람들 모이는 곳에도 못 간다

 

 

나는 토끼다

날카로운 이빨도 사나운 발톱도 없는 토끼

개들도 비웃고

닭들도 얕보고 지나간다.

 

 

왜 내겐 뿔을 안 주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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