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터
임보
내 산책길은 삼각산 산자락을 잠시 올랐다 내려오는 것인데
집으로부터 한 40분 올라간 지점에 은밀한 내 쉼터가 있다
보광사 뒤의 약수 백천(白泉)과 세이천(洗耳泉)의 중간쯤,
더 정확히 말하면 백천으로부터 세 번째 능선을 올라서면
입산통제를 위해 쳐놓은 철조망을 만나게 된다
그 철조망 곁에 붉은 <진달래> 시목(詩木)이 하나 서 있는데
시목의 뒤에 누군가 철조망을 뚫어 개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그 구멍이 말하자면 내 안식처로 입성하는 일주문인 셈,
몸을 낮추어 겸손하게 그 문을 빠져나간 다음
한 30미터 능선을 타고 내려가면 문득 산마루에 이른다
소나무 참나무 숲을 거느린 앞이 툭 트인 비경의 명당인데
누군가 반반한 돌자리를 만들어 놓아 쉬기에 안성맞춤이다
여기가 바로 내 쉼터, 아니, 그냥 앉아 쉬는 곳이 아니라
숨을 고르고 목청을 가다듬은 다음, 소리를 지르는 곳이다
시낭송을 하다 흥이 돋으면, 낭창에, 판소리 단가도 한다
십여 개의 내 레퍼토리를 펼치는 데는 1시간 정도
산천초목의 청중들을 앞에 놓고 바락바락 악을 쓴다
그러니 이곳은 쉼터라기보다 내 '소리터'다
몇 년 동안 이 소리터를 오르내리며 정이 들다보니
이곳에 이름을 하나 달아주고 싶은 생각이 일었다
처음엔 통도 크게 봉명대(鳳鳴臺)라 부를까 하다가
학명대(鶴鳴臺)로 홍명대(鴻鳴臺)로 서서히 줄이다가
작대(鵲臺,까치), 작대(雀臺,참새)로 잦아들다가
허대(虛臺), 공대(空臺) 어쩌고 하더니
마침내 무명대로 낙착을 보았다
무명대(無名臺)가 아니라, 무명대(武鳴臺)!
힘차게 울음 우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