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풍수*
임보
오늘 묏자리를 하나 잡았다
삼각산록 그윽한 기슭
안산과 청룡백호가 그런대로 갖춰진 곳
몇 날 며칠을 두고
등산로 인근을 살피다가
가까스로 찾아낸 명당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 땅도 아니고
더더욱 국립공원 경내여서
뫼를 쓰기 어렵다는 사실,
그러니 아무도 몰래
암장을 감행해야 할 판인데
그것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느 분을 모실 유택이냐고?
우리 집의 0순위 식구
치와와 ‘다롱’이다
딸년이 15년을 데리고 사는데
요즘 잘 먹지도 않고 비틀거리는 게
이놈의 상태가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다
이제 떠나갈 때가 다 된 모양이라고
딸년과 아내는 안타까워하며
장례 치를 걱정을 하고 있는 판국―
제 조상님 산소도 제대로 못 돌본 놈이
개를 위해서 묏자리를 미리 보고 다니는
어쩌다 그만 ‘개 풍수’가 되고 말았다
* 풍수(風水) : 지관(地官). 풍수설에 따라 집터나 묏자리를 잡는 사람.
출처 : 자연과 시의 이웃들
글쓴이 : 운수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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