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선시] 석경

운수재 2007. 3. 19. 07:15


 

 

석경(石鏡)  /   임보



청석동(靑石洞) 어구 강가에는

석제(石弟)라는 거울 장수가

숫돌에 청석(靑石)을 종일 갈고 있다

손바닥만한 석경들을 만들어

나룻가에 늘어 놓고 사람들을 기다린다

물을 건너는 나그네들이 더러

돌거울을 들어 들여다보기는 하지만

사 가는 자는 거의 없다

어떤 거울인가 싶어

얼굴을 비추어 보았더니

마치 옴탈바가지를 눌러 쓴 것 같은

쭈그러진 얼굴이 드러나 보인다

이 무슨 흉칙스런 형상이란 말인가

이렇게 일그러진 제 얼굴을 보려

거울을 사 갈 자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을 법이나 한 일인가

여보, 제대로 잘 비춘 거울을 만들어야지

어찌 이러고야 팔리겠오?

하고 충고를 했더니

석제(石弟)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노려본다

그리고 무어라고 중얼중얼거리는데

그 뜻을 통 헤아릴 수가 없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면서

물에 일렁이는 내 조각 얼굴들을

다시 들여다보며 생각에 젖어 있는데

내 마음을 읽은 사공이 귀에다 대고 가만히 이르기를

석제(石弟)는 늘 사람들을 보고

제 몰골도 볼 줄 모르는 당달봉사놈들이라고

욕설을 퍼붓는다는 것이다.



자연과 시의 이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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