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선시] 비둘기

운수재 2007. 3. 18. 09:17


 

비둘기  /  임보

 


월정(月汀)이란 마을의 동구 앞에 이르렀더니

한 노인이 대나무 그늘 아래서

무엇인가를 꿰메고 있다

죽은 비둘기의 터진 등짝을 붙이는 중이었다

독수리 발톱에서 앗아 왔는데

혼이 놀라 벌써 육신을 떠났다고 한다

그런데 이 어인 일인가

죽어 있던 비둘기가 갑자기 날개를 퍼덕이며

노인의 손을 떠나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그러자

비둘기를 놓친 노인이 비그르르 모로 쓰러졌다

죽은 비둘기는 살아 하늘로 날으고

산 노인은 숨을 거두고 눈을 감았다

이 무슨 봉변이란 말인가

그런데 얼마나 지났던가

하늘로부터 깃 치는 소리와 함께

한 마리 새가 내려왔다

죽은 노인의 가슴에 내려 앉는 새는

날아갔던 그 비둘기가 아닌가

그러자 노인이 눈을 다시 뜬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노인에게

어이된 영문인가 물었더니

잠시 새의 몸 속에 들어가

떠도는 새의 혼을 붙잡아 데불고 왔노라고 한다

새는 다시 숲으로 날아가고

노인은 저벅저벅 마을로 들어간다.



자연과 시의 이웃들


'임보시집들 > 구름 위의 다락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시] 거래  (0) 2007.03.22
[선시] 석경  (0) 2007.03.19
[선시] 일자  (0) 2007.03.17
[선시] 운월사  (0) 2007.03.16
[선시] 목화밭  (0) 2007.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