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선시] 도화밀천

운수재 2007. 3. 26. 05:52

 

 


도화밀천(桃花蜜泉)  /   임보



자운동(紫雲洞) 골짝은 온통 복숭아꽃 천지다

가도 가도 꽃과 벌들의 세상이다

흐르는 개울물에 목을 적시며 시장끼를 달래는데

그런 내 꼴을 보고 민망했던지

동행하던 목천(木川)이

자신의 발목을 꽉 움켜잡으라 이른다

휙 바람이 일더니

목천(木川)은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그의 도포자락은 날개가 되었는데

그는 한 마리 벌이었다

벌의 발에 매달려 떠 있는 나도

날개가 돋아 있다

우리는 한 도화밀천(桃花蜜泉)에 기어들어

꿀을 파먹다 이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던가

햇살이 너무 따가와 눈을 떴더니

집채보다도 더 큰 둥근 분홍 바위 위다

날개를 다시 펴고

바위 위에서 뛰어내렸는데

돌아와 보니

우리가 누웠던 곳은 한 알의

복숭아 열매였다

어느 새 익은 복숭아들이

가지가 휘도록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우리는 잘 익은 천도(天桃)를 골라 깨물면서

자운동(紫雲洞) 골짝을 흥얼거리며

기어올랐다.






자연과 시의 이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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