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 임보
노산(露山)과 황주(黃舟)는
다 신발쟁이들이건만
그들의 하는 일은 같지 않다
노산(露山)은
수만 마리의 거미들을
우리 속에 가두어 사육하는데
놈들의 먹이에 금분(金粉)을 넣어
황금의 실을 뽑아낸다
그 거미줄로 엮어 만든 신발을
규(珪)라고 하는데
규를 신은 자는
불 위를 그냥 걸을 수 있다.
황주(黃舟)는
옥단(玉丹)이라는 거름으로 뽕나무를 기르는데
뽕잎이 옥처럼 맑다
그 뽕잎에 매달려 사는 누에들의
몸뚱이 또한 투명하기 수정이다
그놈들이 뽑아낸 명주실로 짠 것이
와(蝸)라는 신발인데
와를 신은 자는
물 위를 그냥 걸을 수 있다.
황(黃)과 노(露) 두 사람이
각기 제 신발들을 놓고 자랑하고 있다
길을 가던 한 나그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서 있다가
자신의 맨발을 쳐들어 보이며
"나는 이것으로 다 걸을 수 있다"
고 웃으며 지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