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선시] 신발

운수재 2007. 3. 29. 07:19

 

 

 

신발   /    임보



노산(露山)과 황주(黃舟)는

다 신발쟁이들이건만

그들의 하는 일은 같지 않다

노산(露山)은

수만 마리의 거미들을

우리 속에 가두어 사육하는데

놈들의 먹이에 금분(金粉)을 넣어

황금의 실을 뽑아낸다

그 거미줄로 엮어 만든 신발을

규(珪)라고 하는데

규를 신은 자는

불 위를 그냥 걸을 수 있다.

황주(黃舟)는

옥단(玉丹)이라는 거름으로 뽕나무를 기르는데

뽕잎이 옥처럼 맑다

그 뽕잎에 매달려 사는 누에들의

몸뚱이 또한 투명하기 수정이다

그놈들이 뽑아낸 명주실로 짠 것이

와(蝸)라는 신발인데

와를 신은 자는

물 위를 그냥 걸을 수 있다.

황(黃)과 노(露) 두 사람이

각기 제 신발들을 놓고 자랑하고 있다

길을 가던 한 나그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서 있다가

자신의 맨발을 쳐들어 보이며

"나는 이것으로 다 걸을 수 있다"

고 웃으며 지나간다.




자연과 시의 이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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