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명시 감상

정몽주의 <정부원>

운수재 2007. 5. 17. 04:47

[명시감상]

 

포은의 「정부원(征婦怨」/    임보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는 고려 말의 문신으로 이성계의 반정을 견제하려다 피살당한 충신이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시문 또한 호방(豪放)하다는 평을 들었던 문사였다. 역모를 꿈꾸던 이성계가 그 아들 이방원으로 하여금 「하여가(何如歌)」를 불러 포은의 속마음을 떠보려 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하고 칡넝쿨처럼 서로 얽혀서 한세상 적당히 살아가자고 유혹을 하자, 이에 정몽주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라고 비록 백 번을 죽어 뼈가 흙이 된다 할지라도 마음을 바꿀 수 없다는 「단심가(丹心歌)」로 그의 절의를 노래했다는 일화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철퇴를 맞아 목숨을 잃었던 개성의 선죽교 다리 위엔 아직도 붉은 혈흔이 남아 있고, 피가 스민 다리 밑에선 푸른 대나무가 자라났다는 전설이 전해 오기도 한다.

 

포은의 「정부원(征婦怨)」이라는 유명한 절구가 있는데 이 작품에 대한 상반된 두 해석이 재미있다.

 

一別年多消息稀    한번 떠난 뒤로 여러 해 소식 없어

寒垣存沒有誰知    수자리의 삶과 죽음 그 누가 알랴.

今朝始寄寒衣去    오늘 처음 솜옷을 지어서 보내나니

泣送歸時在腹兒    울며 보내고 돌아올 때 뱃속에 아이 있었네.

                                     ―「정부원」(김달진 역)

 

위의 번역문을 좇아 이 시를 감상하면 다음과 같다.

병정의 몸이 되어 싸움터로 멀리 떠나간 남편과 한번 이별한 뒤 여러 해가 지났건만 남편으로부터는 소식이 감감하다. 변방의 요새에서 아직 살아 있는지 아니면 전사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렇지만 아내는 겨울이 다가오자 남편이 걱정되어 겨울 솜옷을 지어 부친다. 그런데 울며 돌아오는 아내의 뱃속엔 아이가 있다.

남편과 이별한 지 여러 해가 된 아내의 뱃속에 지금 아이가 있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남편이 없는 사이 그 아낙네가 바람이라도 피웠단 말인가? 바람피운 여인이라면 군에 간 남편쯤 잊어버릴 만도 한데 겨울옷을 지어 부치는 행위는 또 무엇인가? 그래서 어떤 이는 이 시를 고려말의 문란한 성풍조를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한편 이 작품을 다음과 같이 옮기는 이도 있다.

 

이별한 뒤 여러 핸데 소식 거의 없으시니

변방 게서 사셨는지 알 수가 있습니까?

오늘 처음 겨울옷을 부치러 가는 사람

울며 전송 돌아올 제 뱃속 있던 아이입니다.

―「서방님을 일선에 보낸 아낙의 원망」(송준호 역)

 

이 번역에서는 ‘뱃속에 있던 아이’를 지금이 아닌 남편이 떠날 때의 상황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 아이가 지금은 7, 8세쯤 되었을까. 어느덧 심부름할 수 있을 만큼 자랐다. 그래서 아내는 새로 지은 겨울옷을 어린 아들에게 시켜 부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어린 아이가 어떻게 아비가 있는 먼 변방의 요새에까지 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아이가 옷을 들고 가는 곳은 요새가 아니라 관아일 것만 같다. 관아에서는 병사들의 가정으로부터 겨울옷을 수거하여 전쟁터의 병정들에게 전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처음(始)’은 옷을 보내는 일이 최초라는 뜻이 아니라 어린 아들로 하여금 옷을 부치는 일이 처음이라는 것이리라. 화자를 아내로 설정하고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을 빌어 썼다. 남편에게 겨울 솜옷을 부치면서 그 속에 넣어 보낸 편지처럼 쓴 시다. 이별할 때 뱃속에 있던 아이가 어느덧 자라 소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남편에 대한 원한(怨恨)을 극적으로 잘 표현한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란한 성풍조를 엿볼 수 있다는 전자의 견해보다는 ‘재복아(在腹兒)’를 남편이 떠나던 당시의 상황으로 보려는 후자의 견해가 훨씬 설득력을 가지며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이 작품은 포은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중국 한대(漢代)의 민간 악부(樂府)는 개인의 삶 속에서 느끼는 슬픔이나 기쁨의 정서를 노래한 작품들이 주조를 이룬다. 그 가운데서도 집을 멀리 떠난 나그네나 병정들이 고향을 그리는 내용의 노래들이 많다. 아마도 포은의 이 「정부원」은 그 악부 형식의 글을 모방해서 만든 상상적인 작품으로 짐작된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이 작품을 두고 “결구(結句)는 아름답지만 기구(起句)가 대단히 졸렬하여 당조(唐調)가 아니다”라고 꼬집고 있다. 이는 결구에서 뱃속의 아이가 자라 소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들어 이별의 긴 세월을 암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구에서 이별한 지 여러 해 되었다고 직설적으로 서술한 것은 사족에 지나지 않다는 견해인 것 같다. 시는 함축과 간결을 지향하는 글이므로 그런 비평을 받을 만도 하다. 포은 같은 대가의 시문에서도 이렇게 흠이 잡히는 걸 보면 보통 사람들의 글에서 하자(瑕疵)를 떨치기가 얼마나 어려울 것인지 짐작이 간다. 완벽한 글을 쓰기란 참 어렵고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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