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인광 / 유공희

운수재 2007. 9. 1. 08:19

 

 

인광(燐光)유공희

 

 

층운(層雲) 아래의 시간… 그 박명(薄明) 속에서 내가 살았다

걸어가는 나의 어깨 위에 숨이 끊어지는 나뭇잎들

이 밤 나는 다시 낯설은 향기에 젖어 주저앉다

 

등 뒤엔 가랑잎처럼 시들어 가는

오 나의 아침의 시구(詩句)들이여

흰 호수 앞에서 죽고 다시 눈뜨면서

또한 어둠속에 피는 갈대꽃의 몸에 넘치는

하얀 빛깔에 젖어 보채우는 목숨이 하나…

아 나의 애무는 항상 통곡이었다

탐식(貪食)이었다

 

아 바다같이 비등(沸騰)하는 나의 생활 감정

서글픈 모음의 세계여

하얀 살결에서 살결로

낯설은 바람이 기름처럼 흘러

차디찬 사구(砂丘)에선 노란 버섯만 피어난다

 

생각할 여지도 없이 나는 항상 마셨다

황량한 나의 저녁마다 살쪄가는 육체가 하나

아 날개를 지니지 못한 원한(怨恨)이 있어

태고연(太古然)한 풀잎 사이에선

밤마다 무수한 교상(咬傷)이 빛났다

(1942. 9. 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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