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정경 / 유공희

운수재 2007. 9. 3. 05:07

 

 

 

정경(情景) /  유공희

― 비장(秘藏)된 생활의 관념도(觀念圖)

 

정오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 길가에서

아이의 영혼은 힘껏 설렜다

 

어딘가 나지막한 담 위에

하얀 팔을 뻗쳐

한 떨기 해바라기를 잡아끊었을 때

 

아이의 얼굴은 불같이 탔다

 

오 지상에 어그러진 천의(天意)의 죄악이여!

예속을 강요하는 화사(花蛇)의 입술이여!

 

그 노란 이마 속에

순간 현란(絢爛)한 서식(棲息)이 물들어

아이는 얼마나 몸서리쳤으랴!

 

아이는 훨훨 타는 불멸(不滅)을 감추지 못하여

태양처럼 달음질쳤다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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