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情景) / 유공희
― 비장(秘藏)된 생활의 관념도(觀念圖)
정오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 길가에서
아이의 영혼은 힘껏 설렜다
어딘가 나지막한 담 위에
하얀 팔을 뻗쳐
한 떨기 해바라기를 잡아끊었을 때
아이의 얼굴은 불같이 탔다
오 지상에 어그러진 천의(天意)의 죄악이여!
예속을 강요하는 화사(花蛇)의 입술이여!
그 노란 이마 속에
순간 현란(絢爛)한 서식(棲息)이 물들어
아이는 얼마나 몸서리쳤으랴!
아이는 훨훨 타는 불멸(不滅)을 감추지 못하여
태양처럼 달음질쳤다
(1941.)
'유상 유공희의 글 > 유공희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경 2 / 유공희 (0) | 2007.09.06 |
---|---|
영에게 / 유공희 (0) | 2007.09.05 |
매미 / 유공희 (0) | 2007.09.02 |
인광 / 유공희 (0) | 2007.09.01 |
어느 실경 / 유공희 (0) | 2007.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