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瑩)에게 / 유공희
온종일 햇볕 구경도 못하는
굴속 같은 방안에서
영아! 네 앞에는 눈부시도록 드높은 세계가
소리치고 있구나
흙이 떨어지는 벽 아래에서
혼자 조개껍질 소꿉질에 바보 같아진 영아!
밖에는 오랜만에 밀감물 같은 햇볕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모르는 영아!
아비는 먹장 같은 세상에서
이제는 먼 옛 이야기와도 같아진
새벽을 헤아리고 있는데
아 훤한 바닷소리라도 듣도 싶은데
이제까지도 밥을 조르다 지친 영아!
조개껍질 푸른 무늬가 신기로우냐
네 앞에는 눈물겹도록 푸른 세계가
소리치며 커 가고 있구나
무덤같이 답답한 방안에서 배가 고파도
네 눈에는 새벽처럼 빛나는 것이 있구나
영아, 숱한 사람의 가슴이 벅차듯 기다리는
해같이 위대한 새벽이 오면
너는 바다처럼 힘센 사내가 되라
바다처럼 넓고 푸른 세상에서
바다처럼 일하는 사내가 되라
(1952. 9. 4. 순천으로 흘러온 지 나흘째 되는 날
넋을 잃고 꼬막조개껍질을 가지고 노는 영(瑩)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