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情景) 2 / 유공희
하고 싶던 사랑
가고 싶던 꽃길 다 버리고
너는 오늘 마을을 떠나가는구나
끄으름과 누더기 속에 자라났어도
티 없이 울리는 목소리 우는 목소리
죄(罪)를 모르고 무거운 사슬에 매여도
오히려 운명을 사랑만 하던 작은 얼굴아
매를 맞아도 피를 빨리어도
오로지 양(羊)과 같이 순하디 순한 것
날이 새면 들로 내로 다니다
그래도 철이 오면 복숭아같이 붉던 심장
모든 어둠이 휩쓸려 와도
뿌리 깊은 죄가 무성하여도
대자연의 품속엔 아름다운 꽃이 피거늘
맑은 샘물이 자거늘
무서운 폭풍우의 밤마다
검은 구름 사이 더욱 더웁게 빛났을 별아!
하고 싶은 사랑, 가고 싶은 꽃길
나이와 같이 흘려버리고
낯설은 사내를 따라
너도 오늘은 마을을 떠나는구나
아배도 어매도 마을 사람들도
다 우는 것이다
고운 하늘 아래 꽃바람 속에 소리 지르며
끄으름과 누더기가 가르쳐 준
바보를 우는 것이다 반편을 우는 것이다
(194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