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로잡은 한 편의 시

최승자의 <즐거운 일기> / 윤정옥

운수재 2007. 10. 13. 06:10

 

 

최 승 자 의 『즐거운 일기』    / 윤 정 옥

 

 

내가 태어나 자란 곳 전곡은 시골 면소재지이면서 논밭 뙈기에 의지하기보다는 뜨내기손님들을 상대해 돈벌이로 먹고사는 상업성이 강한 지역이었다. 빙 둘러싸인 산과 강은 생경해 보였어도 나름대로 자연의 면모를 갖춘 곳이었다. 38이북인 전곡은 군인들이 없으면 사실 돈벌이가 안 되는 곳이었다. 군대를 갔다오지 않고도 군인들의 생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면 우스운 얘기일가? 그들을 불쌍히도 여겨보고 끔찍스럽게 느끼기도 했으니 사춘기 때의 나는 전곡을 떠나는 길만이 내가 갈 길이라 생각했었고 드디어 대학을 가게 되면서 서울살이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막상 태어나 처음으로 전곡을 떠나 혼자서 객지생활을 하다보니 외로움, 분함, 무언가에 대한 적개심에 늘 흥분상태로 지내야 했다. 문학써클에 들어가 시를 쓴다고 공부보다는 시집을 들고 다니기 일쑤였고 치졸하기 짝이 없는 생각으로 밤을 새기도 했다. 기존에 내가 익히 듣고 보았던 시들은 태어남과 자라남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치유하기에는 너무도 약했고 너무도 고왔다. 그러다 같은 써클 친구가 생일 선물로 받았다는 노란 표지의 「문학과 사상사」에서 나온 최승자의 『즐거운 일기』를 힐끗 보게 되었다. 지금도 갖고 있는 이 책의 표지 안쪽에는 써클 친구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얼굴 모르는 사람의 이름이 씌어 있다. 하여간 이 책은 내게로 와서 새로운 나를 만들었다.

 

나는 최승자의 악다구니를 경전처럼 읽고 또 읽으며 사는 힘을 얻었다. 세상에 대해 이렇게 시원하게 뱉을 수 있다는데 놀랬다. 아름다운 말로만 시어를 고르는 이전의 시에서 한 발짝 걸어나와 더 이상 시는 김소월이나 한용운처럼 쓰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최승자의 시는 고통스럽다. 모래 사막에서 사는 삶의 고통스러움이다. 현재 삶의 헛됨은 자아의 탄생 직후부터로 시인에게 삶의 무의미성은 생래적 조건이다. 최승자의 시는 삶이 비극임을 철저히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그 비극의 의미와 그 비극을 배태하는 현실의 위악성을 충격적으로 깨닫게 해준다.

 

 당시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를 몰래 돌려보거나 5월 광주민중항쟁의 처절한 사진을 보러 다니기도 했던 또래들의 대학시절과는 달리, 나는 허무와 무의미성의 생에 대해 일찌감치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던 때라 최승자의 시와 더불어 세상을 후벼파고 가소로운 듯 웃어줄 수 있을 만큼 나와 세상에 대한 정체성을 파악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허무가 녹아든 시집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나의 병도 치유가 되어갔던 것은 아니었는지.

 

내가 태어나 자란 곳에 대해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도 되었다. 나의 개인사, 가족사, 우리 민족의 역사까지도 아우르며 정을 느껴갈 수 있었다. 용서할 것은 용서하고 기억할 것은 기억하는 것으로, 전곡은 역사의 희생터요, 곧 갈 것이라 생각하며 북쪽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아버지, 그 밑에서 태어나 자라야했던 나와 우리 가족도 역사의 희생양이 아닐까 싶었다.

 

 정말 오랜만에 그녀의 악다구니를 내 목소리인양 낭송해 본다. 시원해진다. 사실 더 살아보니 할 말 다 하고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허무인지 허무맹랑병인지를 돌볼 시간도 없이 살아가는 동안 그런 병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살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집 『즐거운 일기』 중에서 한 편을 골라 큰 목소리로 읽어본다.

 

                           오늘 저녁이 먹기 싫고

 

오늘 저녁이 먹기 싫고 내일 아침이 살기 싫으니

이대로 쓰러져 잠들리라.

쥐도새도 모르게 잠들어 버리리라.

그러나 자고 싶어도 죽고 싶어도

누울 곳 없는 정신은 툭하면 집을 나서서

이 거리 저 골목을 기웃거리고,

살코기처럼 흥건하게 쏟아지는 불빛들.

오오 그대들 오늘도 살아계신가,

정처없이 살아계신가.

밤나무 이파리 실뱀처럼 뒤엉켜

밤꽃들 불을 켜는 네온의 집 창가에서

나는 고아처럼 바라본다.

일촉즉발의 사랑 속에서 따스하게 숨쉬는 염통들,

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애인들의 배를 베고

여자들 남자들 하염없이 평화롭게 붕붕거리지만

흐흥 뭐해서 뭐해, 별들은 매연에 취해 질끔거리고

구슬픈 밤공기가 이별의 닐리리를 불러대는 밤거리.

올 늦가을엔 새빨간 루즈를 칠하고

내년엔 실한 아들 하나 낳을까

아니면 내일부터 단식을 시작할까

그러나 돌아와 방문을 열면

응답처럼 보복처럼, 나의 기둥서방

죽음이 나보다 먼저 누워

두 눈을 멀뚱거리고 있다.

                                                                             (우이시 제14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