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의 연정(戀情) / 유공희
야반(夜半) 홀로 낯서른 방안에 촛불을 켜고 마주 앉았다.
잠자지 않는 나의 두 눈동자 앞에 춤추는 한 떨기
백광(白光)의 정욕(情欲)…
하늘에서 떨어진 어둠은 밀물처럼 잔인하여 만상을 삼키고
우주의 한 구석에서 떠는 한 방울의 연정(戀情)을 싸고
소나기 같은 주어(呪語)를 고함칠 때
아 춤추는 프로메테의 음모(陰謀)…유일한 태양의 연정(戀情)이여!
네가 하늘에서 저 기괴(奇怪)한 꽃다발을 훔치던 날
지상에는 영원의 여정(旅情)이 번식(繁殖)하는도다.
구원(久遠)한 ‘의상(衣裳)’의 즐거움이 꽃피는도다.
아 샛별 같은 나의 각성(覺醒)의 고통이여!
말없는 구적(仇敵) ‘어둠’의 팽창, 한없는 나의 형자(形姿)의 환상이여!
견디기 어려운 육체의 무거움, 도전하는 나형(裸形)의 음태(淫態)…
오, 의상을 거부하는 어둠의 탐욕이여!
바다와도 같은 흑막(黑幕)으로 모든 신화(神話)를 쓸어가려는
자취없는 맹목의 세력… 눈도 귀도 없는 나형(裸形)의 괴수(怪獸)…
이 소나기 같은 구적(仇敵)에 싸여 춤추는 한 송이의 백광(白光)이여!
너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결투의 창시자(創始者)…
불멸한 프로메테의 연정(戀情)―
나는 항상 너의 피가 떨어지는 곳에서 나의 만상(萬象)을 읽었고
너의 피가 흐르는 곳에 항상 나의 의상을 찾았도다!
백지 위에 그려진 헤아릴 수 없는 나의 모음의 놀이여!
아, 영원한 천상(天上)의 얘기―‘나형(裸形)’의 서글픈 알레고리여!
허무한 풀은 꽃병 속에 백지를 태우는 나의 열 손가락…
이 밤, 소나기 같은 구적(仇敵)의 주어(呪語) 속에
한 송이 태양의 여정(旅情)을 마련한 순수한 생물―
고달픈 우주의 촉수(觸手)여!
전력을 다하여 잔인한 구적(仇敵)의 음악에 견디랴는 너의 입김에
프로메테의 음모(陰謀)… 구원(久遠)의 연정(戀情)이 느껴 우는도다.
오, 순수한 백광(白光)의 종족(種族)… 너의 전신을 더듬어
‘불’의 성(性)을 추상(抽象)하여
이 구적(仇敵)의 취우(驟雨) 속에 말없는 이 벽을 노래하게 하고
이끼 낀 바위돌을 말하게 하려는…
오 너의 구원(久遠)의 불놀이의 꿈…애달픈 지상의 숙명…
‘의상(衣裳)’의 신화(神話)여!
아, 잠자지 않는 나의 몸을 싸고 도는 백광(白光)의 여정(旅情)이여!
영원히 흐르는 ‘형자(形姿)’의 명언(命言)…태양과도 같은 나의 ‘의상’의 전설…
오 구적의 바다를 방황하는 나의 에고의 주문(呪文)이여!
스스로 춤추는 정욕을 알슬코 잠자지 않는 하얀 손가락들…
이 프로메테의 화상(火傷)의 영원한 아픔이
인광(燐光)과도같이 중얼거리는도다 중얼거리는도다.
(1946. 3. 27. 吳淞에서)
'유상 유공희의 글 > 유공희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지개와도같이 / 유공희 (0) | 2007.10.22 |
---|---|
두 개의 조개껍질 / 유공희 (0) | 2007.10.04 |
귀뚜라미 / 유공희 (0) | 2007.10.01 |
그대의 하얀 손을 / 유공희 (0) | 2007.09.29 |
향수 1 / 유공희 (0) | 2007.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