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한담(漢詩閑談)

석주 권필 / 조영님

운수재 2007. 11. 22. 09:31

 

 

 

석주 권필 /  조 영 님

 

 

권필(權韠)은 조선 선조에서 광해 연간에 활동했던 시인이다. 호는 石洲 또는 無言子이다. 일찍이 남용익은『호곡만필』에서 ‘정경의 어울림은 마땅히 석주 권필이 으뜸이 된다’고 하였으며, 계곡 장유는 ‘석주의 입에서 형상화되고, 그의 눈앞에서 구성되는 모든 것이 시 아닌 것이 없다’고 하였다. 석주는 포의의 몸으로 시명을 드날린 이다. 석주의 생김새는 이마가 넓고 입이 컸으며, 눈은 시원스럽게 생겼고 기상이 호방하였다. 또한 말하는 것이 호탕하고 때때로 우스개 소리를 잘 했다. 성품이 술을 좋아하였으며, 술에 취하면 말이 더욱 호방하였다. 그러나 글을 지은 것은 모두 정경이 온당하고 조화를 이루어 어느 것도 천기에서 흘러 넘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한다.

 

권필의 집안은 대대로 문명이 높았던 명문이다. 菊齋 權溥가 그의 9대조가 되며 陽村 權近이 그의 6대조가 된다. 그리고 아버지 權擘은 호가 習齋로 신광한에게서 시를 배워 이미 시명이 높았고 당시에 핍진하다는 평을 받았던 인물이다. 이런 가계에서 태어난 석주는 일찌감치 과거를 포기하고 세상일에 뜻을 두지 않고 산수간을 떠돌며 시와 술로써 한 세상을 살게 된다. 석주는 젊은 시절 과거 공부에 전념하여 19세에 초시와 복시에 각기 장원하였으나 뒤늦게 한 글자를 잘못 쓴 것이 밝혀져 합격이 취소되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 이 사건이 발단이 된 것이라면, 그가 존경해 마지않던 스승 정철이 왕세자 책봉 문제로 신묘년에 파직되어 귀양가게 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이후 세상과 영합하지 않게 된다.

이제 석주의 시를 감상하여 보자.

 

빈 산에 낙엽 지고 비는 부슬부슬                  空山木落雨蕭蕭

상국의 풍류도 이처럼 쓸쓸하구나.                相國風流此寂廖

애달퍼라. 한 잔 술 다시 올리지 못하니          惆愴一盃難更進

지난날의 그 노래 오늘을 두고 지었음인가.     昔年歌曲卽今朝

 

위의 시는 권필의 스승인 정철이 죽자 그의 무덤에서 쓴 「過松江墓有感」으로 인구에 널리 회자되는 명편이다. 한 세상을 주름잡았던 스승의 위풍당당함은 이제 쓸쓸한 무덤으로 변했다. 무덤이 자리잡은 빈 산에는 가을이라 낙엽지고 게다가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쓸쓸함을 더하고 있다. 흔히들 죽음 앞에 인생무상을 말한다지만 살아 생전 태산같이 크게 느껴졌던 스승의 자리였던 만큼 그 공허함과 무상함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제는 이승과 저승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사제간에 다정하게 술잔을 나누지도 못하겠으니 얼마나 애달픈가. 옛날 불렀던 그 노래는 바로 오늘을 두고 지었던 것인가 보다. 「將進酒辭」가 바로 그 노래라. ‘한잔 먹새그려 또 한잔 먹새그려 곳것거 산노코 무진무진 먹새그려 이몸 주근 후면… 뉘 한잔 먹자할고’ 이 몸이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 살아 생전 실컷 마셔보자던 정철의 호방한 기운이 잘 드러난 사설시조이다. 스승의 무덤 앞에 마음 다해 술 한잔 올리려니 옛날 스승의 그 노래가 생각나 더욱 슬픔을 자아내게 한다.

 

석주는 성품이 호방하고 얽매이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우스개 소리를 곧잘 하였는데 그의 시에도 속담의 우스개 소리를 쓰곤 했다. 일찍이 어떤 절에 놀러 갔는데, 마침 장님이 오므로 석주가 시를 지어 주기를 ‘遠客來山寺(먼 손이 산 절간에 오니)/ 秋風一杖輕(가을 바람에 지팡이 하나 가볍구나)/ 直入沙門去(곧장 사문처럼 들어서니) /丹靑四壁明(사벽의 단청이 환하다)’라고 하였다. 우리나라 방언에 장님을 두고 ‘눈이 멀었다’, ‘장님의 지팡이’, ‘장님이 문을 바로 들었다.’, ‘장님 단청 구경한다’는 라는 말이 있는데 모두 이것을 염두에 두고 적절히 배합하여 쓴 시이다. 가을날 산사를 구경하러 온 장님을 희롱하여 쓴 것이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어떤 시골 선비가 行詩는 잘 짓는데 율시는 짓지 못하며, 탁주는 잘 마시는데 청주는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에 석주가 조롱하기를 ‘율시는 서본 같고(律詩如鼠本)/ 청주는 묘두같다(淸酒作猫頭)’라 하였다. 행시는 우리나라에서만 독특하게 성행하던 시체로 조선중기 무렵에는 科場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체이다. 율시와 청주가 서투른 것을 鼠本과 猫頭같다고 하였다. 서본이란 속담에 쥐좆을 말한다. 즉 우리나라 말에 좋지 못한 물건을 흔히 이것 같다고 하며, 묘두는 고양이 뿔이니 고양이란 본래 뿔이 없는 짐승이다. 그러니 이 말도 무엇을 전혀 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쓴 것이다. ‘율시 짓는 솜씨는 형편없기가 쥐좆 같고, 청주는 아예 입에 대지도 못한다.’는 표현이다. 이것은 『호곡시화』에 전하는 이야기이다. 풍자한 솜씨가 그럴 듯 하나 역시 점잖은 선비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닐 성싶다. 그러나 이 짤막한 이야기를 통해 석주의 성격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겠다.

 

석주는 본래 강직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지만 결국 그가 죽게 된 것은 한 편의 시 때문이었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당시 권세를 누리고 있던 이이첨이 권필의 이름을 듣고 사귀기를 원하였으나 만나주지 않았다. 하루는 친구의 집에서 만나게 되자 담을 뛰어넘어 회피하였다 한다. 또한 술을 마시면 문득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풍자하여 시를 짓곤 하였다. 임숙영이란 자가 조정의 실책을 극언하다가 광해군의 뜻을 거슬려 삭탈관직되자 석주가 이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풍자하였다.

 

대궐 버들 푸르고 어지러이 꽃 날리니           宮柳靑靑花亂飛

성안의 벼슬아치 햇살 좇아 찾아든다            滿城冠蓋媚春暉

조정에선 입 모아 태평세월 하례하나            朝家共賀昇平樂

위언이 선비 입에서 나올 줄 뉘 알았으랴!      誰遣危言出布衣

 

시제는 「宮柳」이다. 이 시가 널리 회자되어 궁궐에까지 들어가 광해군이 이를 듣고 매우 진노하였다. 때마침 처남인 趙守倫이 어떤 사건에 연좌되어 옥에 잡히게 되었는데 집안을 수색하던 중 우연히 이 ‘궁류시’가 나오는 바람에 권필까지 잡혀들어가게 되었다.

봄을 맞은 대궐에 버들이 푸르고 꽃들이 흩날리자 벼슬아치들 따뜻한 봄볕을 찾아든다. 모두들 태평한 세월이라 하례를 하는데 난데없이 누가 시켰는지 포의의 선비가 바른 말을 하는구나. 시의 심층적 의미를 따져보면 이렇다. 첫째 구는 득의한 광해군의 비 유씨와 꽃들로 비유된 외척들이 세력을 믿고 방자하게 구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리고 조정의 벼슬아치들은 하나같이 아첨하는 간신배들로, 임금의 총애로 비유된 봄볕을 좇는다는 것이 둘째 구이다. 바른 말을 하는 포의는 바로 임숙영이다. 왕과 비, 벼슬아치의 실정을 풍자하고 임숙영의 간언을 두둔하는 글이니 누가 보아도 풍자의 시이다. 국문장에서 권필은 ‘궁류’란 두 글자는 당초 王元之의 ‘대궐 버들 삼월 아지랑이 속에 낮게 드리웠네(宮柳低垂三月烟)’란 구절에서 따온 것이라 변명하였다 하나 누가 그의 말을 믿겠는가?

광해가 친국을 하여 유배가 결정되었으나 형벌을 너무 심하게 받아 들것에 실려 동대문을 나왔으나 귀양지로 떠나지 못하고 동대문 밖 민가에 머물고 있다가 친구들이 권하는 막걸리 두어 잔을 마시고는 장독이 솟구쳐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때가 그의 나이 44세였다.

윤증이 그의 행장에 ‘하늘이 공에게 글재주를 내린 것이 공을 영화롭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다만 재앙을 주려 한 것인가’라고 탄식하였듯 안타깝다는 말 외에 달리 무슨 말을 하랴!

                                                                                                                     (우이시 제1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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