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날아가는 은빛 연못

가을엔

운수재 2009. 1. 17. 11:58

 

 

 

가을엔/                                 임보

 

 

 

가을엔

목관악기도 살이 오르나 보다

지난여름 어느 긴 오후엔

폐부의 맨 아래 골짜기를 겨우 적시던

대금의 저 산조가

이 밤에는

목까지 가득 넘치며 출렁이는구나

 

가을엔

동산의 달도 더 붉게 익나 보다

지난봄 어느 저녁엔

뜰에 나서야 드디어 밝던

그대 이마 위의 작은 사마귀

이 밤에는

감은 내 눈 속에서도 오히려 부시도다

 

가을엔

무딘 내 코도 맑게 트이나 보다

내 유년의 마른 식탁 위에 빛나던

금빛 토하젓 그 향긋한 냄새

이 밤에는

천리 반생을 거슬러 어느덧

먼 남도 따스한 개울에

벌써 닿아 있구나 이 혀는―.

 

 

 

 

 

 

'임보시집들 > 날아가는 은빛 연못'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경 1  (0) 2009.01.19
가을 편지  (0) 2009.01.18
달력  (0) 2009.01.16
염천  (0) 2009.01.15
어느 여름 일기  (0) 2009.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