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임보
가을엔
목관악기도 살이 오르나 보다
지난여름 어느 긴 오후엔
폐부의 맨 아래 골짜기를 겨우 적시던
대금의 저 산조가
이 밤에는
목까지 가득 넘치며 출렁이는구나
가을엔
동산의 달도 더 붉게 익나 보다
지난봄 어느 저녁엔
뜰에 나서야 드디어 밝던
그대 이마 위의 작은 사마귀
이 밤에는
감은 내 눈 속에서도 오히려 부시도다
가을엔
무딘 내 코도 맑게 트이나 보다
내 유년의 마른 식탁 위에 빛나던
금빛 토하젓 그 향긋한 냄새
이 밤에는
천리 반생을 거슬러 어느덧
먼 남도 따스한 개울에
벌써 닿아 있구나 이 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