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감상

박재삼의 <봄 바다에서> / 임보

운수재 2006. 3. 2. 11:11


박재삼의 「봄바다에서」임보



    1
    화안한 꽃밭 같네 참.
    눈이 부시어, 저것은 꽃핀 것가 꽃진 것가 여겼더니, 피는 것 지는 것을 같이한 그러한 꽃밭의 저것은 저승살이가 아닌 것가 참. 실로 언짢달 것가. 기쁘달 것가.
    거기 정신없이 앉았는 섬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살았닥 해도 그 많은 때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숨소리를 나누고 있는 반짝이는 봄바다와도 같은 저승 어디쯤에 호젓이 밀린 섬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 것가.

    2
    우리가 少時적에, 우리까지를 사랑한 南平文氏 夫人은, 그러나 사랑하는 아무도 없어 한낮에 꽃밭 속에 치마를 쓰고 찬란한 목숨을 풀어 헤쳤더란다.
    확실히 그때로부터였던가, 그 둘러썼던 비단치마를 새로 풀며 우리에게까지도 설레는 물결이라면
    우리는 치마 안자락으로 코 훔쳐 주던 때의 머언 향내 속으로 살 달아 마음 달아 젓는단 것가.
    *
    돛단배 두엇, 해동갑하여 그 참 흰나비 같네.
    ―박재삼 「봄바다에서」전문

이 작품은 박재삼의 처녀시집 『춘향의 마음』(1962)에 수록되어 있다.
20대에 쓴 작품이다. 그런데 그의 일반적인 서정시와는 달리 정서의 구조가 단순하지 않다.
젊은 날의 섬세하고도 깊은 서정의 올들이 비단 무늬처럼 얽혀 있다.

제1연은 바다, 제2연은 남평 문씨에 대한 진술이다.
전자는 현재, 후자는 과거의 정황이 주도한다.
먼저 제1연의 첫 행부터 따져보도록 하자.

바다를 환한 꽃밭 같다고 한다.
바야흐로 봄이 되어 만물이 생동하는 기운이 온 산천에 감돌고 있다.
바다의 잔물결들이 화사한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 싱그럽다.
마치 봄동산의 꽃밭같이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그래서 봄바다를 꽃밭 같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제2행의 진술이다.
그 꽃밭은 '피는 꽃'과 '지는 꽃'의 상반된 두 요소를 공유하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공간으로 제시된다.
'피는 꽃'의 이미지는 생동하는 봄 곧 현실(이승)에 대한 감각이고,
'지는 꽃'의 이미지는 죽음 곧 저승에 대한 감각이리라.
왜 바다에서 저승의 이미지를 느끼게 되는가 하는 이유는 제2연의 진술(남평 문씨의 죽음)을 읽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의도된 장치다.
아무튼 이 봄바다는 다음과 같은 이중구조를 갖는다.

    피는 꽃--봄--이승--기쁨
    지는 꽃--죽음--저승--언짢음

제3, 4행은 섬에 대한 선망의 정을 읊은 것이다.
바다 가운데 떠 있는 섬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자신도 섬이 된다.
섬이 떠 있는 그 바다는 '죽은 사람(남평 문씨)'과 '산 사람(=나)'이 '숨소리를 나누고 있는(=함께 사는)' 저승과 이승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화자의 섬에 대한 선망은 저승 지향을 의미한다.
저승 지향은 다름 아닌 남평 문씨에 대한 사랑이다.

제2연은 과거의 한 에피소드―남평 문씨에 대한 진술이다.
남평 문씨는 어린 우리까지를 사랑한 인정 어린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하는 아무도 없어(님을 잃고)' 드디어 '꽃밭 속(바다)'에 투신 자살을 한다.
님을 앗아간 바다에 뛰어들어 님과 하나가 되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 바다를 볼 때마다 남평 문씨의 치마폭 같은 그 바다 물결은 죽은 남평 문씨에 대한 기억을 되살아나게 한다.
치마 안자락으로 코 훔쳐주던 남평 문씨에 대한 정겨운 사랑의 기억을 돌이키면 지금도 심신이 달아오름을 억제할 수 없다.

맨 끝의 마지막 한 행은 독립된 연이라고 해도 좋다.
작품을 마무리짓는 에필로그인데 다시 현실로 돌아와 바다의 정경을 제시하고 있다.
돛단 배 두엇이 온종일 흰나비처럼 바다에 떠 있다고 말한다.
바다를 꽃밭으로 보았으니 돛단배를 나비로 보는 것은 자연스런 발상이리라.
그러나 이 진술은 단순한 서경이 아니라 화자의 선망을 담고 있다.
남평 문씨가 가 있는 저 저승(바다)에 온종일 떠 있는 돛단배에 대한 선망이다.
그 선망의 정을 '참'이라는 감탄사를 통해 읽어낼 수 있다.
이는 제1연에서의 섬 지향의 욕망과 궤를 같이 한다.

모성적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애절하게 표현한 수작이다.
작품 전체의 극적인 전개 구조도 성공적이고 비유도 적절하다.
의도적으로 사투리투의 어미를 구사해서 향토성과 유년기의 정서를 환기하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시가 비록 난해하더라도 논리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면 풀리지 못할 것도 없다.
시를 해독하는 재미는 마치 미로의 통로를 찾아가는 게임처럼 보다 난해한 구조에서 더욱 배가할지 모른다.
그러나 만일 끝까지 이해되기를 거부한 난해시가 있다면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독자들의 시에 대한 사랑과 기대를 저버린 배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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