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족보 거대한 족보/ 임보 사람들아, 우리는 다 하느님의 아들 한 핏줄이다 원수는 그대 마음을 짓밟은 증오의 망령이며 적(敵)은 그대 마음을 사로잡은 탐욕의 그림자일 뿐 우리는 한 핏줄의 형제다. 아니, 저 산 속의 뭇 짐승이며 수목들 저 들판의 잡초며 하찮은 곤충들도 다 우리의 동포다 사람들아, 세상.. 임보시집들/눈부신 귀향 2009.08.17
손의 행적 손의 행적/ 임보 어떤 손은 계산기를 두들기고 어떤 손은 목탁을 두들긴다 칼과 창을 벼리는 손도 있고 삽과 호미를 빚는 손도 있다 한때는 화투를 쥐던 손이 한때는 붓을 잡기도 한다 올무를 놓는 손도 있고 오라를 푸는 손도 있다 진주를 찾으려 시궁창을 헤집기도 하고 목숨을 걸고 폭탄의 뇌관을 .. 임보시집들/눈부신 귀향 2009.08.16
손의 언어 손의 언어/ 임보 주먹을 불끈 쥐면 분노 두 손을 비비면 애원 움켜잡으면 욕망 가만히 내밀면 구걸 쓰다듬으면 애무가 되지만 어깨 위로 들어 흔들면 작별 하나의 검지로 사람들은 지시, 선택, 야유, 고발을 한다 엄지를 세워 공중으로 쳐들면 으뜸 지상으로 내리꽂으면 죽임 엄지와 검지만을 둥글게 .. 임보시집들/눈부신 귀향 2009.08.15
눈부신 귀향 눈부신 귀향/ 임보 봄이 되면 꽃들은 용케도 제 집들을 찾아 피어난다. 보라, 노란 개나리꽃은 어둠의 흙 속에서 헤매고 다니다 봄이 되면 가는 개나리 뿌리에 스며들어 언 개나리 줄기를 녹이며 타고 올라 작은 꽃눈의 창문을 찾아 열고 활짝 밖을 내다보지 않던가? 분홍의 진달래꽃은 진달래 제 번지.. 임보시집들/눈부신 귀향 2009.08.13
길 없는 길 길 없는 길/ 임보 강물 위에 앉았다가 일제히 하늘을 향해 비상해 오르는 수천 마리 철새 떼들의 일사불란 그들은 길 없는 허공 길을 평화롭게 날아 그들의 고향에 이른다 바다 속을 헤엄쳐 가는 수만 마리의 물고기 떼들 어떠한 암초와 수초에도 걸리지 않고 수만 리 길 없는 물길을 거슬러 그들의 모.. 임보시집들/눈부신 귀향 2009.08.12
<눈부신 귀향> 책머리에 책머리에 흔히 시는 관념을 지양해야 한다고들 한다. 그래서 관념의 사물화를 내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경우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그래서 좋은 것만도 아니다. 나는 시를 '영롱한 언어의 사리(舍利)'라고 정의한 바 있는데, 영롱히 빛나는 것은 사물만이 아니다. 관념도 농축되면 .. 임보시집들/눈부신 귀향 2009.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