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 명당 천하 명당/ 임보 산골은 산골대로 갯벌은 갯벌대로 들녘은 들녘대로 장터는 장터대로 봄날의 패랭이꽃 여름의 한삼넝쿨 가을의 똘감나무 겨울의 가시탱자 달개비야, 달개비야 여울가의 달개비야 자네들이 사는 곳이 천하의 명당일세 농부의 쟁기도 어부의 그물도 대장간의 풀무도 들병지기 호리병도.. 임보시집들/눈부신 귀향 2009.08.31
치매=해탈 해탈=치매/ 임보 한 십 년 잘 기르던 난초도 남에게 주고 몇 십 년 손때 묻은 벼루도 팽개치고 가죽끈 다 닳은 책들도 내던지고 가사(袈裟)도 염주도 목탁도 가진 것 다 떨쳐 버리고 빈 몸으로 홀가분히 누워있는 선사 맑은 평화 무상 공 ․ 한평생 정성들인 논밭도 다 잊어버리고 한세상 부대낀 식구들.. 임보시집들/눈부신 귀향 2009.08.28
우리들은 다 완벽하다 우리들은 다 완벽하다/ 임보 독수리는 독수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부엉이는 부엉이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보라매의 부리는 먹이를 쪼는 창이지만 딱따구리의 부리는 집을 짓는 연장이다 물에 사는 오리의 발은 물갈퀴요 뭍에 사는 닭의 발은 흙갈퀴다 창공에 날개 드리운 수리부엉이여 한 마리의 .. 임보시집들/눈부신 귀향 2009.08.26
생애 생애/ 임보 하루살이의 일생은 하루다 아침에 태어나서 저녁에 떠난다 어떤 미생물의 목숨은 태어나자 바로 죽는 몇 분의 1초에 불과한 것도 있다 그러니 그 미생물의 눈으로 보면 하루살이의 생애는 길고도 참 길다 인간은 한 70년 지상에 머문다 섭생을 잘 하면 100년 이상 버티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 임보시집들/눈부신 귀향 2009.08.25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누구인가/ 임보 한 무더기 흙을 쌓는 일도 내겐 이리 힘들거늘 저 큰 산들을 저리 높인 당신은 누구인가? 한 동이 물을 나르기도 내겐 이리 버겁거늘 저 양양한 바닷물을 저리 모은 당신은 누구인가? 대지를 휩쓴 태풍이여 당신의 진노한 입김인가? 광막한 밤하늘의 성군이여 당신의 무량(無量) .. 임보시집들/눈부신 귀향 2009.08.24
세상에 온 까닭 세상에 온 까닭/ 임보 그대여 삶의 의미를 모르겠으면 연어를 보라 아무도 일러주는 이 없어도 태평양의 광막한 대양을 헤매다가 새끼를 가질 때가 되면 그가 처음 알에서 깨어났던 저 남대천 같은 모천(母川)으로 돌아와 죽음으로 몸을 헐며 씨를 심지 않던가 보라, 사람들도 장성하여 새끼를 가질 만.. 임보시집들/눈부신 귀향 2009.08.22
도량(道場) 도량(道場)/ 임보 시장 밑바닥에 굴러다니던 삼돌이란 놈이 세상이 시끄럽다고 큰 산을 찾았다 석파(石破) 스님이 된 삼돌이 그러나 절간도 소란스럽다고 암자에 나앉았다 하지만 암자의 목탁소리도 번거로워 토굴을 파고 그 속에 홀로 묻혔다 토굴의 벽을 맞대고 열두 달은 지났는데도 천만 잡념이 .. 임보시집들/눈부신 귀향 2009.08.21
크레도스를 몰면서 크레도스를 몰면서/ 임보 내 윤마(輪馬)는 97형 1.8 dohc 크레도스다 여기 저기 자잘한 외상을 입기는 했어도 아직은 잘 달린다 매주 월요일 아침 서울 우이동에서 동부순환도로, 중부고속도로를 거쳐 청주의 내 직장까지 나를 데려다 준다 엑셀레터를 밟은 내 발이 나를 싣고 간다 아니, 발이 아니라 크.. 임보시집들/눈부신 귀향 2009.08.20
삶에 관한 물음 삶에 관한 물음/ 임보 어떤 이는 세상을 등지고 깊은 산골에 들어가 산새들의 울음소리나 듣고 산나물이나 씹으며 조용히 살라고 한다 어떤 이는 호숫가 풍치 좋은 곳을 찾아 정자를 세우고 낚싯대나 드리우고 시나 읊조리며 한가하게 살라고 한다 어떤 이는 거친 세상에 나가 수많은 사람들과 부대끼.. 임보시집들/눈부신 귀향 2009.08.19
움켜쥔다 움켜쥔다/ 임보 입들은 먹이를 움켜쥐고 수컷은 암컷을 움켜쥔다. 몇 푼의 돈을 움켜쥐기 위해 사람들은 또 얼마나 혈안인가? 하기사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움켜쥐고 있다. 노른자와 흰자를 움켜쥐고 있는 둥근 달걀 검은 씨와 과즙을 움켜쥐고 있는 빨간 사과 길가에 놓인 한 덩이 돌도 얼마나 힘껏 .. 임보시집들/눈부신 귀향 2009.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