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 놀기 봄꽃 놀기/ 임보 ―율(律)․58 삼겹살 둬 근에 소주 서너 되 진달래 꽃그늘에 배꼽 내놓고 우이동(牛耳洞) 시쟁이들 봄바람 노네 열여덟 점순 애기 애띤 목소리 ‘한 많은 이 세상’에 오줌 제리며……. 임보시집들/황소의 뿔 2009.05.05
동여맬까 봐 동여맬까 봐/ 임보 ―율(律)․57 비진도(比珍島) 숫바다 그 돌밭에서 연꽃 시늉한 돌 하나 만나 내 책상머리에 끌어다 놓고 밤마다 파도소리 듣고 있는데 오늘밤 매실주 홀짝이면서 내 소견 좁음을 다시 보네 뭘 하러 예까지 그걸 업고 와 얽힌 가슴 첩첩이 더 얽어매나? 허기사 차라리 정을 풀까 봐 먹.. 임보시집들/황소의 뿔 2009.05.04
그대 목소리 그대 목소리/ 임보 ―율(律)․56 북한산 계곡 우이동에 오면 산들이 치마를 펴고 우리를 맞네 물소리 베고 솔밭에 누워 땀에 절은 가슴 말리노라면 먼 백운대(白雲臺) 구름 속에서 손짓하며 내려오는 연초록 바람, 아른아른 타오르는 그대 목소리. 임보시집들/황소의 뿔 2009.05.02
에스컬레이터 에스컬레이터/ 임보 에스컬레이터는 밟히기 위해 태어났다. 백의 어깨로 종일 일만 군중들을 메어 날라도 불평하지 않는다. 그에겐 애초 입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보시집들/황소의 뿔 2009.05.01
우리들의 재산 우리들의 재산/ 임보 우리들의 귀는 레일을 후비며 달리는 쇠바퀴들의 아우성 소리로 이미 점령당했다. 우리들의 눈은 벽들마다 내쏘는 광고들의 화살에 이미 시력을 잃었다. 우리들의 혀는 오랜 동면에 길들어 이미 굳어 있다. 우리들의 것으로 아직 빼앗기지 않고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임보시집들/황소의 뿔 2009.04.29
출근 출근/ 임보 우리들의 전철은 움직이는 거대한 순대다. 출근하는 아침 우리들은 이미 생명을 벗은 철제 순대 속의 으깨진 밥풀이다. 우리들의 육신은 부부보다 더 깊게 손과 발이 바뀌어 서로 하나가 된다. 그러나 장쾌한 이 기쁨, 이 긍지 우리들은 으깨진 이 아침들을 모아 우리들의 바로 머리 위 햇볕.. 임보시집들/황소의 뿔 2009.04.24
난초꽃 난초꽃/ 임보 동대문 지하철 입구 한 노파가 난(蘭)을 팔고 있다. 봄비가 시려 고개를 길게 뽑은 꽃들이 아직 털도 없는 제비 새끼들처럼 광주리 속에서 종알대고 있다. 백차(白車)가 휙 지나자 꽃들은 깜짝 놀라 노파의 치마 밑에 고개를 묻고 죽은 듯 잠잠해졌다. 임보시집들/황소의 뿔 2009.04.22
청둥오리 청둥오리/ 임보 겨울, 청둥오리들은 푸른 날개로 비취 하늘에 구멍을 뚫고 타는 영혼을 심을 때, 겨울, 시민들은 새들의 깃털을 뽑아 두터운 외투를 만들어 입고 두더지처럼 지하로 내린다. 임보시집들/황소의 뿔 2009.04.20
시집 <황소의 뿔> 서문 책머리에 작년 11월 《은수달 사냥》을 묶어 낸 지 1년이 채 못 되어 《황소의 뿔》을 내놓게 된다. 10년에 시집 한 권 만들기 힘들 정도로 과작���었던 내가 요즈음 와선 1년에 한 번씩 묶어 낼 만큼 다산을 하고 있으니 무슨 신명이 들었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 시 많이 만들어 낸 사람들 빈정댔더니.. 임보시집들/황소의 뿔 2009.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