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로잡은 한 편의 시

김수영의 <폭포> / 박영원

운수재 2007. 10. 15. 07:51

 

김 수 영 의 「폭포(瀑布)」 / /박 영 원

 

세월은 역시 무상하다. 이 시를 대할 때마다, 혹은 교단에서 이 작품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다. 40여 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님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6․25라는 민족상잔의 동란을 겪은 후 草根木皮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던 시절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농번기 때는 농번기대로, 겨울철 농한기 때는 농한기대로 농촌생활은 고달프기 이를 데 없었다. 지금처럼 TV나 다양한 오락시설도 없던 때인지라, 당시의 농민들은 들에서 하루해를 보내고 돌아오면 그대로 지쳐 잠자리에 떨어지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 시절을 극복했는지 꿈만 같던 시절의 이야기다.

할아버님과 할머님께서는 종종 언쟁을 하셨다. 할머님은 ‘제발 마을 젊은이들에 대한 참견을 하지 말라’는 내용의 말씀이었고, 할아버님은 그때마다 화를 벌컥 내시며 ‘젊은 놈들의 못된 버릇을 어른이 꾸짖지 않으면 누가 고치느냐’는 말씀이었다. 천 번 만 번 옳은 말씀이었다.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그렇다. 젊은이들의 그릇된 점은 낮이나 밤이나 눈에 띄는 대로 늘 어른이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며 꾸짖고 이끌어야 한다. 내 일이 아니고, 내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고 해서 ‘강 너머 불 보듯’ 하는 현실 세태를 보면 더욱 切感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평소에는 과묵하시고 남의 일이라면 더더욱 말씀을 절제하시며 할아버님께 내조를 잘 하시던, 그래서 부부간의 금슬이 남달리 좋으시던 할머님께서 왜 그리 자주 할아버님과 언쟁을 하셨을까?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세상맛을 안 다음에야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이 시가 내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할아버님도 마을 아낙네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 모양이다. 그것이 할머님의 마음을 거슬리게 한 모양이다.

 

그러나, 할아버님은 초지일관 당신의 그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마을에 사랑방 하나를 얻어 그들에게 ‘명심보감’을 배우게 하는 등, 오히려 마을분들의 입방아와 할머님의 말씀이 거세질수록 더욱 마을 청년들을 계도하는 일에 열을 올리셨다.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지듯’.

나는 이 작품을 대할 때마다 부정적 현실에 타협하지 않으시고 굳은 의지의 삶을 추구하시던 할아버님이 새삼 그리워진다. 윤리와 도덕, 그리고 질서가 붕괴되어 혼탁해져 가는 오늘의 우리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 어찌 생각하면 할아버님과 이 작품은 영원한 나의 생활신조로 살아 남을 것이다.

금년에도 나는 두어 차례 게거품을 물고 이 작품을 학생들에게 강의할 것이다. 할아버님의 고귀한 뜻을 기억 속에 되살리면서.

할아버님 감사합니다.

(우이시 제1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