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재의 「아, 나의 어머니― 늙지 마시라」 / 이 대 의
주말이면 자주 고향에 간다. 고향이라고 해봐야 떠날 사람들 다 떠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오기로 살아가는 가난한 마을이지만 나는 내 고향을 사랑한다. 내 유년의 기억이 배어 있고, 꿈이 서려있는 곳. 그 복판에 나의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가 그곳에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고향은 아름답고 소중하다.
고향 그리고 어머니의 땅에서 서투른 일손이지만 농사를 도와 드린다. 그러면 힘들게 일하는 내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여기 걱정은 말고 네 일이나 열심히 해라한다. 할 일이 천지임에도 힘든 일은 시키지 않으려고 하는 어머니 마음이 늘 아프게 느껴진다.
주말을 고향에서 보내고 돌아오면 새삼 후회가 된다. 일에 쪼들리고 지친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좀더 일을 도와드릴 걸 하는 생각이 든다. 따비밭에 고추도 따고 텃밭에 김장배추를 심기 위해 밭거지도 해야하고, 생각해보면 깔린 게 일인데 그냥 두고 온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그 많은 일들을 어머니 홀로 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걱정스런 마음에 일을 조금만 하라고 당부를 하고 때로는 투정도 부려보지만 워낙 부지런하신 어머니는 그 말이 가당치도 않은 말이란 걸 안다.
마음만은 어머니께 무언가 도와드리고 싶고, 보답해드리고 싶지만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무엇하나 해드린 것이 없어 늘 마음에 걸린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퍼주고도 모자라하고 아쉬워하며 이제껏 살아오셨다. 하여 어머니란 말만 나와도 가슴이 뭉클하고 설레는지 모른다.
그렇다. 어머니는 내 삶의 기둥이며 정신적인 뿌리요, 마음의 빛이다. 내 안에 이렇게 크게 자리잡고 있기에 어머니에 대한 詩를 써보려고 몇 번인가 시도를 해 보았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완성시키지 못했다. 내 언어로 표현한 것이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과 뿌리깊은 감동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를 어머니란 단어말고 감히 뭐라 이미지화 시키거나 상징화시킬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보면서 오영재 시인의 '나의 어머니' 시편들을 보았다. 나는 몇 번을 읽고 또 읽어보았다.
아, 나의 어머니
― 늙지 마시라
늙지 마시라
더 늙지 마시라. 어머니여
세월아. 가지 말라
통일되여
우리 만나는 그날까지라도
이날까지 늙으신 것만도
이 가슴이 아픈데
세월아. 섰거라
통일되어
우리 만나는 그날까지라도
너 기어이 가야만 한다면
어머니 앞으로 흐르는 세월을
나에게 다오
내 어머니 몫까지
한 해에 두 살씩 먹으리
검은빛 한 오리 없이
내 백발 서둘러 온대도
어린 날의 그때처럼
어머니 품에 얼굴을 묻을 수 있다면
그 다음에
그 다음엔
내 죽어도 유한이 없으리니
어머니 찾아가는 통일의 그 길에선
가시밭에 피 흘려도 아프지 않으리
어머니여
더 늙질 마시라
세월아. 가지 마라
통일되여
우리 서로 만나는 그날까지라도
'아, 나의 어머니' 모든 시편에서도 나타나지만 이 시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특히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마음이 분단의 아픔과 함께 가슴 절절하게 깔려있다. 남과 북이 갈라져 소식도 모르고 살다가 40년 만에 남한에 계시는 어머니의 소식을 듣고 '그 기쁨 천 근으로 몸에 실려 그만 쓰러져 웁니다. 목놓아 이 아들은 울고 웁니다. 땅에 엎드려 넋을 잃고 자꾸만 큰절을 합니다'- (고맙습니다) 부분- 그리고 '부르다만 그 이름 세상에 귀중한 어머니란 말을 잃고 그 말 앞에서 벙어리가 되어 버린 이 자식 40년만에 이 벙어리가 입을 엽니다.'-(부르다만 그 이름)- 하고 탄식을 하고, '사진을 보고' 어머니의 '목소리'를 생각하고 '아들의 심정'을 쏟아내다가 '늙지 마시라'고 간절하게 기원한다. '늙지 마시라' 이 시를 읽으며 나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우리 만나는 그 날까지라도 너 기어이 가야만 한다면 어머니 앞으로 흐르는 세월을 나에게 다오. 내 어머니 몫까지 한해에 두 살씩 먹으리' 하는 이 글! 나는 지금까지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이토록 감동적으로 읽어 본 것이 없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시적 기교나 장치 없이 가슴속에 간절히 배여 있는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읽으면서 한동안 명상에 잠겨 있었다.
고향에서 홀로 계신 어머니에 대한 생각과 이젠 정말 효도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울러 나의 분신 같은 詩의 방향도 이처럼 쉬우면서도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문화사대주의 즉 정체불명의 서구이론에만 얽매어 진정한 우리 글 혹은 진정한 나의 글을 쓰지 못한 느낌이다. 혹자는 이러한 글을 한참 지나버린 진부한 글이라 치부해 버릴지 모르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요즘 유행하는 시들처럼 비틀어 쓰고 무슨 말인지 모를 애매 모호한 글보다는 이처럼 우리의 일상적일 언어로 쓰면서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더불어 감동을 전해줄 수 있는 글이 좋다.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새삼 오영재 시인을 만나고 싶다. 분단의 아픔 속에서 그토록 가슴 깊이 그리던 어머니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다음에야 찾아온 그 슬픔을 나누고 싶다. 만나서 밤새도록 술이나 마시고 싶다.
(우이시 제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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