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746

작은 놈들이 무섭다

작은 놈들이 무섭다 임 보 물소는 몸이 크고 단단한 뿔을 지녀 그와 맞서는 맹수들은 별로 없다 그러나 거구의 물소를 넘어뜨려 잡는 건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사자다 그래서 사자를 두고 백수의 왕이라고 일컫는다 그런데 그 백수의 왕 사자를 뜯어먹고 사는 놈이 있다 어떤 맹수인 줄 아는가? 뿔도 이빨도 사나운 발톱도 없는 콩알보다도 작은 쉬파리들― 그들이 사자의 얼굴에 앉아 우글거리고 있질 않는가? 하기야 지상의 황제 인간들을 혼쭐내는 놈들도 매머드처럼 거대한 동물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녀석들 코로나19라는 미생물이 아니던가? ==================================== * 22년 봄호 저작자 표시컨텐츠변경비영리

신작시 2022.06.08

신 오우가

신 오우가(五友歌) 임 보 내 벗이 뭐냐 하면 휴대폰과 노트북 뜰 앞의 백모란과 노거송(老巨松) 한 그루 삼각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노라 천리 밖 지인들 목소리도 들려 주고 그리운 사람들 얼굴도 담아 주고 궁금증 다 풀어주는 휴대폰이 상친구 종이 붓 없어도 손가락만 놀려대면 글도 써 주고 편지도 보내 주고 온종일 나를 위해서 시중드는 노트북 앞마당 취밭 곁엔 지천명의 백모란 5월초 한 이틀 하얀 꽃을 토하는데 그 손님 맞이하려고 1년 내내 시중드네 대문 앞 터주 대감 백년 묵은 노거송 운수재 수문장으로 우람하게 서 있는데 집밖에 드나들 적마다 만지고 쓰다듬네 백운대 인수봉 만경봉 삼각산아 지난밤 잘 잤느냐? 오늘 아침 어떠한가? 날마다 바라다보며 안부 묻고 끄덕이네 ================..

신작시 2022.06.02

운석 / 임보

운석(隕石) 임 보 운석은 별똥별입니다. 별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이 광막한 허공을 떠돌다 지구의 인력권에 들어오면 지구를 향해 추락해 내리지요. 그때 대기와의 마찰로 인해 불이 붙게 되는데 그것이 유성(流星)―별똥별입니다. 그렇게 타다 남은 별똥별이 지상에 떨어지면 그것을 일러 운석(隕石) 혹은 운철(隕鐵)이라고 한답니다. 그러니 운석이나 운철은 지구가 아닌 다른 천체의 한 부분이므로 귀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운석의 값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 10배나 더 비싸게 거래되는 모양입니다. 몇 해 전에는 경남 진주에 몇 개의 운석이 떨어져 세상을 흥분시키기도 했지요. 산야에는 수수 억만 년 동안 떨어진 운석들이 많이 박혀 있을 터인데 보통사람들은 식별하기가 어려우니 모르고 지나치는 게지요. 나는 3..

신작시 2022.06.01

신선이 따로 없다

신선이 따로 없다 임 보 아침부터 나가서 근무해야 할 직장이 없다 오늘 누구와 만나야 할 약속도 없다 시간에 쫓기며 해야 할 특별한 과제도 없다 글을 쓰고 싶으면 써도 되고 세상을 향해 욕을 하고 싶으면 해도 되고 흥얼흥얼 노래를 하든, 낭창을 읊조려도 된다 건넌방 서너 평 내 서재에서 2인칭 소설 「너」를 구상하기도 하고 시나리오 「봉선달 의원」을 펼쳐 놓고 진도가 나아가도 좋고 안 나아가도 상관없다 들어올 돈도 없지만 갚아야 할 빚도 없다 잡곡밥에 소찬이지만 아직 끼니는 굶지 않고 매실주가 있어 주흥을 누릴 수 있다 심심하면 페북을 열고 들어가 보면 된다 수만 명이 북적대며 별짓들을 다 하고 있지 않는가? 세상에 이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으려나? 내가 신선인 듯 생각하니 이 지상이 바로 선계만 같다..

신작시 2022.04.09

엄마

엄마 / 임보 한 방송사가 주관한 국민가수 경연대회에 50세의 무명가수가 등장하여 기타와 휘파람으로 애절한 반주를 넣어가며 자작곡 「엄마」를 불러 세상을 울렸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라는 한 마디 말을 어린 염소새끼처럼 울부짖으며 3억 원의 상금을 거머쥐었다. ---------------------------------------------- * 박창근 : 1972년 생. 수십 년 무명가수로 어렵게 지내다 하루아침에 유명해짐. (우리시 22년 3월호)

신작시 2022.03.11

임보의 <마음학교>

임보의 / 임보 본의 아니게 학교를 하나 열었다. 삼각산 밑, 화계사 길 수유리 시장통 입구에 자리한 낡은 건물이지만 이웃들이 참 아기자기하다. 의 간판을 보며 복도에 들어서면 2층으로 오르는 좌측의 좁은 계단 와 을 지나 그리고 3층의 암자 을 넘어 맨 위 4층에 이르면 천 시인의 사업장 이 있는데 학교이사장인 천 시인이 자신의 업소에 새로 문을 연 학교의 이름을 달았다 왈 《임보 문학관 「마음학교」》다. 내가 매주 화요일 오전에 가서 한 둬 시간쯤 시에 대한 얘기를 지껄이는 곳이다. 학생은 5,6십대의 중늙은이들 몇 교실은 언제나 허전하지만 점심에 부대찌개와 소주 맛이 괜찮아 휴강하는 일이 없다. 그렇게 해서 언제 빛을 보겠느냐고 주위 사람들은 빈정대기도 하지만 놀라지 마시라 인사동에 분교도 있다. ..

신작시 2022.03.09

입춘시

입춘시 임 보 2022년 2월 4일 입춘절 아침을 맞아 내가 쓴 입춘시를 찾아보는데 보이지 않는다 내 한평생 봄에 대한 갈망도 없이 그렇게 무덤덤하게 살았던가 보다 사람들은 매년 입춘절을 맞아 모두들 열심히 立春大吉 建陽多慶 입춘방을 써 붙이고 복을 기원하건만… 오늘은 나도 모처럼 입춘방을 지어 입춘절을 맞이할까 보다 =====================================

신작시 2022.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