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746

수(守)·파(破)·리(離)

수(守)·파(破)·리(離) / 임 보 ‘수(守)·파(破)·리(離)’는 검도에서 소중히 여기는 경구(警句)라고 한다 검도에 손방인 나는 이 경구를 처음 이렇게 읽었다 ‘[守] 수비가 제일이고 [破] 공격은 그 다음 [離] 공격 후에는 빨리 떨어져라!’ 그런데 30여 년 넘게 수련한 검도의 사범이 해설한 글은 다음과 같았다 ‘스승의 가르침에 충실히 임하고(守), 다음엔 그것을 깨고(破), 그리고 자기만의 길을 찾아서 떠나라(離)!’ 라는 뜻이라고 하지 않는가? 원래는 불교의 수행승을 위한 잠언이었는데 일본에 들어가 검도의 경구가 된 것이란다 글쓰기 수련을 하는 젊은이들이 이를 좌우명으로 삼아도 무방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통을 충실히 익힌 다음 그것을 깨뜨리고 자기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찾아내라! =======..

신작시 2021.03.09

무례한 방문객

무례한 방문객 ―시는 어떻게 찾아오는가? 임 보 그놈은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찾아온다 버스를 타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도 내 곁에 다가와 소곤거리기도 하고 홀로 길을 가다가 보도블록 틈새에 돋아난 작은 제비꽃을 만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있을 때도 한잔 술에 거나해 흥얼거리며 돌아오다 문득 오동나무에 걸린 벗은 달을 보며 눈이 젖을 때도 세상의 일이 고단해 몸이 늘어져 있을 때도 하늘이 너무 깊고 푸르러 어즈럼증이 일 때도 그놈은 찾아와 알짤알짱 내 귀를 간질이며 품어달라고 아양을 부리기도 한다 더더욱 난감한 것은 깊은 밤 잠에서 깨어 뒤척이고 있을 때 불쑥 찾아와 말 보따리를 풀어 놓고 퍼즐게임을 하자며 보채는 것이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나를 찾아와 사랑의 병을 앓게 하는 무례한 불청객 그놈은 불멸의..

신작시 2020.12.24

프로폴리스

프로폴리스 임 보 꿀벌의 집에서 추출해 낸 것으로 항균의 작용이 뛰어난 물질로 알려져 있다 벌들이 그들의 새끼와 식량을 균이나 미생물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나무껍질에서 추출해 만들어낸 것이란다 요즘엔 사람들이 벌들이 만들어 놓은 이 프로폴리스를 훔쳐와 항생제 치료약으로 쓰고 있다 도대체 그 벌들이 어떻게 그런 신약을 만들 줄 알았을까? 의과대학도 제약회사도 없는 그들이 어떻게 그런 묘약을 만들 줄 알았을까? ============================== * (20. 가을호)

신작시 2020.10.14

국력은 무엇인가?

국력은 무엇인가? 임 보 국력― 나라의 힘은 무엇인가? 국토가 얼마나 넓으냐 인가? 자원이 얼마나 많으냐 인가? 달러를 얼마나 많이 가졌냐 인가? 얼마나 과학이 발전해 있느냐 인가? 얼마나 막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느냐 인가? 아니다! ‘사람의 입’ 곧 인구(人口)가 얼마나 많으냐 이다! 동네에서도 식구가 많은 집이 떵떵거리며 지낸다 미국과 맞짱뜨는 중국도 인구의 힘 때문이다 결혼을 소홀히 생각하는 젊은 사람들아, 자식 낳아 기르기를 꺼려하는 젊은 부부들아, 그대들의 가장 큰 자산은 자손이다 우리 대한민국도 세계의 열강에 끼이려면 적어도 1억이 넘는 인구를 가져야만 한다 인력이 곧 국력이다 많이 낳아 잘 길러야 한다. ===================================== * (20. 가을호)

신작시 2020.10.14

태풍

태풍 임 보 태풍에 나무가 뽑히고 지붕이 날라간다 바람이 참 무섭다고들 한다 강풍 폭풍 태풍 허리케인… 그런데, 그 바람들은 왜 일어나는가? 바람은 공기의 이동이다 기압이 높은 곳에서 기압이 낮은 곳으로의 이동 그런데 공기의 기압을 좌우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햇볕이 아닌가! 낮에는 뭍의 온도가 높아 바다에서 육지로 부는 해풍이 일고 밤에는 바다의 온도가 높아 뭍에서 바다로 부는 육풍이 일어난다 그러니 바람을 일으키는 주체는 태양 그 태양이 이 지상을 휘어잡고 있다. ================================ * (20. 가을호)

신작시 2020.10.14

천상의 군병들

천상의 군병들 임 보 한때 지상을 누비던 거구 매머드는 지금 고고학 박물관에 뼈로만 남아 있다 손을 가진 인간들이 무기를 만들면서 세상을 주름잡는 권좌에 올라섰다 그 인간들이 불의 힘을 빌어 지상의 자연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산을 허물기도 하고 강을 막기도 하고 동식물의 종자를 개량하여 잡종을 만들기도 한다 이 고얀 놈들 가만둬서는 안 되겠다고 하늘이 진노하여 천상의 군병(軍兵)을 움직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균병(菌兵)들 인간의 몸만을 공격하여 육신을 파먹는… 지상의 영장이라고 오만하던 인간들 속수무책 넋을 놓고 한탄하고들 있다 강자는 힘이 센 덩치 큰 놈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놈들이라니… 최후의 심판은 이렇게 오고 있는가? 인류의 역사는 이렇게 막을 내리는가? 제왕도 장군도..

신작시 2020.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