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급(留級) 임 보 금방 저승에 온 사람들을 모아 놓고 염라대왕께서 이르시기를 한평생 가장 많이 생각하며 살아온 것이 뭣인지 한 단어로 적어 내라고 했다 어떤 녀석은 ‘돈’이라고 적고 어떤 녀석은 ‘여자’라고 적고 그런가 하면 ‘부모’라고 쓰는 자도 있고 ‘나라’라고 쓰는 자도 있다 그런데 괴죄죄한 한 녀석은 ‘시’라고 써놓고 멍청히 앉아 있다 적어낸 단어들을 가지고 심판을 하는데 무간지옥에 떨어질 놈은 ‘나라’라고 쓴 자다 그놈이 가장 큰 도둑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 세상으로 다시 쫓겨날 놈은 ‘시’라고 쓴 자라는데 이유인즉슨 아직 세상 물정 모르니 다시 익혀 오라는 ‘유급(留級)’이라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