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 임보 불이不二 / 임보 잎을 보는 자는 잎이라 하고 꽃을 보는 자는 꽃이라 한다 지옥을 사는 자는 지옥이요 열반을 사는 자는 열반이다 * 세상살이는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다. 잎이라고 여기며 사는 자도 있고 꽃이라고 여기며 사는 자도 있다. 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려있어서 불만 속에서 살면 늘 걱정을 .. 임보시집들/운주천불 2007.09.09
사태 / 임보 사태沙汰 / 임보 백 리의 호수다. 그 물가 변두리 비스듬히 꽂힌 한 그루 갈대 끝에 문득 날아와 앉는 여치 한 마리 기웃둥, 호수에 담긴 산이 무너진다 * 잔잔한 호수, 그 물가에 서 있는 갈대 끝에 어디선가 한 마리 여치가 날아와 앉는다. 그러자 갈대가 기울고 호수에 담긴 산 그림자가 무너진다. 미.. 임보시집들/운주천불 2007.09.08
운산 / 임보 운산雲山 / 임보 저 뉘신가? 장대비 속 삿갓도 없이 홀로 걷는 자 * 비는 억수로 쏟아져 내리고 산은 온통 비구름 속에 묻혀 있다. 그 빗속을 늠름히 걸어 산으로 들어가는 자가 있다. 우장雨裝을 걸칠 만도 한데 전혀 비를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저 고집불통, 어디로 간단 말인가. 매화 향기가 난다. 임보시집들/운주천불 2007.09.07
산색 / 임보 산색山色 / 임보 강물에 낚시 드리운 채 한나절을 산 그림자만 보고 있다 문득, 어인 일로 입질도 안 하지? 어허, 미끼도 채 잊었었네 그려 * 어부漁父의 낚시는 원래 어구漁具가 아니다. 자연 속에 묻혀 한가로움을 즐기는 도구道具다. 자신의 몸까지도 잊고 청정한 자연 속에 탐닉하는 그 무아경無我.. 임보시집들/운주천불 2007.09.06
띠집의 노래 / 임보 띠집의 노래 / 임보 천 년 푸른 솔 기둥으로 세우고 백 년 묵은 억새 지붕으로 덮고 묘묘渺渺 한평생 그 속에 뒹굴면서 천고千古 청산에 만고운萬古韻을 실으리 * 저 혼탁한 속세를 등지고 청정한 자연 속에 묻혀 유유자적 한평생 지내는 은자隱者들의 삶이 부럽구나. 게다가 만인의 심금을 울릴 수 있.. 임보시집들/운주천불 2007.09.05
닭 / 임보 닭 / 임보 닭들에겐 모이를 주는 손이 있어 굶주릴 염려는 없다 그러나 그 때문에 날개를 잃고 드디어는 그 손에 목이 비틀린다 * 삶의 의미는 안일安逸이 아니라 모험冒險이다. 임보시집들/운주천불 2007.09.03
길 / 임보 길 / 임보 천의 강들은 흘러 바다에 이르고 만의 길들은 벋어 서울에 닿는다 이 가을 아침 눈부신 꽃들이여 너희들이 돌아가는 곳은 어디인가 * 지상의 모든 물줄기들은 흐르고 흘러 마침내 바다에 이르고, 인간의 욕망들은 저렇게 모여 도시와 나라를 형성하는구나. 그런데 저토록 황홀한 꽃들을 바삐.. 임보시집들/운주천불 2007.09.02
오동이 섰던 자리 / 임보 오동이 섰던 자리 / 임보 뜰 앞이 너무 어둡다고 스무 해 오동을 베어냈더니 찬바람만 가득 몰려와 종일 북새통을 치고 있네 * 인간의 손이 하는 일은 늘 재앙을 불러온다. 그것은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리바꿈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무로 의자를 만들고 석탄으로 불을 만드는 .. 임보시집들/운주천불 2007.09.01
문 / 임보 문門 / 임보 두드려도 두드려도 안 열리는 문 지키는 이 하나 없는 비어 있는 방 * 어느 성인은 ‘두드리면 열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방안에 누군가가 있을 때의 일이다. 아무도 없는 빈방이라면 누가 열어주겠는가. 참 답답도 한 일이다. 임보시집들/운주천불 2007.08.31
설매 / 임보 설매雪梅 / 임보 만리의 산하山河는 온통 눈인데 매화 한 그루 설원雪原에 솟아 매운 향기를 허공에 쏟고 있네 묘연키도 하구나, 시리고 시린 저 길 * 매화는 눈 속에서 피어난다. 매화를 매화이게 한 것은 추위다. 사람의 일도 이와 같아서 난세亂世가 지사志士를 만든다. 임보시집들/운주천불 2007.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