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화제 / 유공희 어떤 화제(畵題) / 유공희 오 태양! 어떠한 명석한 지혜가 너를 낳느냐? 얼마나 순수한 피가 너의 그 성장(盛裝)을 이루었느냐! 나형(裸形)의 즐거움을 말하는 너 교만의 여왕… 존재의 조국이여! 너의 입김에 나는 눈을 뜨다 어젯밤의 동금(同衾)하던 온갖 관념의 정부(情婦) 가랑잎같이 사라지는 그림..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7.30
강가에서 / 유공희 강가에서 / 유공희 ― N에게 낯설은 고을 바람이 우짖는 강가에 홀로 서 있으면 강물은 굽이쳐 흐르고 흐르는 물 위에 하얀 거품이 거품이 푸른 하늘을 한 아름 안고 떠나려 갑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 조그만 거품 속에까지 푸른 하늘이 무엇이겠습니까 지나는 바람속에 속절없이 꺼지고 다시 맺히는 ..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7.26
이대로 가시려는가 / 유공희 이대로 가시려는가 / 유공희 낡은 지붕 밑 희미한 창으로 야윈 두 눈 떠보실 때마다 돌아오기 어려운 자식 이름 불러보며 몇 번이나 쓰라린 죽음을 맛보셨던가 가난하나마 사랑스러운 시골 노인들이 항상 고달피 누우신 자리를 찾아 세상에 드문 인정의 얘기를 울기만 하였단다 힘없이 야윈 두 눈 떠..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7.25
춘향 / 유공희 춘향(春香) / 유공희 코 흘리는 가시내라도 아는 슬픈 이름을… 하얀 보선발로 떨어지는 눈물 씻으며 누구보다도 고운 젊음을 춤추어 보이던 계집애… 춘향 푸른 눈동자 곱게 울리는 목소리는 어느 날 붉은 태양의 말 홀로 듣고 시원하도록 치맛자락 날리며 모든 계집애들 앞서 옳은 사람의 길 외치고 ..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7.24
짐승과 더불어 / 유공희 짐승과 더불어 / 유공희 푸른 시내 얼음이 풀려 굽이쳐 흐르고 언덕마다 언덕마다 국거리 쑥잎이 돋는다 나막신 달그락거리고 오늘은 들로 가는 들로 가는 가시내들 검은 손가락마다 손톱이 희다 검치가 난듯 풀을 뜯는 늙은 염소 틈에 끼어 기름기 하나 없는 누런 대가리에도 흰 나비가 앉는다 꿀벌..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7.23
호수 / 유공희 호수 / 유공희 별이 반짝일 무렵 꿀벌 나르듯 하늘에 가득히 별이 빛날 무렵 보얗게 서린 안개 속에 탄식하는 그대 입김에 젖어 꽃도 우는 이 밤엔 갈댓잎 사이 어둠에 젖어 축축한 기슭에 잠들기 싫은 저녁을 소녀처럼 아끼어 그대는 푸른 조약돌 진주처럼 슬어라 (1946. 6.)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7.21
나의 작은 가슴속에 / 유공희 나의 작은 가슴속에 / 유공희 ― N에게 나의 작은 가슴속에 더운 피가 굽이칩니다 나의 작은 가슴속에 어린 세계가 자라납니다 고운 새벽 속에 고요히 눈뜬 꽃송이같이 아무리 짙은 향기에도 목메이지 않는 붉은 심장을 남몰래 살아가렵니다 살아가렵니다 그대 하얀 두 손 속에도 폭 가리워질 것이 어..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7.20
사랑 / 유공희 사랑 / 유공희 ― N에게 샛별처럼 맑은 눈이 한 쌍 작은 가슴속에 밤에도 잠자지 않는다 온몸에 피처럼 흐르는 것을 어이 말로 풀이하랴! 눈을 뜨기만 하면 호젓한 방에 밤마다 날마다 한없이 어리석은 것을 꽃같이 곱게 길러 말을 잃고 스스로 고요히 있는 습성은 정녕 하늘이 준 것이리라! 드디어 눈..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7.18
사모 / 유공희 사모(思慕) / 유공희 ― N에게 어덴가 인적 없는 멧골 쓸쓸한 나그네 방에 소리도 없이 타고 흐르는 촛불처럼 한없이 슬기로운 맵시로 나의 가슴에 영원히 이름없는 불꽃이 하나 억만 년도 내것인 듯 넋을 태우고 나이를 불살라 죽을 리 없는 광망(光芒) 속에 아 그대로 말미암아 나는 항상 명절(名節) ..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7.16
꽃 / 유공희 꽃 / 유공희 ― N에게 어데로… …무엇을…… 하고 물으시면 말하여 대답할 바 몰라 눈감고 가만히 외우겠나이다 저녁놀 고이 잠긴 시냇가 풀잎 사이 끝없이 따라가는 하얀 길과도 같이…… 새벽녘 동쪽하늘 저편 낯익은 산모롱이 홀로 쏠려들듯 깜작이는 별과도 같이…… 고요히 거닐어가다 거닐어..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7.14